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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태산

by nelly park

열한 시가 다 된 밤인데도 사람이 엄청 많다. 타쿠 말대로 이 산은 아침 일출이 장관이라 이렇게 야간 등산을 많이 한단다. 산 입구에서 항상 신고 있는 조리를 혹시나 몰라서 가져온 운동화로 갈아 신고 큰 물통도 하나 사서 티켓을 사러 갔다. 가격은 127원 (이만 이천 원정도) 이었다. 비싸다. 하긴 이 산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데다 태산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등산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어두워 앞이 잘 안 보인다. 가로등은 당연히 없고 조그만 불빛도 없어 앞에 가는 사람들 이마에 있는 조그만 헤드랜턴 불빛을 따라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나라 산처럼 흙, 돌길이 아니고 입구부터 정상 끝까지 계단으로 되어 있다.


‘계단이면 미끄러질 리도 없고 다칠 일도 없겠구나. 생각보다 별 거 아니겠다’


오산이었다. 등산시작하고 세시간 정도 중반 넘어 까지는 체력도 남아 있고 경사가 그나마 완만해서 괜찮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경사가 터무니 없이 가팔라진다. 거의 70도 정도 되는 계단이 계속 되었다. 숨이 차오른다. 땀이 뚝뚝 떨어져서 온몸이 젖었다. 걸어가며 타쿠와 주고받던 말도 이제 없다. 둘 다 조용히 발길만 내디뎠다. 장기여행자라 무거운 등산화는 당연히 없고 지친 다리를 받쳐줄 등산스틱도 없다. 여행 첫날부터 쉴새 없이 돌아다녀 체력도 떨어진데다가 야간 등반이라 잠도 부족했다. 그래도 이 악물고 열심히 올랐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반한다. 끝이 보인다. 세시 반쯤 정상 근처에 도착했다. 일출 예상 시간은 네 시 오십 분이다. 정상 근처는 장관이다. 텐트가 쫘악 펼쳐져 있다. 미리 올라온 사람들이 거기서 좀 자면서 일출을 기다리는 것이다. 저 텐트들을 어떻게 짊어지고 왔나 했더니 텐트를 대여해주는 곳도 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기온이 꽤 내려가고 바람도 불어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땀이 식어서 더 쌀쌀하게 느껴진다. 곳곳에 상인들이 긴 옷을 대여해 주는데 북한인민군이 입을 법한 카키색 코트 같은 것이다. 기념으로 하나 사고 싶기도 했지만 짐도 많고 오늘 한번 입고 더 이상 입을 일 없을 것 같아 그냥 조금 참기로 했다. 일출 시간이 다가오니 정상이 사람들도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을 보러 온 건지 해를 보러 온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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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고 다리도 아프지만 잘 버텨 정상에서 일출을 보았다. 돌산 위에 뜬 이 해는 정말 장관이다. 운무에 가려 뚜렷하고 찬란한 기운의 해는 아니었지만 깜깜한 하늘에 동그란 빨간 점이 솟아오르는 것 자체가 숨막힌다. 그냥 매일 볼 수 있는 해 뜨는 것이 아니라 이 빨간 동그란 점 하나 보기 위해 칭다오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내려서 또 택시를 타고 또 여섯 시간 동안 걸어서 왔다.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나야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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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내려가야 한다. 막막하다.


하산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일출을 기다리면서 컵라면도 먹고 앉아서 쉬면서 체력이 많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와 오랜만에 장시간 등산 때문인지 무릎이 너무 아프다. 한걸음 한걸음씩 쩔뚝거리며 천천히 내려왔다. 밝을 때 보는 태산은 어두울 때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어제 밤엔 어두워서 눈앞에 있는 계단만 간신히 보면서 올라왔는데 계단 옆의 풍경이 이렇게 멋있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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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중간쯤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고민 끝에 여기부터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웬만하면 하산까지 끝까지 걸어서 가고 싶었지만 무릎이 너무 아파 걷기도 힘들었다. 버스로 가니 금방 간다. 다시 입구로 가 일단 KFC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다음 일정을 상의했다. 상의하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어디든 좋으니 일단 서둘러 결론을 내려서 취푸로 가서 숙소를 잡고 좀 쉬기로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 취푸행 버스 티켓을 샀다. 운 좋게 버스에 올라타서 앉자마자 버스는 바로 출발한다.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라는데 이걸 놓쳤으면 한 시간 동안 또 어떻게 졸면서 기다리나 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바로 기절해서 아무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이미 도착해서 취푸다. 눈을 잠깐 감았다 뜨니 두 시간이 흘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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