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레
아침에 일어나서 좀 괜찮은 듯싶더니 계속 배가 아프다. 몸에 힘이 없는 증상은 다행히 나은 거 같다. 눈떠서 밖에 나갔더니 아침 먹으란다. 아침은 공짜다. 토스트에 계란후라이 그리고 커피와 수박주스가 나왔다. 맛있게 잘 먹었는데 또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숙소 앞 길을 따라 산책을 나가봤다. 너무 평화롭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 같다. 기분 좋게 길을 걷다 배가 아파서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반대편 길을 걸어봤다. 나무로 된 작은 다리 밑에 정말 많은 기다란 보트가 있다.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굿모닝 미스터! 보트트립? 인레 레이크?”
“음. 같이 갈 사람이 생기면 내일 타러 올게요”
그냥 호객꾼 일 수 있지만 아저씨랑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좋은 아저씨구나 하고 느꼈다. 아저씨 이름은 코린이와. 부인이랑 아들 둘 그리고 딸 하나와 함께 20분 거리의 옆동네 냥슈에이에 산단다. 아저씨 명함도 받았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일 갈 필요가 없다. 오늘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보트타면 하루종일 투어 라는데. 다시 밖으로 나가 아저씨를 찾아다녔다. 다른 많은 호객꾼들이 말을 걸어와서 대충 가도 됐지만 아저씨와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한 30분을 찾아 헤매다 아저씨를 만나 보트를 타러 갔다. 15000짯인데 혼자니까 13000짯에 해준단다. 더 흥정할 수 있었지만 그냥 타기로 했다. 보트를 타고 10분 정도 가니 탁 트인 인레 호수가 펼쳐진다. 정말 엄청나게 크다. 나중에 찾아보니 여의도 면적의 50배 정도 되는 크기다. 물위에는 물풀들이 떠다니고 옆에는 전통방식으로 노로 물을 쳐서 튀어 오르는 놀란 물고기를 낚는 어부들이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인레호수를 가로 질러 가니 배 아픈 것이 잊혀졌다. 보트로 이곳저곳을 들렀다. 수공예로 만든 실크가게. 담배가게. 보석가게. 사원. 그리고 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남팡 빌리지까지. 특별히 인상 깊은 곳은 없었지만 인레호수를 배타고 달린다는 것 자체가 좋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처럼 혼자서 여유롭게 다리 꼬고 가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3명 이상은 타고 있다. 다들 신기하게 쳐다본다. 혼자 배에 누워 가니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석양이 보고 싶어 마지막 보석가게에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해가 질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분위기를 좀 내보려고 스마트폰을 꺼내 음악을 틀어놨다. 보석가게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이 폰은 뭐냐고.
“이거 HTC ONE X 라는 폰이야”
반응이 폭발적이다. 미얀마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최신폰이란다. 얼마냐고 물어보길래 가격을 말하니 더 난리다. 내 폰으로 서로 사진 찍어주고 셀카도 찍느라 바쁘다. 귀여운 아가씨들이다.
슬슬 출발하면 해가 지겠다 싶어 보트를 타고 나갔더니 날씨가 흐려지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운도 없다. 기다리던 석양은 보이지도 않고 점점 추워져서 온 몸이 비에 젖어 이가 딱딱 부딪힌다. 그냥 빨리 집에 갔으면 했다.
끝은 안 좋았지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또 하나 오늘 느낀 것. 혼자 여행할 때 아프면 정말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