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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따뜻한 사람들 2

인레

by nelly park

아침에 배가 아파서 일찍 깼다. 어제 먹은 음식이 잘못되었나 보다. 계속 설사를 하고 온몸에 힘이 없다. 원래 오늘은 양곤 대학교 견학을 가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오래 여행하면서 한번도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긴장이 풀렸나 보다.


집에 그냥 계속 누워 있었다. 입맛도 없고 그래서 그냥 물이랑 차만 마셨다. 와이파이라도 있었으면 덜 심심했을 것이다.


아리나집은 냉장고도 없다. 화장실에는 불이 안 들어온다. 에어컨은 있는데 밤에 자기전에만 켠다. 인터넷이 되긴 하는데 밑에 층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와이파이를 불러오는지 아리나 컴퓨터로만 된다. 그것도 아주 간신히 된다. 와이파이 신호가 한 칸에서 끊겼다가 다시 컴퓨터를 문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다시 한 칸 잡히곤 한다. 집에 거울도 없다. 다 없기 때문에 이들은 더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봤다.


“아니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사니까 편해요. 거울이 없으면 창문에 내 모습을 비춰보고 인터넷은 필요할 때만 쓰면 되는 거고 화장실에 불이 안 들어오니 낮에 샤워하면 되고 더우면 부채 부치면 되요”


나도 언젠가 조용한 곳에서 이런 모습의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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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없어 죽겠지만 더 이상 양곤에서 신세지는 거도 미안하고 미얀마에서의 일정도 길지 않아서 인레로 출발하기 위해 일단 짐을 싸놓고 잠깐 가방을 베고 기절해 버렸다. 4시 버스라 2시 45분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섰다. 호카이가 택시를 잡아줬다. 아리나랑 호카이한테는 정말 많은 신세를 졌다. 다행히 차가 밀리지 않아 버스터미널에 3시 15분쯤에 도착했다.


힘도 없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 멍하게 정류장에 앉아있다 버스를 탔다. 태국 버스만큼 좋진 않았지만 나름 쾌적했다. 왜 애매하게 4시에 출발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출발했다.


그래도 좁고 불편한 버스에서 계속 앉아 있으니 머리도 허리로 너무 아프다. 얼른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졸다가 깼다가를 반복해서 12시간 정도가 걸려 새벽 4시쯤에 인레에 도착했다. 너무 힘들다. 식은 땀은 나고 온몸이 무겁고 미치겠다. 다 필요없고 얼른 쉬고 싶다.

버스에서 내리니 꼬마 호객꾼들이 나를 맞이해준다.


“웨얼 유 고 미스터?”


인레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고 아리나랑 호카이가 예전 인레에 왔을 때 Queen Inn이라는 숙소에 묵었다는 얘기가 기억나서 거기로 간다고 했더니 한 꼬마가 500짯을 부른다.


“알았어. 일단 12시간 동안 버스 타고 왔으니 일단 담배 하나 피고 시작하자”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옆에 다른 꼬마가


“300짯!”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손가락으로 담배를 가리키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담배 하나 피고 가자니깐”


이번에도 못 알아들었는지 그 옆에 꼬마가


“오케이 프리! 프리! 컴! 컴!”


황당하다. 그래서 계속 진짜냐고 물어봤지만 계속 프리라며 따라오란다. 담배를 입에 문채로 꼬마의 자전거 뒤에 탔다. 새벽 4시 반쯤. 새벽 바람이 시원하다. 사방에 불빛 하나 없이 이 꼬마를 이렇게 따라가도 되는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르겠다 그냥 가자 무슨 일 있겠어 하고 잠자코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다. 하룻밤에 15불이란다. 방에 침대 두 개가 나란히 있는 깨끗한방이다. 흥정도 하기 싫고 그냥 다 오케이 했다. 짐을 내려놓고 체크인 하러 카운터에 갔는데 아까 그 꼬마가 숙소 아주머니랑 계속 이야기하고 있길래 아 역시 돈을 원하는구나 싶어 지갑에서 500짯을 꺼내 손에 쥐어줬다. 그러니 꼬마는


“노노노 프리 프리. 유 해피. 미 해피!”


이 나라는 어떻게 이럴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씻지도 않고 그냥 침대에 뻗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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