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하루종일 브라이언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딩굴딩굴 거리며 보냈다. 그 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강행군의 여행을 했더니 귀찮음이 배고픔을 이겨 밤 아홉 시가 될 때까지 밥도 안 먹고 아무것도 안하고 밖에도 안 나가고 누워있었다. 이런 하루가 너무너무 필요했다. 그리고 또 다음날 해가 뜬다.
항상 브라이언이 수업하러 갈 때 따라 나서다 오늘은 내가 먼저 밖에 나왔다. 미셸과 함께 우전이란 곳을 같이 가기로 했다. 아침 열 시까지 쓰촨북로 역에서 만났다. 막상 미셸과 만나서 얘기해보니 올 때 갈 때 왕복 네 시간 거리인 우전으로 가기 귀찮아져서 그냥 상하이 구경을 더 하기로 했다.
사실 미셸이랑 같던 곳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이드북도 없고 여길 가야겠다 하는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니고 중국어 명칭은 들었지만 사실 어렵다. 아마 신천지 라는 곳에 간 것 같다.
티엔즈팡하고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조금 덜 상업화 된 느낌이다. 멋진 수로에 초록빛깔 물이 흐르고 곳곳에 다리가 놓여 있는 운치 있고 이색적인 곳이다. 보트 투어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보트투어가 다 똑같지 뭐 하는 생각과 돈도 아끼고 싶어 안타려고 했는데 미셸이 꼭 타 봐야 한다며 보트 티켓을 억지로 끊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보트에 올랐다.
막상 보트에 오르니 좋다. 따뜻한 햇살도 좋고 배 위에서 바라보는 이곳이 너무 아름답다. 바로 옆에 보이는 초록빛깔 물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멍하게 앉아 있다 보트에서 내려 간단히 밥을 먹고 푸동으로 갔다.
어제는 와이탄에서 푸동을 바라봤는데 오늘은 푸동에서 와이탄을 바라 보기로 했다. 푸동은 우리나라의 강남과 닮았다. 엄청난 크기의 고층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고 넓은 광장에 잘 정비된 도로까지 빼다 박았다.
걸어 다니다 갑자기 선글라스가 부러졌다. 호주에서만 파는 내가 제일 아끼는 선글라스다. 하루 종일 기분 좋다가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백화점 같은 곳에 들어가 한참을 고민하다 똑같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걸 120원 (2만원 정도) 주고 샀다.
선글라스를 사서 백화점 문을 나오자마자 케이스의 지퍼가 망가졌다. 다시 들어가서 교환할까 하다 그냥 쓰기로 했다. 어차피 케이스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중국 본토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경험 확실하게 했다.
밤에는 브라이언과 와이탄으로 가 동방명주를 보며 광장에 앉아 맥주 한 캔씩 했다. 브라이언의 중국인 친구 비비안과 마리아도 근처에 있다고 해서 넷이서 맥주 한 캔씩을 더 사와서 마셨다. 다트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브라이언은 또 다트를 하러 가잖다. 부산에서 같이 일할 때도 그랬다. 같이 술 한잔만 하면 꼭 다트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꽤 잘한다.
와이탄에 있는 작은 다트바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인 팀 대 외국인 팀 어때?”
나는 남녀 한 명씩 팀 하자고 했지만 브라이언은 아니란다. 심지어 맥주 내기도 걸었다. 힘이 좀 더 센 남자 둘 팀인 우리가 더 잘한다. 점수가 너무 압도적이다.
“브라이언! 좀 살살해. 어차피 우리가 이겨”
“안돼 나 기록 깨야 해”
“그럼 여자팀한테 어드벤티지를 좀 주자. 좀 가까이에서 던지자고 하자”
“안돼 그럼 불공평하자나”
재미로 하는 게임을 눈에 불을 켜고 한다. 이번엔 피자 내기를 했다. 또 기를 쓰고 그걸 이긴다. 매너가 없는 건지 문화 차이 인건지 모르겠지만 공짜로 잘 얻어먹었다.
기분 좋게 브라이언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브라이언의 룸메이트는 다시 여자친구와 화해해서 넓은 침대를 혼자 쓰게 되었다. 맥주 한 캔씩을 더 사와서 브라이언집에서 보이는 동방명주를 감상하며 하루가 또 저문다. 고즈넉함과 세련됨이 잘 공존하는 낭만 있는 도시다.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 도시에 점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