양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자다가 더워서 몇 번이나 깼다. 큰 원룸인 호카이네 집에 모기장을 두 개 치고 한쪽에 내가 다른 쪽에는 호카이, 아리나 커플이 잤다. 집 안에 모기장을 치는 건 처음 봤다. 방갈로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모기장을 치고 자봤지만 신선한 경험이다. 모기향을 피워도 모기가 너무 많나 보다. 따로 매트리스도 없어서 얇은 이불을 깔고 잤더니 허리도 아프다. 집에 선풍기가 하나 있긴 하지만 회전을 시켜 놨더니 더 덥게 느껴졌나 보다. 땀을 많이 흘렸다. 아리나와 호카이는 붙어서 잘도 잔다.
밖에 내려가서 찬 아침 공기도 쐴 겸 담배를 하나 피고 올라왔더니 둘 다 일어나있다.
“잘 잤어요 넬리상?”
“응 잘 잤어. 너희는 안 더웠어?”
“저희는 뭐 항상 이렇게 자서 적응됐죠”
시원하게 물로 땀을 씻어내고 아리나는 일 가고 초이초이가 집으로 와서 셋이서 같이 시내로 가서 환전을 하러 가기로 했다. 여기서는 나름 외국인인 아리나가 시내에 환율 좋은 곳을 알아서 호카이가 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온 나는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이 호주 달러다. 당시는 호주 달러가 미국 달러보다 더 잘 나가던 때였다. 은행에 돈을 내밀었더니 호주 달러는 환전이 안 된단다.
“호주 돈 바꿀 수 있는 곳 있어요. 은행 아니에요”
호카이를 따라 갔더니 암시장 같은 곳이다. 환전소 같은 가게가 아니인 노점상에 아저씨들이 앉아있다. 호카이가 미얀마어로 환율을 몇 사람한테 물어보고 그 나마 제일 괜찮은 곳에서 돈을 바꿨다. 암시장이라 그런지 환율이 너무 안 좋다. 200불로 182000짯을 받았다. 미국 달러 200불도 200000만짯이 넘는다. 태국에서 미국 달러로 좀 바꿔 올 걸 그랬다.
다시 집으로 가 좀 쉬었다.
“오늘은 한국어학당에 가야해요”
초이초이가 말한다.
“나도 같이 가도 되요?”
“진짜요?”
둘 다 너무 좋아한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교라니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초이초이와 호카이를 따라 한국어학당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한국어 시험이 있어요”
한국어 시험은 또 어떤 건지 궁금하다. 집에서 걸어 갈수 있는 거리라고 해서 같이 걷는데 둘 다 신났다.
가는 길에 큰 찻집 같은데 들렀다. 초이초이의 친구들이 모여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얀마어로 한국에서 온 친구라고 나를 소개하는 것 같다. 다들 난리가 났다. 마치 뭐랄까. 좋아하는 영화가 있는데 그 배우가 나타난 느낌일까. 저마다 배운 한국어를 한 사람씩 돌아가며 쓰며 수줍게 인사한다. 다들 한국어를 배우고는 있지만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어 시험은 해마다 두 번 있는데 2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면 통과란다. 80점 이상부터 점수 높은 사람으로 잘라서 매년 2000명이 한국에 가서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친구들이 공부하고 있는 한국어 교재를 보니 대부분 공장에서 쓰는 한국인인 나에게도 생소한 용어들이 많다. 월급은 한 달에 150만원 정도. 여기 월급에 거의 6배 가까이 된다고 하니 이 친구들이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이해가 된다.
차를 다 마시고 슬슬 시험 시간이 돼서 다 같이 학원으로 걸어 갔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치기 위해 와 있다. 좁은 책상에 서너 명이 붙어 앉아 에어컨도 안 나와서 부채를 부쳐가며 있다. 열정들이 대단하다. 미얀마인 한국어 선생님이 와서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저는 초이초이 한국인 친구에요. 혹시 저기 뒷자리에 앉아 있어도 될까요?”
선생님 허락을 얻어 구석 뒷자리에 앉았다. 역시 쟤는 뭘까 하고 사람들이 힐끔힐끔 뒤를 쳐다본다. 나는 미소로 응답했다. 오늘은 듣기평가인가보다. 방송이 나온다.
“지문을 듣고 알맞은 답을 고르세요. 일 번. 철수와 영희가 싸웠어요. 다음 이어지는 말로 알맞지 않은 답을 고르세요. 일. 미안해요. 이. 죄송해요. 삼. 더워요. 사…”
피식 하는 웃음이 나온다. 정말 천천히 말한다. 문제 난이도도 원어민인 나에게는 너무 쉽다. 토익 시험장에 미국인이 가면 이런 느낌이겠지.
시험이 다 끝날 때까지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너무 더워서 밖에 나와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온 김에 좀 돌아다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찾아도 화장실은 안 보인다. 시험 끝날 시간이 되어 다시 돌아가려는데 길을 잃었다. 초이초이가 걱정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