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셋쨋 날
새벽에 텐트를 토독토독 때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빗소리가 아니다. 눈소리다. 텐트 전실 밑을 보니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얼른 텐트 문을 열고 밖을 봤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는 않았고 진눈깨비가 흩날렸는지 바닥에 눈은 많이 쌓여 있지는 않다. 하늘은 흐리다. 텐트 밖으로 나가 아직 쌀쌀해서 몸을 웅크리고 한참 구경하다 양치질을 했다. 오늘도 제일 먼저 일어난 김에 친구들을 깨웠다.
"얘들아 일어나봐 눈 왔어"
각자의 텐트에서 매트가 부대끼는 뿌드득 소리가 들리면서 텐트 문들을 연다.
"굿모닝"
오늘은 7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준비완료하고 내려가기로 했었다. 오늘 할 일이 많다. 하산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온천에서 씻기도 해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긴 이동도 해야 한다.
다 같이 쉘터 안으로 들어가 물을 끓여서 커피와 어제 산장에서 사온 빵을 먹었다. 배고픈데도 빵이 맛이 없는 거 보니 정말 맛없는 빵이다. 어제 산장에서 이것저것 많이 사서 쓰레기가 많이 나왔다. 빈 컵라면 용기와 빈 맥주 캔 그리고 통조림 등등. 산장에는 산장에서 사서 나온 쓰레기만 버릴 수 있다. 다 가지고 하산하기엔 무거울 것 같아 한 명만 산장으로 올라가서 버리고 오기로 어젯밤 가위바위보를 했었다. 은정이가 걸렸다. 다 같이 쉘터를 정리하는 동안 은정이는 산장으로 혼자 갔다. 누가 같이 가달라고 할 수도 있는데 쿨하게 갔다 왔다.
다같이 텐트를 접고 나니 눈 때문에 흐렸던 하늘이 다시 파래진다. 얼른 내려가야 하는데 너무 멋진 구주산이 눈에 밟힌다. 결국 9시가 다 되어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에 눈이 쌓여 하얀 길을 걸을 수 있길 기대했지만 해가 떠서 눈은 거의 다 녹아 있다. 그래도 올라왔던 때와 똑같이 내려가는 길도 예쁘다. 2시간쯤 걸려 11시쯤 내려왔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 내려오는 내내 배가 고팠다. 온천에서 씻고 나서 밥을 먹을 까도 생각했었지만 도저히 안되겠다.
들머리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문하는 키오스크에 가보니 몇 가지 메뉴가 있다. 가장 푸짐해 보이는 고기우동 세트로 넷 다 통일해서 시켰다. 당연히 생맥주도 하나씩 시켰다. 운전해야 하는 건우는 콜라를 시켰다. 건우에게 미안하다. 다들 배가 고파서 깔끔하게 싹 먹어 치우고 식당 옆에 있는 몽벨에 갔다. 전에 왔었을 때 구주산이 적혀 있는 티셔츠를 사고 싶었지만 없었는데 이번에는 있다. 그러나 디자인이 너무 별로라서 안 샀다. 각자 구경만 하고 오늘 캠핑장에서 쓸 이소가스만 두개 샀다. 그리고 주인 아저씨에게 근처에 온천을 추천해달라고 여쭤봤다.
“여기 바로 앞에 있는 건물도 온천이에요. 그런데 며칠전에 친구가 갔었는데 물이 안 나온다고 했었어요. 그리고 저기 창문으로 경찰서 뒤에 건물 보이시죠? 저기도 온천인데 가격도 싸고 깔끔해요”
원래는 차를 타고 조금 떨어진 곳을 찾아 놨었지만 아저씨 말씀대로 경찰서 뒤에 있는 온천으로 갔다. 각자 150엔짜리 수건을 사서 각자 남탕 여탕으로 들어가면서 1시간 10분 후에 만나기로 했다.
들어간 온천은 호케인 산장 온천보다 훨씬 넓고 깨끗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하산하면서 지친 몸을 풀었다. 배도 부르니 노곤노곤 졸리다.
깔끔하게 씻고 나와서 다시 차를 타고 오늘의 캠핑장이 있는 카라츠로 출발했다. 카라츠는 후쿠오카에서 왼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있는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도시다. 고속도로로 들어가기 전 카페에 들러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잔씩 하기로 했다. 작은 카페에 들어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네 잔 시키니 병에 미리 내려놓은 더치커피를 보여주시면서
“네 잔은 시간이 많이 걸려요. 두잔이라면 지금 바로 해드릴 수 있어요“
두 잔만 시켜서 앞자리에 건우와 나, 뒷자리에 연수와 은정이가 나눠 마시기로 했다.
