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에서 포르투 가기

29시간의 여정

by nelly park


첫번째 여정은 아침 7시반 스위스 취리히행 비행기다. 공항에서 노숙을 하고 갈 계획이었어서 일단 배가 고파 파파이스로 갔다. 제일 맛있어 보이는 세트메뉴를 보니 510리라다. 지갑을 보니 정말 딱 510리라가 남았다. 터키 리라를 탈탈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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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깐이라도 눈을 부쳐야하니 의자들 중에 최대한 팔걸이가 없어서 누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입고 있던 경량 패딩은 벗어서 색 안에 넣으니 훌륭한 베개가 되었다. 다리를 쭉 뻗고 누웠지만 좁고 딱딱해서 불편하다. 계속 뒤척이긴 했지만 그래도 세시간 정도 누워서 눈을 부치고 5시쯤 일어났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치고 출국심사를 하고 공항 보안검색대를 거쳐 나왔는데 보딩 패스가 없다. 보안검색요원에게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보딩 패스가 없어요. 근처에 떨어 뜨린 것 같은데 찾아봐도 되나요?”


“괜찮아요. 보딩 게이트로 가서 잃어버렸다고 하면 다시 만들어 줄 거에요. 그냥 가셔도 됩니다. 걱정 마세요.”


보딩 게이트로 가서 줄을 섰고 내 차례가 되어 보딩 패스를 잃어버렸다고 하니 괜찮다고 비어 있는 자리를 준다. A6번 자리에 앉으란다.


A6번 자리에 앉으니 내 덩치에 두 배는 되는 할아버지가 옆자리에 앉는다. 엉덩이가 너무 커서 내자리로 삐져 나왔고 안전벨트는 할아버지의 거대한 배를 두르기에는 너무 짧아 승무원에게 연장하는 벨트를 받아 간신히 채운다. 안전벨트를 연장하는 벨트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앞자리에선 아기가 계속 울고 뒷자리에선 계속 다리를 떨어서 내 의자가 진동으로 흔들린다. 두시간 반만 참으면 된다하고 피곤해서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사람들이 다 짐을 찾아서 내리고 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비행기 정비 이슈로 다른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한다. 자느라 아무것도 못들은 나는 일단 내려서 앞 사람들을 따라갔다. 바뀐 보딩 게이트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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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딩 패스와 여권을 검사하는데 보딩 패스는 잃어버려서 없고 A6번에 앉으라고 했다고 하니 직원은 웃으며 여기 뒷자리가 다 비었는데 혼자 앉을 수 있는 곳으로 주겠다고 한다. 바뀐 비행기가 더 큰 비행기인가 보다. 다행이다. 혼자 넓게 앉아서 푹 자면서 왔다.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에서 두 시간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이제 네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오히려 좋다. 짐을 찾아서 스타벅스로 갔다. 커피 한잔이 간절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를 시켰는데 한국돈으로 계산해보니 만2천원이다. 스위스 물가가 악명 높은 것 말로만 들었지 엄청나다. 비싼 커피라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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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공항은 생각보다 길이 복잡하다. 복잡하기 보다는 길 안내 표지판이 인천공항에 비해 적다. 헤깔려서 좀 헤매다 포르투행 비행기 이지젯 카운터를 찾아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로 갔다.


여기도 20분 연착이다. 끈기있게 기다리고 보딩 시간이 되어 게이트 앞으로 갔는데 앞에 있는 포르투갈 할머니 케리어가 꽤나 크다. 직원이 무게를 재보니 중량초과라 돈을 더 내야 한다니까 그럴수 없다고 끝까지 버틴다. 직원도 절대 안된다고 물러서지 않으니 할머니 혼자 중얼거리며 케리어를 쿵하고 내리고 일부러 소리나게 케리어 문을 열고 짐을 정리한다. 그러다 잠깐 사라졌다가 누군가에게 케리어를 맡아달라고 했는지 비닐봉지에 짐을 넣어서 다시 가니까 직원이 케리어는 어디갔냐고 이렇게는 탑승 못한다고 완강하게 막아선다. 그렇게 실랑이 하는 바람에 나를 포함한 다른 승객들 탑승도 늦어졌다. 일단 들어와서 비행기에 앉았는데 맨 나중에 할머니가 그 빨간 케리어를 가지고 비행기에 탄다. 돈을 더 냈는지 그냥 봐준건지는 모르겠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진상은 있는 것 같다.


두시간 반쯤 자고 일어나니 비행기가 착륙준비를 한다. 창문을 보니 장난감처럼 보이던 건물들이 바로 옆으로 보이고 비행기가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이제 쿵하고 착륙만 하면 되는데 착륙하기 직전 다시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무슨 일이지. 다들 혼란스러워하며 웅성웅성거린다. 그리고 기장의 방송이 나온다


"지금 날씨 이슈로 착륙 못하고 한바퀴 다시 돌고 착륙하겠습니다. 흔한 일이니 계속 앉아서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시길 바랍니다."


동요하지 않으려 했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불안해보인다. 다시 비행기가 구름속을 지나가고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렇게 20분 정도 하늘을 크게 뱅글 돌던 비행기는 활주로에 쿵하고 착륙했다. 순간 박수가 터져나온다.

드디어 포르투갈에 왔다. 카파도키아에서 포르투에 오기까지 29시간이 걸렸다. 짐을 찾아 나와서 구글 지도에 나온대로 메트로 역을 찾았다. 오늘의 알베르게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알베르게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다.) 메트로 역까지 가는 길을 못 찾아 철로를 가로질렀다. 여기 티켓 시스템을 모르겠다. 사람들이 바코드 기계 같은거에 카드를 찍길래 나도 따라했는데 인식이 안된다. 일단 메트로를 타고 내리면 또 찍는 곳이 있겠지 하고 탔다.


꽤나 북적거리는 메트로 안에서 메고 있던 가방을 밑으로 내리고 서서 창문밖으로 포르투갈을 감상했다. 30분정도 지나 목적지에 내리고 역을 나오는데 카드를 찍는 곳도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장치도 없다. 나오니 바로 밖이다. 얼떨결에 무임승차를 해버렸다. 물어볼 직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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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역에서 5분정도 걸어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규화가 내려온다. 인도에서 처음 만나 같이 여행하고 거의 10년만이다.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 방에 가방을 내려놓고 얼른 장을 보러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저녁 7시쯤. 오늘 하루종일 기내식 하나밖에 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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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과 목살을 섞어서 1.2키로 정도 사고 와인 세 병을 샀다. 이렇게 해서 16유로다. 1인당 8유로에 푸짐한 저녁이다. 배가 터지게 먹고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하고 피곤함과 술기운에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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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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