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포르투갈길 4일차

by nelly park


잠을 거의 못 잤다. 과식한 탓에 체온이 올라 너무 더웠다. 뜨거워진 몸 때문에 방에 있는 모기가 나한테만 오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한방에 자고 있어서 불을 켜고 박수 쳐서 모기를 잡을 수도 없다. 간신히 잠이 들려고 하면 또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피곤한 여정 당첨이다.


어제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를 먹고 짐을 싸서 나왔다. 오늘도 27키로 정도 걸을 예정이다. 도시를 가로 질러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 보니 예쁜 꽃과 풀들이 키 높이까지 자라 있는 밭이 나온다. 걷다가 만난 미국인 아주머니가 우리가 가려던 방향 말고 왼쪽으로 가면 더 빠르고 풍경도 좋다고 했지만 우리는 구글지도를 보며 직선으로 계속 걸었다. 좀 걷다 보니 우리 바로 뒤에 있던 서양인 여자가 우리보다 앞에 걸어가고 있다. 아주머니 말을 들었나 보다.

반가운 기부대가 나온다. 각종 과일과 조개껍질이 있다. 가져갈 만큼 가져가고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면 되는 시스템이다. 드디어 스페인으로 가기 전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날에 조개껍질을 사서 가방에 걸었다. 이제야 진정한 순례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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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건물들과 성당을 지나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2시쯤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장을 보러 나갔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모든 가게와 마트가 문을 닫는 날이다. 혹시나 하고 나가본 마트가 문을 열었다. 오늘은 까르보나라와 샐러드다. 마트에 갈때마다 느끼는 건 왜 여기 사람들은 차가운 맥주를 안 마시는 건지 궁금하다. 냉장고에 맥주가 없다. 간혹 가다 한 두 종류의 맥주 몇 캔을 넣어놓는 마트도 있긴 했지만 여기도 차가운 맥주는 없다. 또 와인을 샀다. 와인이 싸고 맛있는데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이것저것 마셔보는 재미가 있다.


3시가 안 되어서 숙소에 도착했지만 이미 체크인을 시작했는지 기다리는 사람도 가방도 없다. 놀라서 들어가니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체크인을 했다. 방은 1층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난민수용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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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러 가는 길에 골동품 벼룩시장이 열렸다. 몇 백년은 되어 보이는 그릇과 접시와 동상도 있고 오래된 마시다 만 술도 있고 옷도 낡은 옷과 녹이 슨 자동차 부품까지 별 게 다 있다. 고조 할머님이 물려주신 것 같은 멋진 물건도 있고 버리려고 창고에 모아둔 것을 그냥 가져온 것 같은 물건도 많다.
얼른 씻고 어제 잠을 거의 못 자서 꿀맛 같은 낮잠을 두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리셉션에 카미노 포르투갈 지도가 그려진 티셔츠가 있어서 샀다. 그걸 보고 독일 아저씨가 멋지다며 따라 샀다. 얼굴도 배도 동글동글 귀여운 아저씨다. 규화와 내가 요리를 시작하니 온 주방에 맛있는 냄새가 퍼진다. 다들 외식하거나 간단하게 먹는데 규화는 까르보나라를 하고 나는 삼겹살을 구우니 다들 와서 한마디씩 한다.



"여기는 축제구나, 냄새 너무 좋다"



독일 아저씨는 아 맥주 생각난다 하길래 내가 마시던 맥주를 드렸다. 반정도 꿀꺽꿀꺽 삼키더니 고맙다고 과일과 매운 인도 고추 한번 먹어보라고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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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오늘은 어제처럼 과식은 안 해서 잘 잘 수 있길 기도하며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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