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침대의 윗층에 잤다. 내 밑의 사람이 코를 너무 크게 골아서 몇번 깼다. 7시쯤 되어 샤워하고 밑에 분이 굿모닝 하는데 너무 단아한 서양 아주머니다. 이런 분이 그런 소리를 내다니 충격적인 반전이다. 아침으로 규화와 카누 커피 한잔씩 하고 8시쯤 알베르게를 나섰다. 해안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걸어가는게 정석이지만 재미 없는 도시를 걷게 될 거라 메트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리키안웨이도 그랬지만 모든 코스를 억지로 완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곳을 보고 즐겁게 걷는게 우선이다. 규화도 같은 생각이다.
메트로로 30분 정도 걸렸다. 내려서 조금 걸으니 바로 바다가 보인다. 카미노 표식인 조개 모양과 화살표도 보인다. 이제 시작이다. 조금 걷다 카페에 스탬프 찍는 곳이 있다. 스탬프도 받을 겸 커피와 빵을 시켰다. 아이스커피를 시켰지만 일반 커피에 얼음 몇 개 넣어주는 커피가 나온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커피를 차갑게 안 마셔서 그런가 보다. 얼음이 조금 녹고 덜 뜨거운 커피가 되었다. 빵도 반씩 나눠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바다가 시작되고 나서는 계속 데크길이다. 리키안웨이의 바다와는 다른 색이다. 돌 색깔도 다르고 피어있는 꽃과 식물도 다르다. 기온은 19도 정돈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땀이 안난다. 카미노 포르투갈길은 평지라 길이 쉽다고 들었는데 정말 길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길을 알려주는 표식은 생각보다 많이 없다. 화살표를 잘 찾아 걸어야 한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걷는다. 다양한 나이대와 인종이 있다. 그들의 패션을 보는 것도 즐겁다. 한 시간에 한번 정도씩 쉬며 걸었다. 메트로로 거리를 꽤나 줄여서 2시 좀 넘어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도착한 알베르게는 3시 오픈이다. 오는 길에 봤던 마켓에 들러 맥주를 사와서 알베르게 앞에 앉아 마시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일찍 와서 좋은 자리를 받았다. 여기는 공립 알베르게라 하룻밤에 단돈 10유로다. 얼른 장을 보러 갔다. 키친을 보니 누군가 남겨두고 간 파스타면과 토마토 소스가 있어서 삼겹살 토마토 파스타를 해먹기로 했다. 삼겹살 500그램과 버섯과 피망 그리고 내일 아침에 먹을 빵과 와인도 두 병 샀는데 11유로다. 나와 포르투갈길을 걷기 이틀전에 프랑스길을 끝낸 규화가 말한다.
"형 진짜 가성비 유럽여행은 카미노가 짱이에요. 이렇게 여행하면 하루에 3만원도 안써요."
진짜 숙소값 포함해서 하루에 3만원도 안 쓰는 것 같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얼른 불을 올리고 냄비에 삼겹살을 구웠다. 인덕션이 하나밖에 없어서 냄비 하나로 다 해치우기로 했다. 삼겹살을 먼저 굽고 잘라서 접시에 덜어놓고 거기에 야채들을 볶고 물을 부어 끓이고 파스타면을 삶았다. 파스타면이 익고 물이 자작해졌을 때 토마토 소스와 삼겹살을 넣고 볶고 그 위에 치즈 스트링을 넣었다. 괴상한 요리가 탄생했다. 약간 슴슴한 것 같아 규화가 가져온 라면 스프를 넣었다. 비쥬얼은 이상하지만 꽤 먹을만 했다. 와인까지 곁들이니 딱 좋다.
오랜만에 걷고 그저께 이동하느라 잠을 많이 못자서 졸음이 몰려온다. 7시가 넘었지만 밖은 아직 밝다. 여기는 일몰이 8시 48분이다. 잠깐만 눈 부친다는게 기절해버렸다. 눈을 뜨니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