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치메

by nelly park


최대한 늦게 일어났다. 해가 뜨니 바로 텐트안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오니 그래도 밖은 바람 때문에 시원하다. 체크아웃 시간이 11시반이라서 조금 걸어 보기로 했다. 캠핑장 정문이 아닌 뒤로 난 도로를 따라 걸어가보니 호수와 마트가 나온다. 어제는 이 길을 몰라 찻길을 걸어갔었다. 배가 고파서 마트에 가서 파니니와 커피 한잔을 먹었다. 마트는 좀 특이한 시스템인데 음식을 시키려면 먼저 티켓을 결제를 하고 주문을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티켓 사는 곳과 음식과 커피를 주는 곳과 마트 결제하는 곳까지 총 세 곳인데 직원은 2명 밖에 없다.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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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보며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고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11시쯤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서 아까 봐 뒀던 벤치에 앉았다. 오늘은 트레치메(Tre cime)에 갈 예정이다. 이탈리아는 캠핑이 금지고 해가 지고 비박형태를 암묵적으로 허용을 해서 최대한 늦게 가야 해가 질때까지 오랫동안 안 기다릴 수 있다. 트레치메로 가는 버스가 4시 50분에 있어서 그걸 타기로 했다. 이제는 그 시간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벤치에 앉아서 호수도 구경하고 웹툰도 보면서 기다렸다. 3시반쯤되서 피자를 먹으러 갔다. 음식을 싸가지고 가지 않으려면 최대한 늦게 많이 먹고 가는게 좋을거 같다. 마트에서 피자 두개를 시켜먹었다. 역시나 피자 두개 시켜서 먹는데 오랫동안 기다렸다. 직원 한 명을 더 뽑는 게 적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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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기예보를 보니 비 예보가 있긴 했는데 강수량이 적기도 하고 어제도 비 예보가 있었지만 비가 안 와서 그냥 가기로 했다. 그리고 비는 오지만 하늘은 맑다. 시간이 돼서 버스를 타고 트레치메의 들머리로 갔다. 25분쯤 걸렸다. 도착한 트레치메는 구름과 안개에 쌓여 있다. 미수리나에서 본 파란 하늘은 없고 온통 회색에 하얗다. 그래도 비는 그쳤다.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높은 돌산들에 하얗게 낀 안개가 더 신비롭다. 물론 맑았다면 더 멋지었겠기만 기온도 시원하고 이것대로 그 맛이 있다. 길도 잘되어 있고 큰 오르막길도 없어서 걷기 좋다. 늦게 오니 사람들도 많이 없어서 좋다. 멋진 풍경에 감탄하다 7시가 넘어서 슬슬 텐트를 칠 곳을 찾으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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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초반에는 그래도 평평한곳이 좀 보였던 것 같은데 막상 찾으려고 하니 없다.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곳을 찾으려고 하니 더 없다. 8시가 되니 이제 마음이 좀더 급해진다. 얼른 찾아야 한다. 일몰은 9시쯤이다. 하는 수 없이 멀리 보이는 구릉 밑으로 걸어가봤다. 마땅한 곳은 없다. 대신 저 멀리서 뭔가 움직이는데 자세히 보니 티비에서만 보던 마멋이 나를 경계하며 서 있다.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카메라 줌을 땡겨서 사진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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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윗길로 올라가서 들머리에서 한바퀴 돌고 다시 시작점으로 가기 전 마지막 리푸지오를 지나고 코스를 벗어나 평평해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보니 저 밑으로 작은 호수 옆 평평한 곳에 몇명이 텐트를 치고 있다. 나는 혼자 있고 싶어서 거기로 안 가고 좀 더 걸어서 그 호수가 보이는 위쪽에 자리잡고 텐트를 쳤다. 슬슬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꽤 내린다. 텐트 안에 들어가서 텐트를 열고 비 오는 트레치메를 감상했다. 좀 있으니 돌풍이 많이 불어 텐트가 흔들려서 밖으로 나가서 가이라인을 치고 다시 들어왔다. 텐트를 열고 밖을 구경하고 있으니 텐트 안으로 비가 들어와서 텐트를 완전히 닫고 누웠다. 누우니 땅은 옆으로 기울어져 있고 울퉁불퉁해서 메트 밑으로 이것저것 넣어서 평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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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별구경을 해보려고 했지만 구름 때문에 보이지도 않을 것 같고 비도 많이 와서 그냥 텐트 안에 있기로 했다. 그리고 비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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