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다. 이제 오늘만 걸으면 끝난다. 기분이 이상하다. 일찍 도착해서 즐기고 싶어서 또 6시에 출발했다. 아직 날은 어둡지만 길을 밝다. 역시 도시의 가로등은 꽤 환하다. 오늘도 헤드 랜턴을 꺼내 놨지만 쓸 일은 없다. 마음도 가볍고 발걸음도 가볍다. 가방도 가볍게 느껴진다. 일찍 일어나도 피곤하지 않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고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들 같은 마음인가보다. 표정이 밝다. 각자의 이야기들은 다 다르겠지만 오늘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은 같을 것이다. 두시간쯤 걷고 나온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잔했다. 오늘은 블랙커피와 함께 컵에 얼음을 4개나 준다. 기분 좋음의 연속이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구경하며 여유 있게 앉아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비석에 적혀 있는 키로 수가 어느새 20키로 이하로 줄었다. 진짜 얼마 안 남았다. 280키로라고 적혀 있는 비석을 보고 출발하였었는데 이제 20키로라니 새삼 다 온 걸 또 느낀다. 길 옆에 피어 있는 다양한 색깔의 꽃들도 예쁘고 감색 지붕의 집들도 햇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듯하다. 저 멀리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니 남자분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끝까지 낭만있는 까미노다.
이제 산티아고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이 자주 나오기 시작하고 도시에 들어왔다. 비석에 적힌 숫자도 10키로, 9키로, 8.. 계속 줄어든다. 저 멀리 뾰족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도 눈에 들어온다. 이미 여기 와본 규화가 길을 안내한다. 다왔다. 12시쯤이다.
"형, 대성당 가기전에 인증 사무소 가서 먼저 인증 받아야 해요. 대부분 잘 몰라서 성당 먼저 갔다 오는데 어차피 인증 받으러 다시 내려와야 해요."
경험자와 함께하니 든든하다. 인증을 받으러 가니 여러 곳에서 시작한 순례자들이 모여 있고 들뜬 마음으로 인증서를 받고 있다. 프랑스길만큼 오래 걷지는 않았지만 인증서를 받으니 왠지 마음이 뭉클하다. 그리고 그대로 대성당으로 올라갔다. 탁 트인 광장에 많은 순례자들이 행복에 들떠 있다.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 또 있을까. 누군가는 기쁨에 소리치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리도 대성당을 배경으로 인증서와 그동안 열심히 모은 도장을 펴서 사진을 찍었다.
큰 일을 끝냈는데 조금 더 기분을 즐기고 싶어서 타파스 바에 가서 새우 타파스와 큰 생맥주 한잔을 먹었다. 그동안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먹는 맥주도 맛있었지만 모든 걸 끝내고 마시는 맥주는 다른 차원이다.
오늘 머물 알베르게가 오르막길에 있다고 해서 장을 먼저 보러 갔다. 역시 고기파티다. 삼겹살과 목살과 와인 세 병을 샀다. 배낭 무게에 음식과 와인까지 병째로 넣고 걸으니 많이 무겁다. 거기다 알베르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르막길 위에 있었다.
얼른 체크인을 하고 씻고 주방으로 가서 고기를 구웠다. 내가 고기를 구울 동안 규화는 냄비로 밥을 하고 목살 양념을 했다. 와인 두 병을 거뜬히 비우고 배가 터지게 먹고 잠깐 낮잠을 잤다. 모든 긴장이 풀린다.
7시반쯤 밖으로 나가 만찬을 즐겼다. 오픈하기 전부터 이미 긴 줄이 서 있는 괜찮아 보이는 식당으로 가서 에피타이저 3개에 메인디쉬도 3개 시켰다. 와인도 그동안 싼 것만 마시다 웨이터에게 추천 받은 좋은 와인도 마셨다. 기분 좋게 다시 대성당 광장으로 가니 공연을 하고 있다. 아마 거기에 있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우리와 같은 기분이 아닐까.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진다.
기쁨과 행복함만 있는 도시다. 끝났다 까미노! 부엔까미노를 말하며 걷던 날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