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파도키아에서의 캠핑

by nelly park


아주 푹 잤다. 침대 옆 큰 창문에 커튼을 치고 잤더니 빛이 아예 안 들어와서 아주 아늑하게 잤다. 체크아웃이 10시반이라 짐을 챙겨 내려가서 체크아웃을 하고 가방을 맡겼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 갔었던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잔하고 맥주 하나 사서 테라스로 올라갔다. 오늘은 꿈에 그리던 카파도키아에서의 캠핑이다. 너무 일찍 가도 할 게 없으니 테라스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 4시쯤 나가기로 했다.


기암괴석 앞에 텐트를 치고 머리 위로 떠다니는 열기구를 보고 싶었다. 어제 간 코스가 아닌 다른 코스에서 열기구 랜딩 포인트를 발견했다. 전체 코스는 18.5키로지만 6.5키로 지점 쯤에 포인트가 있다. 거기를 지나서 악다크 (Akdag) 산 정상도 360도 파노라마처럼 뷰를 볼 수 있는 포인트라고 한다.


점심은 뭐 먹지 하다가 도윤씨가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처리해야 한다고 해서 빵에 치즈와 햄과 오이를 넣어서 간단하게 먹었다.


20250511_121004.jpg


원래는 내일 야간버스로 이스탄불로 가서 하루 묵고 다음날 비행기로 포르투갈로 날아갈 예정이었지만 카파도키아에 하루라도 더 있고 싶어서 찾아보니 이스탄불행 비행기가 5만원 정도다. 버스와 만5천원 차이다. 이 정도면 여기 하루 더 묵고 이스탄불 공항에서 노숙하고 바로 포르투갈로 가는게 낫겠다 싶어서 비행기를 예약했다.


28살 도윤씨는 고려대 대학생인데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어느날 여행유투브를 보다 가슴이 뛰어 나도 도전해보자하고 나왔단다. 그래서 영상을 편집하느라 바쁘다. 얼굴도 잘 생겼는데 똑똑하고 착하기까지 한 친구다. 나도 오랜만에 한국말해서 너무 좋다.


62년생 야스히로상은 젊었을 때 정말 여행을 많이 하셨다. 결혼하시고 여행을 못하시다가 30년만에 다시 여행을 나오셨단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셔서 이번 여행이 너무 힘들다고 하신다. 옛날에는 어디를 가도 일본인 여행자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고 하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많던 일본인 여행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서 내가 있어서 너무 좋으시단다. 도윤씨와의 대화도 내가 없으면 힘들다. 내가 중간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통역해준다.


이렇게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미친듯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야스히로상은 걱정이라며 오늘 산에서 자지 말고 여기 하루 더 묵고 내일 가는건 어떠냐고 몇번이나 물어보신다. 오늘 저녁에 천둥번개와 비도 예보되어 있어 걱정되긴 해도 오늘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내일 오후도 비 예보다. 갔다와서 여기 1박 더 하러 온다니까 도윤씨와 야스히로상도 여기 하루 더 연장하겠다고 한다. 작별 인사를 하고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배고파서 가는 길에 버거킹에 들러 햄버거 세트 하나를 먹고 작은 물도 두개 샀다. 캠핑하려고 정해놓은 포인트까지 6.5키로 밖에 안되니 부지런히 사진 찍으며 천천히 걸었다. 한시간 반쯤 지나니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번개 소리가 들린다.



앞에 걸어가던 서양인 여행자가 안되겠다며 발길을 돌리고 돌아간다. 나는 여기서 잘 생각으로 왔으니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 한시간 반 정도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다 빗방울이 한 두방울씩 떨어지더니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여기는 탁 트인 계곡이라 숨을 나무 밑도 비 피할곳도 없다. 저 멀리 떨어진 곳에 평지가 보여서 뛰었다. 이미 온 몸이 다 젖었고 가방도 다 젖었다. 얼른 텐트를 꺼내서 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메트에 바람을 넣고 침낭을 깔았다. 가방 안도 조금 젖었지만 다행히 메트와 침낭은 문제없다. 텐트 안에 앉아서 텐트를 토도독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텐트를 살짝 열어 밖을 구경했다.



비가 그치면 얼른 철수해서 오늘의 목적지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내일 아침 눈 떴을 때 텐트를 열면 여기에서 일출이 보이고 머리위로 열기구가 떠다니는 것을 바라는 수밖에. 이런저런 생각하다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9시쯤 잠이 들었다.


20250511_184941.jpg
20250511_195257.jpg
20250511_194902.jpg
20250511_195447.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안탈리아에서 카파도키아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