건우는 일본의 좌측 운전에 완전 적응한 듯하다. 원래 운전을 잘 하는데 차선을 헷갈리지 않고 안정감 잘 간다.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속도위반 카메라를 잘 피해가며 갔다. 일본 고속도로는 카메라가 많이 없다. 그리고 네비에서 카메라가 있다고 알려주지도 않는다. 조심조심 잘 피해가며 운전해야 한다. 그래도 3시간 예정을 2시간 반 걸려서 카라츠에 있는 할인 마트에 도착했다.
어제 보가츠루에 산장털이한 것들 (컵라면, 통조림, 과자 등등)을 먹으며 다 같이 다짐했었다. 내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들 사서 신나게 먹자고. 그래서 카트 가득가득 담았다. 와규와 대패삼겹살, 닭꼬치, 참치초밥, 오징어회, 유부초밥으로 배를 채우기로 하고 오이와 귤, 딸기로 디저트를 하고 젤리와 과자로 씹을거리를 하기로 했다. 술도 종류별로 각자 좋아하는 걸로 가득 담았고 내일 아침에 먹을 라면도 샀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맛있어 보이는 것은 다 담았다.
준비가 끝났다. 차에 먹을 거리를 가득 싣고 카라츠에서 30분거리에 있는 하도 미사키 캠핑장으로 갔다. 이틀동안 산에서 잤으니 이번엔 바다가 보이는 곳이다. 차를 타고 조금 가니 바다가 나오더니 이내 너무 멋진 캠핑장에 도착했다. 리셉션으로 가서 안내를 받고 L17번 사이트로 갔다. 차를 주차하고 내리니 앞으로 바다가 뻥 뚫려 있고 옆으로는 멋진 해안절벽이 있다. 거기다 오늘은 여기 우리 밖에 없는 것 같다. 얼른 각자 텐트를 치고 쉘터를 치고 음식과 술을 가지고 쉘터 안으로 모였다. 산에서 내려와서 그런지 원래 오늘 날씨가 그런 건지 바람도 없고 날씨도 포근하다.
쉘터 안에 오늘 장봐 온 것들을 한 번에 펼쳐 놓으니 정말 많이 샀다. 든든하다. 어젯밤 그렇게 못 먹은 것도 아니었지만 오늘 뭔가 한을 푼 느낌이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참치초밥으로 시작했다. 와 참치초밥이 이런 맛이었던가.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건우와 나는 산토리 위스키를 사서 진저에일과 얼음에 섞어서 하이볼을 만들어 먹었다. 연수는 보리소주를 마셨고 은정이는 향이 많이 없는 사케를 마셨다. 다른 취향은 다 비슷해도 술 취향은 이렇게 다르다.
본격적으로 와규를 굽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피곤한 건우에게 은정이가 고기를 굽겠다고 해도 건우는 집게를 놓지 않는다. 모든 걸 직접 해야 하는 성격이다. 와규 밑에 버터를 녹여서 굽고 미디엄 레어 정도에서 입안으로 쏘옥 집어넣으니 고소한 풍미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하이볼도 끝없이 들어간다. 구운 와규를 유부초밥 위에 올려먹으니 또 한 번 난리가 난다. 세상에서 탄수화물만큼 맛있는 것은 없나 보다. 대패 삼겹살을 굽기 전에 오징어회로 살짝 입을 헹궈내고 대패 삼겹살에 또 짠! 하고 닭꼬치를 구워서 또 짠! 야끼교자를 구워서 또 짠! 하고 마지막으로 첫날 사서 조금 남은 명란구이에 오이를 먹었다. 어느새 사온 산토리 위스키 한 병을 다 먹었다.
이제 슬슬 자자고 하는데 연수는 아직 파티가 끝나지 않았나 보다. 일본 막걸리 사온 걸 더 마시자고 한다. 지금 취해서 마셔도 어차피 기억도 잘 안 나고 맛도 기억 안 날 거라고 하니 연수가 취하면 하는 그 대사가 나온다.
“니네가 뭘 알아!”
더 마시라고 하고 나와 은정이는 각자 텐트로 들어갔다. 쉘터 바로 뒤에 내 텐트가 있어서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 소리에 오늘 잘 수 있을까 생각하다 스르르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