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쨍쨍한 햇빛과 뜨거운 열기의 서역의 관문 도시 둔황은 생각했던 거와는 달리 흐리고 부슬비가 내린다. 둔황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막고굴로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간단히 란저우 라면을 먹고 숙소에서 알려준 대로 택시를 타고 스루빈관까지 가서 그린버스를 타고 막고굴을 가기로 했다.
택시를 잡아탔다
“스루빈관 가주세요”
“막고굴 가요?”
“네”
“이 택시로 바로 막고굴로 가면 4원만 더 내면 되요. 어떡할까요?”
얼마 차이 안나니 굳이 버스로 환승 안하고 바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출발하더니 아저씨는 시내 중간에 차를 세우고 우리의 동의도 없이 다른 사람도 같이 태워가려고 호객행위를 한다. 그냥 빨리 가자고 해도 오케이 오케이 하며 들은 채 만 채다. 그냥 기본 요금인 5원 주고 내려서 친절한 둔황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물어 스루빈관까지 걸어가서 그린버스를 탔다.
버스는 이미 사람이 꽉 차 있어서 의자와 의자 사이 통로에 목욕탕 의자 같은 간이 의자에 앉아왔다. 엉덩이는 좀 아프지만 막고굴 가는 길이 너무 예쁘다. 카타르에서 본 황량한 사막에 이때까지 본적도 없는 진한 갈색 황무지 산들이 쭈욱 늘어져 있다. 카메라에 그대로 담기지 않는 게 아쉬울 뿐이다. 한 시간 정도의 버스 여행은 전혀 지겹지 않았다.
막고굴 입장료는 180원 (삼만 원 정도)이다. 공자 유적지 빅 3를 다 둘러보는 것보다 비싸다. 그래도 유네스코 유산에다 둔황에서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돈을 내고 들어갔다. 한국어가 가능하신 여자 가이드분이 오셨고 우리 둘만 따로 안내를 받았다. 중국어나 영어 가이드 무리는 큰 단체로 움직이는데 우리는 개인 투어 같다.
멀리서 본 막고굴은 아주 큰 개미집 같다. 모래 색 돌집에 구멍이 뽕뽕 뚫려있다. 안에 들어가보니 화려한 벽화들과 불상들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그 당시 이 굴의 가치를 몰랐던 중국인들은 정말 많은 보물들을 다른 나라에 빼앗겼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다. 조금 더 이곳에 대해 공부를 하고 왔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굴 내부의 사진 촬영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어 사진이 거의 없는 것이 아쉽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 밥을 먹고 수진누나는 모래 사막산인 명사산으로 가고 나는 숙소로 왔다. 명사산도 가보고 싶었지만 날씨도 흐리고 사막은 카타르에서도 많이 봤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비쌌던 입장료 때문에 지출이 커서 안 가기로 했다. 명사산 입장료 80원 (만 이천 원)을 더 내기 싫었다.
숙소에 혼자 앉아 있는 동안 친구가 생겼다. 호주인 톰이랑 조선족 황광철씨다. 특이한 머리를 하고 있으니 역시 말을 걸어온다. 저녁 먹으로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해서 마침 수진 누나도 명사산에서 돌아오고 광철씨의 중국인 친구 둘도 합류해서 다 같이 밥 먹으러 나갔다.
둔황의 야시장은 더 이국적이다. 시안에서부터 서쪽으로 갈수록 중국의 색깔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재미있다. 축축한 습기가 있는 밤에 노상에 앉아 새로 사귄 친구들과 먹는 양꼬치에 맥주는 환상적이다. 톰과는 영어로 대화하고 수진누나와 광철씨와는 한국어로 대화하고 광철씨 친구들에게는 광철씨가 중국어로 통역해 주며 이야기 꽃을 피우니 더 즐겁고 특별하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 춥다. 비도 부슬부슬 오는데 사막도시라 그런지 일교차가 꽤 크다. 이가 딱딱 부딪히고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맥주를 몇 병을 더 사와서 기타도 치며 둔황에서의 특별한 인연을 기념했다.
얼마만인가. 이렇게 기분 좋게 좋은 사람들과 수다떨며 마시는 맥주. 둔황은 날씨가 안 좋아도 너무 좋은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