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앙샨
취푸는 유교의 창시자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다.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화가 유교에 근본을 두고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 온 것이 더 뜻 깊게 느껴진다.
그런 감상을 느끼기엔 너무 피곤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찾아놓은 숙소지도를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고 호스텔로 바로 갔다. 짐을 풀자마자 샤워도 못하고 침대에 기절했다. 그냥 밤만 새도 피곤할 텐데 어제는 여섯 시간 동안 기차 타고 내려서 바로 여섯 시간 동안 야간등반, 하산해서 다시 두 시간 동안 버스 타고 여기 왔더니 골아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눈을 뜨니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중국 온지 3일만에 드디어 침대에서 잤지만 너무 피곤해서 인지 눈을 감고 도저히 몸은 움직일 수가 없는데 정신은 있는 그런 상태로 누워 있었다. 마치 배가 너무 고프면 오히려 밥을 많이 못 먹듯이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더니 배가 너무 고파서 자고 있는 타쿠를 깨워서 밖으로 나갔다.
취푸는 공자의 도시답게 고즈넉한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고층 빌딩이 많은 칭다오와 전혀 다르다. 곳곳에 고성들이 있고 중국의 옛날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뜨끈하고 얼큰한 라면이 먹고 싶어 한 가게에 앉았다. 란저우식 위구르 라면을 맛보기로 했다. 소고기 라면이었는데 면을 눈앞에서 바로 수타로 만들어 준다. 면은 쫄깃쫄깃하고 국물은 꾸덕꾸덕 한 맛이 일품이다. 역시 나는 고급 음식보다는 이런 서민 음식이 입에 맞나 보다. 국물까지 싹싹 긁어 마시고 낸 돈은 단돈 4원 (육백 원 정도).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다.
무릎은 아직 아프지만 체력이 조금 돌아온 우리는 걸어서 마을 구경을 했다. 공자 사원을 발견하고 들어가려고 하니 지금은 문을 닫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연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오랜만에 각자의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같은 도미토리방에 있는 중국인 친구가 내 머리가 멋있다며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해서 같이 사진 찍었다. 내 외모는 어딜 가든 신기한가 보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내가 아는 몇 개의 중국어와 그 친구가 아는 영어를 총 동원해서 여행 이야기를 풀었다.
여기 중국에서는 나를 대놓고 빤히 쳐다보고 대놓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하긴 한국에서도 이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어르신들은 혀를 쯧쯧 찰 것이고 젊은 사람들은 뭐야 이 사람하며 수군거렸겠지.
취푸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태산에서의 체력소모가 커서 원래 가려고 했던 핑야오나 지난 대신 여기서 하루 더 묵으면서 가까운 리앙샨을 갔다오기로 했다. 리앙샨은 한국 발음으로 하면 ‘양산’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소설 수호지의 배경이 된 곳이다. 타구한테 물어보니 일본에서도 양산박은 유명하단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 시간 확인을 못해서 2층 침대에서 내려와 충전을 하며 시간을 보니 여섯 시 좀 안된 시간이다. 일곱 시 반에 맞춘 알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났다.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어제 못썼던 일기도 마무리 하고 같은 방에 묵는 어제 사진 찍었던 중국 친구와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여유로운 아침을 맞았다.
일곱 시 반쯤 타쿠와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취푸 버스 터미널로 갔다. 여덟 시 이십 분에 리앙샨행 버스가 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가볍게 볶음밥을 먹고 출발했다. 세시간 예정이었지만 두 시간 십 분 만에 도착했다.
리앙샨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택시를 다시 타고 리앙샨 공원 앞으로 갔다. 입장료는 60원 (만원 정도)이다. 여기 와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입장료가 물가에 비해 너무 비싸다. 그래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곳곳에 양산박의 108영웅이 있었던 곳. 그리고 그곳에 대한 설명들이 있다. 나는 관광지로 만든 이곳보다는 산 위에서 바라보는 돌산 절경이 훨씬 아름다웠다. 그리고 수호지를 최근에 읽고 왔었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
날씨가 흐린 탓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산을 오를 수 있었지만 내 카메라는 햇빛이 없으면 멍청이가 된다. 멋진 절경의 모습에 반의반도 못 담았다.
취푸로 돌아가는 한 시 버스가 있다는 정보 때문에 급히 돌아갔는데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열두 시 오십 분이다.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다섯 시간을 기다릴 뻔 했다.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타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다 멈춘다. 갈 때는 기사님이 더 밟으셔서 한 시간 오십 분 걸렸다. 분명히 매표소에서 올 때 갈 때 세 시간씩 걸린다고 했는데 그건 뭐였던 걸까. 올 때보다 한 시간이 덜 걸렸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어제 못 본 공자 유적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총 세가지 종류가 있다. 다 보려면 150원 (이만 오천 원 정도)이다. 너무 비싸지만 어쩔 수 없다. 공자의 도시라 여기까지 왔는데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