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치메
5시쯤 눈을 떴다. 다행히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텐트를 살짝 열어보니 아직 완벽하게 밝아지지는 않았지만 구름이 걷혀서 풍경이 좀더 선명해 보인다. 언덕위에 텐트를 쳐서 눈에 띄기 때문에 일찍 철수해야 한다. 얼른 짐 정리를 시작했다. 짐을 다 싸고 텐트를 나오니 밑에 호수 근처 팀들도 일어나서 슬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빗물에 젖은 텐트를 그대로 우비에 돌돌말아 가방 안에 넣고 걷기 시작했다. 날은 점점 밝아오고 하늘은 파랗다.
조금 걷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돌봉우리 사이로 해가 뜬다. 장관이다. 이거 하나보려고 어제 그렇게 기다리고 버스를 타고 걷고 해서 여기 왔나 보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한참 보며 서있다가 다시 걸었다. 또 구석에 아직 철수하지 않는 텐트가 하나 보인다. 이탈리아는 와일드 캠핑이 불법이라고 해도 다 하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피해 끼치지 않게 숨어서 자고 깨끗하게 치우고만 오면 될 것 같다.
1시간쯤 걸으니 벌써 어제 출발한 아우론조 리푸지오가 나온다. 아직 6시반밖에 안되었다. 오늘은 다시 코르티나로 가서 첫날 갔던 캠핑장으로 가야 한다. 내일 로마행 버스가 아침 9시반이라 다른 곳에서 자고 다시 버스로 코르티나까지 오기엔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코르티나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어제 잤던 미수리나로 가서 갈아타야 한다. 미수리나로 가는 버스는 11시에 있다. 또 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염없이 풍경을 보며 기다렸다. 구름이 끼지 않은 트레치메의 파란하늘은 정말 절경이다. 다시 한번 더 걷고 오고 싶지만 피곤하다. 가만히 앉아있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올라가고 또 버스에서 내려서 멋지다 감탄하고 올라가고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바라봤다. 시간이 되어서 버스가 왔다. 미수리나에서 내려서 코르티나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배가 너무 고파서 첫날 먹은 피자집으로 가서 피자 한판과 맥주 하나를 해치웠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버스라 정신이 없을 것 같아 기념품 티셔츠 가게를 찾아다녔지만 일요일이라 문을 다 닫았다. 피곤하다. 2시간을 찾아다녔다. 얼른 캠핑장으로 가서 누워야겠다. 마트에 들러서 작은 맥주 3캔을 샀다.
걸어서 35분거리다. 첫날 갔던 캠핑장에 갔는데 오늘은 가격이 올랐다. 29유로다. 6월 20일부터 시즌이라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점점 이 미친듯이 비싼 유럽의 물가에 힘이 부친다. 29유로면 4만6천원. 방에 자는 것도 아니고 텐트를 치는데 그정도 가격이라니. 29유로면 태국에서 넓은 개인방 호텔에 잘 수 있는 가격이다. 비교하면 안 되지만 모든 게 비싸서 한번쯤 멈칫하게 되는 것도 싫다. 그래서 항상 제대로 못 쉬고 배부르게 못 먹고 점점 지쳐간다.
젖은 텐트를 치고 조금 있으니 햇빛에 금방 마른다. 텐트 앞에서 맥주 한캔 마셨다. 원래는 캠핑장에서 좀 쉬다 브레이아스 호수에 갔다 오려고 했었다. 버스편을 알아보니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한다. 귀찮다. 억지로 뭔가 하려고 하지 말자. 맥주 한캔을 더 마시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서 널었다. 그리고 쉬며 한 캔 더 마셨다. 배가 고프면 시내까지 걸어가서 뭐 좀 먹으려고 했는데 왕복 한시간이다 지친다. 내일 먹자. 아직도 고민중이다. TMB를 갈지 아니면 태국으로 가서 맛있는 거 먹으며 쉴지. 그러면서 8년동안 안 가본 캄보디아 숙소도 찾아봤다. 3일에 29달러인 숙소도 있다. 강렬하게 땡긴다. 내일 일어나서 또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