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취증 환자의 이야기
시간이 지나면 오래된 것들은 낡고 녹슨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녹슬지도 않고 생생하다. 마치 어제의 일인것처럼.
내 기억 속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내 자리는 2분단 맨 뒷자리였다. 내 짝꿍의 건너편 자리, 3분단 맨 뒷자리에는 당시 우리 반에서 제일 뚱뚱하고 시끄럽고 짖궂은 남자애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별로 안 좋아했다. 그 아이가 가볍고 얄미웠달까? 어리고 미숙한 마음이었다.
어느 날도 역시나 자리에 앉아있는 내 귀로 시끄러운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 그 순간 쓰레기 차가 지나갈 때 나는 불쾌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 냄새는 수업시간 내내 계속되었고, 냄새에 예민했던 나는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 냄새의 근원이 분명 그 아이일거라고 예상했고 씻지도 않는 것이냐며 속으로 핀잔을 주었다. 그렇게 그 날의 학교 수업이 끝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분명 집에 돌아왔는데도 정체불명의 불쾌한 냄새는 계속 났다. 그 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냄새 나한테서 나는 건가?
그 이후로 그 냄새의 원인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여러가지로 나를 괴롭혔다.
물론 매일 매일 냄새가 나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종종 한 번씩 그 불쾌한 냄새가 어디선가 올라왔지만 나에게 최초의 냄새(?)의 기억은 강렬하게 각인되어버렸다. 불쾌한 냄새가 날 때면 틈틈히 나에게 냄새가 나는지 확인했고 친구가 이유없이 얼굴을 찡그리면 '나한테서 냄새가 나는 건가?'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논리적이고 근거가 없는 병리적인 의심의 시작이었다. 명확한 시작점도 없이 그냥 서서히 조금 더 자주 많이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냄새의 정체는 입냄새였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입냄새가 난다고 직접 전해들었던 순간은 지금 내 기억에 단 한번 뿐이다.
어느 날, 엄마가 인상을 찌뿌리며 "왜 이렇게 입냄새가 나니?"라고 물었고 나는 크게 당황했다. 나는 전혀 생각치 못했고 믿을 수 없었지만 엄마가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엄마가 말했으니 냄새가 확실한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 불확실성에 나의 불안이 더해졌다.
나는 입냄새가 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면 복화술사마냥 입을 최대한 벌리지 않고 이야기했고 그 마저도 친구들과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아픈 척 혹은 엎드려 잠자는 척, 어울리고 싶지 않은 척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여느 친구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함께 어울리고 싶었다. 나는 조그만 불덩이를 닮은 그 불안함 때문에 입냄새의 진위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의심을 주관적인 사실화해나가고 있었다. 불안에 휘둘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