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내게 준비된 것은 오직 호텔 예약 하나. 그마저도 조건은 단 하나였다. 걸어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일 것. 그렇게 선택한 곳은 산타모니카였다.
Los Angeles에 도착하자마자 우버를 타고 산타모니카로 이동했다. 그리고 산타모니카 피어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국의 바닷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눈앞에는 파란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가. 그곳은 무겁던 일상과 답답했던 14시간의 비행 내내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이번에는 계획이 아닌, 나의 발길 닿는 대로, 내가 느끼는 그대로 이곳을 걸으며 바라보기로 했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잠시 짐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나와 천천히 바닷가를 걸었다. 그 순간 자유가 느껴졌다. ‘자유’라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들, 선탠을 즐기고 물놀이하는 사람들, 누구의 시선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그들만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부러웠다.
어색하지만 나도 모든 걸 내려놓고 한 발, 두 발 내디뎌 보았다. 마음 가는 대로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내가 지금 보고, 느끼고, 듣는 이 모든 것들이 새삼스레 자유롭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자유를 느끼며 나의 첫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무런 계획도, 목적지도 없이 떠난 이곳에서 나는 그저 걸었고, 그저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 담백했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태평양과 해변, 그리고 사람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들,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누구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존재하는 이곳. 나는 그들 속에서 오랜만에,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날이, 고요하고 조용히 흘러갔다.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커피 한 잔을 들고 테라스로 나왔다. 오늘도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햇빛은 따뜻하게 나를 감싸고 있었다.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는데도 기분은 묘하게 상쾌했다.
나는 그 햇빛과 하늘, 바람, 그리고 공기를 깊게 느끼며 왜 '미국병'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묘하게 느껴지는 이 자유로움, 그리고 그 자유를 당연한 듯 누리는 이곳의 분위기. 나도 모르게 답답했던 삶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듯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어제부터 내가 걷고 있던 이 공간이 꼭 나를 위한 곳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그저 천천히 걸으며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그렇게 여유를 찾는 것. 그뿐이었다. 이곳에선 그걸로 충분했다. 아무런 일정도, 목적지도 없는 하루가 이렇게 풍성하고 의미 있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