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
한 십분 정도 길을 찾다 포기했다. 아리나가 준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꺼냈다. 공중전화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공중전화는 안 보인다. 대신 거리 곳곳에 노점상 같이 전화기 한 대를 놔두고 아저씨들이 앉아 있다. 혹시나 해서 전화번호를 보여주니 전화를 걸어준다.
“아리나짱! 나 넬리야. 지금 초이초이랑 한국어어학당 따라왔다가 잠깐 나왔는데 길을 잃었어. 지금 초이초이한테 연락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줄래? 혼자 구경하다 너가 주소 적어준 종이 있으니까 택시타고 갈께”
통화가 끝나니 아저씨가 통화 시간을 보여주며 계산을 해서 200짯을 줬다. 작은 것 하나하나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이랑 또 다른 시스템이라 더 좋다. 이제 마음 놓고 돌아다니기로 하고 재래시장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파져 두리번거리다 순대 먹을 때 나오는 내장 부분만 조그맣게 잘라서 꼬치에 꽂아서 파는 노점을 발견해서 자리 잡고 앉았다. 영어가 안 통하니 손가락으로 꼬치를 가리키며 검지 손가락을 하나 펴 보였다. 맛이 어떨까 긴가민가 하며 조심스럽게 우리나라 초장 비슷한 거에 찍어먹는데 맛이 기가 막힌다.
다섯 손가락을 다 펴 보이며 더 시켰다. 또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더 시켰다. 그렇게 한 20개는 먹은 거 같은데 단 돈 1000짯. 대충 900원이다. 내장 꼬치를 너무 잘 먹는 외국인을 보고 흐뭇해 하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쩨주띤바레(감사합니다)’ 말하고 다시 재래시장으로 발을 돌렸다.
아까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가봤다. 훨씬 사람도 많고 활기차다. 신기한 내 외모에 다들 미소로 반겨주는 거 같아 더 즐겁다. 어디로 가든 길을 잃어도 택시만 타면 찾아갈 수 있는 마법의 종이도 있다. 걱정 없이 발 닿는 대로 걷기로 했다. 걷다가 목이 마르다. 아까부터 지나가는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하며 손 흔들며 자기네들끼리 난리가 난 귀여운 아가씨들이 있다. 주스가게 점원들이다. 딸기주스를 시켰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너무 좋아한다. 미얀마에 한국 이미지가 이 정도인가. 같이 사진 찍자고 해서 찍으니 시장 사람들이 하나씩 몰려오더니 다 한 명씩 사진 찍었다. 나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티비에 나오는 송중기나 이민호 같이 생긴 남자도 아니고 지저분한 드레드 머리를 하고 있는 거지꼴의 한국인일뿐인데 나와 사진을 찍어서 뭐할까.
딸기주스를 입에 물고 다시 거리로 나와 아리나가 적어준 집주소 종이를 들고 서 있으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청년이 어디로 가냐고 물어본다. 주소가 적혀 있는 종이를 보여주니
“팔로우 미! 워크워크! 베리 니얼”
“노노 택시! 오케이”
택시타면 된다고 사양해도 계속 팔로우 미라고 외치며 앞장선다. 20분 정도 따라간 거 같다. 이제 뭔가 낯익은 건물들이 보인다. 이제 괜찮다고 해도 오케이오케이라고 외치며 집 앞까지 데려다 주려고 하는 걸 이제 진짜진짜진짜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니 미소 지으며 땡큐하고 뒤돌아서 간다. 땡큐는 내가 할 말인데.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가슴 따뜻하고 순수한 나라다.
집 앞에 도착하니 이제 날이 어두워진다. 너무 기분 좋게 집에 왔다. 집에서 좀 쉬다 밥은 집에 있으니 아리나가 반찬거리 좀 사러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하나같이 다 맛있어 보이는 미얀마식 반찬들이 쭈욱 늘어져 있다. 종류별로 고기조림을 조금씩 사고 미얀마식 샐러드를 사서 집에 왔다. 맛은 역시 말할 것도 없다. 현지인 친구들을 몰랐다면 또 볶음밥만 먹다 왔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밤에 쉐다곤 파고다 야경을 보러 가려고 했지만 안 봐도 되겠다. 그거보다 더 좋은 걸 보고 느꼈다. 충분하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