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배고파 날이 곤두선 우리 세 남자는 서둘러 지도를 보며 시안바시를 찾아 나섰다. 날은 슬슬 어둑어둑해져 가고 우린 나가사키에서 시간이 얼마 없다. 숙소에서 길 따라 주욱 걸어가다 좌회전해서 또 좀 걸어가니 시안바시가 나온다.
숙소 매니저가 말한 대로 시안바시 오른쪽으로 나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좀 더 중화풍인 거리가 나온다.
‘드디어 나가사키 짬뽕을 먹는구나’ 하고 신나서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가 가려고 했던 텐텐유는 문닫았다. 허무했다. 이제 비도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시안바시만 찾으면 당연히 짬뽕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우리에게 다음 계획은 없었다. 그래서 제일 그럴싸해 보이는 다른 식당으로 들어가서 나가사키 짬뽕 3개를 시켰다.
“전에 나가사키 왔을 때 짬뽕이랑 생맥주랑 같이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어. 맥주 시킬까?”
내가 말했다. 그랬더니
“아니 일단 짬뽕 먹어보고 맛있으면 시키자”
애들이 말한다.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을 못 가고 아무데나 들어와서 아직 의심이 되나 보다. 조금 먹다 맛없으면 다른 곳으로 바로 옮길 기세다. 무서운 놈들이다. 그리고 나가사키 짬뽕이 드디어 나왔다. 영목이가 먼저 국물 한 숟갈 먹더니 말한다.
“야! 맥주 시켜라!”
역시 나가사키 짬뽕은 무조건 맛있다. 배고픈 우리는 아무 말없이 열심히 짬뽕과 맥주를 들이키고 다음 계획을 향해 가기로 했다.
“나가사키 야경이 세계 10대 야경이래. 가자!”
전에 나가사키 왔을 땐 낮에 당일 치기로 왔어서 야경은 못 봤었다. 짬뽕집 아주머니에게 야경 보러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나가사키 역으로 가면 7시에 야경 보러 가는 무료 셔틀 버스가 있단다. 얼른 노면전차를 타고 나가사키 역으로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비 오는 밤의 나가사키는 이미 아름답다.
나가사키 역에 도착해 셔틀버스 타는 곳을 찾아 줄 서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뒤로 점점 줄은 길어지고 빨리 기다리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버스가 온다. 드디어 세계 10대 야경을 보는구나 하고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표를 보여달란다. 황당해서 무료셔틀 버스 아니에요? 하고 물어보니
“무료는 맞는데 안내 데스크에서 표를 예약하고 와야 합니다”
30분 넘게 열심히 기다리고 다시 표를 끊어서 또 30분 넘게 기다릴 생각하니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냥 야경을 포기하기로 했다.
“에이 시간도 남는데 아까 노면 전차 타고 오면서 봤는데 카스텔라 가게 1호점 가서 카스텔라나 사자”
그렇게 다시 노면 전차를 타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카스텔라 명가 ‘분메이도’ 에 내렸더니 이미 늦은 시간이라 빵이 다 팔렸는지 문 닫았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기선이가 후쿠오카에서 사온 한정판 새 신발도 점점 비에 젖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선이는 짜증내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그럼 기념품이나 좀 사게 돈키호테나 가자”
또 다시 노면 전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 숙소 근처 차이나타운 시안바시 역에 내렸다. 배가 고파 뭐 좀 먹을까 했지만 차이나타운 시장은 이미 문을 다 닫았다. 그래서 그냥 맥도날드로 가 대충 햄버거라도 먹고 돈키호테로 가 미친 듯이 쇼핑을 하고 나왔다. 이렇게 나가사키에서의 밤도 끝났다.
다음 날 아침
아침 10시 10분 비행기라 일찍 일어나 얼른 짐을 챙겨 나가사키 역으로 가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나가사키 공항으로 갔다. 나가사키 공항은 라오스 비엔티안 역만큼 작다. 체크인 카운터도 딱 두 개밖에 없다. 얼른 체크인을 마치고 게이트를 통과해 짐 검사를 했다. 게이트 앞에 제일 먼저 줄 서서 기다린 기선이가 짐 검사를 하고 무사히 통과했다. 다음은 영목이. 뭔가 걸렸는지 가방을 다 열어보란다. 그리고 나도 걸렸다.
사실 우린 어제 돈키호테에서 기념품으로 젤리를 두 봉지씩 샀다. 분명히 기선이도 가방에 들어있었을 텐데 그냥 통과되고 영목이가 걸리는 바람에 나까지 걸렸다. 그래서 영목이는 체크인 카운터까지 다시 달려가 수화물로 젤리를 붙이고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
되는 일 하나 없고 비 와서 옷과 신발은 다 젖었지만 즐거웠던 나가사키 여행.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