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여기서도 쉽지 않다. 조그만 시골 버스정류장 같은 버스 몇 대 있는 허름한 곳에 내렸다. 횡 한 이곳에 티켓 파는 곳이 아무리 찾아도 없다. 사람도 아무도 없다. 경비 아저씨한테 물어봤더니 중국어로만 말해주시는데 다행히 대충 알아들었다. 두 시에 상하이 가는 버스 기사가 올 테니까 기다리란다. 시계를 보니 열두 시 반이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좀 더 둘러보니 근처에 아주 큰 터미널이 보인다.
터미널로 들어가 곧장 매표소로 걸어가는데 한 젊은 남자가 어디 가냐고 물어본다. 상하이 간다고 하니 따라오란다. 얼마냐고 하니 260원 (4만 5천원 정도) 이래서 비싸다고 하니 손가락으로 매표소를 가리키며 말한다.
“아마 매표소로 가면 300원 (5만 2천원 정도)일꺼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일단 매표소로 가서 물어보니 진짜 300원이었다. 고민에 빠졌다. 어떡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는데 다시 그 남자가 손가락으로 손가락 두 개를 펴며 오케이! 220원(3만 8천원 정도)! 따라오란다.
일단 따라갔더니 아까 그 횡 한 공터에서 경비 아저씨가 말한 그 버스다. 그리고 어떤 사무실로 같은 데로 데려가더니 여기서 표를 끊어준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뭔가 미심쩍고 수상해서 그냥 80원 (만 4천원) 더 주고 가는 게 안전하겠다 싶어 중국어 못 알아듣는 척 이십 분 동안 실랑이하다 뿌리치고 나와서 터미널에서 오늘 밤 아홉 시 버스 티켓을 샀다. 긴장이 풀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집으로 돌아가 타쿠와 다나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무용담을 들려주고 싶었다. 타쿠와 다나가 하나 둘씩 퇴근 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다나가 우크라이나 음식 키에브 치킨을 만들어줬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치킨 맛이다. 타쿠보다 9살이나 어린 다나는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씨는 더 예쁜 거 같다. 요리까지 잘한다.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칭다오에서의 마지막을 보내고 타쿠와 다나의 마중을 끝으로 상하이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타쿠와 다나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다. 언젠가 꼭 보답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버스는 생각보다 안락했다. 이것보다 더한 버스들은 동남아에서 이미 다 겪어서 그런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중국버스가 최악이라고 했던 성범이는 대체 어떤 버스를 탄 걸까.
버스는 베트남에서 탔던 슬리핑 버스와 똑같은 구조였다. 세 줄로 이층침대가 쭉 놓여 있었고 나는 그 중 중간 자리를 배정받았다. 진짜 침대처럼 180도로 젖혀지는 건 아니었지만 거의 160도 정도로 젖혀진다. 자는데 전혀 지장 없이 아주 푸욱 잤다. 다섯 시 반쯤 되니 갑자기 버스기사는 음악을 틀면서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어제 분명히 표를 끊을 때 매표소 아가씨한테 내일 상하이 언제 도착하냐고 물었더니 손가락 열 개를 다 펴 보이며 아침 열 시에 도착한다고 했었는데 네 시간이나 이른 시간인 여섯 시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하면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상하이에 사는 브라이언과 만날 약속은 아침 열 시다.
버스 내리기 전 기사 아저씨가 표를 받는다. 주머니를 뒤져서 표를 내려고 하는데 표가 없다. 아무리 찾아도 표가 없다. 버스타기 전에 주머니에 있던 쓰레기를 버릴 때 같이 버린 건가. 누워서 자는 동안 표가 빠졌나. 큰일이다. 아저씨 앞에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난처한 표정을 보이니 중국어로 뭐라뭐라하면서 괜찮다고 그냥 가도 된다고 한다. 이상한 레게 머리하고 시커먼 얼굴의 거지꼴 외국인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지 뭐라고 해 봤자 못 알아들을게 뻔했는지 다행히 그냥 보내주신다.
일단 터미널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지창 역에 내려서 브라이언이 일하는 Web international 빌딩 B를 찾아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찾아도 그런 곳은 없다. 브라이언이 거기서 만나자고 하길래 예전에 같이 일했던 파고다처럼 지하철에 광고가 크게 붙어있을 줄 알았다.
아침 여섯 시 반쯤이라 문을 연 가게도 없어 와이파이도 못쓰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한 시간 넘게 걸어 다니다 짜증나서 포기할 때쯤 COSTA COFFEE가 문을 연다.
들어가서 다짜고짜 중국어로 와이파이 있냐고 물으니 남자직원이 영어로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아 상하이는 영어가 통하는구나!’
그렇게 다행히 브라이언과 연락이 닿아서 드디어 만났다. 물론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은 내 잘못이지만 날씨도 덥고 짐은 무겁고 브라이언은 연락도 안되고 해서 그냥 다른 도시로 가버릴까 생각까지 했었다. 그래도 브라이언을 만나자 마자 감격스런 재회의 포옹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