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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서프라이즈] 미래를 달리는 작가, 쥘 베른의 소설 속 놀라운 예언들!.mp4_20200117_112029.04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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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이랄 것도 없겠다. 책 읽기. 귀를 기울여 꾸준히 끝까지 듣는 훈련이 다름 아닌 독서. 객관의 지평을 내면에 다지는 방식으로 가장 경제적이어서 효율적인 형태. 이게 책을 읽는 이유 아닌가. 아무튼 이외 각각 제기한 면면이 다 맞는 얘기. 3개의 일각이 진보라는 하나의 몸체를 이룬 게 아니겠나. 당연하잖아;; 그보다 『유리알 유희』 앞부분, 헤세가 묘사한 '잡문 시대'만 보아도 깜놀 @~@. 그도 그럴 것이 단에 오른 1인 집중 스타시스템의 강연 소비하는 다중 등, 이즈음과 똑닮은 모양새이니. 그런데 이 또한 조금 더 생각하여 보면, 사람 머릿속에서 이는 일들이래봐야 거기서 거기 임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 어차피 하늘 아래 새것 없으니 술이부작述而不作. 그러니 여시아문如是我聞 바탕으로 새로이 조합/재구성/편집하여 내놓는 것일뿐. 개중은 출현 당장에 사람 이목 끌기도 하겠고. 정신 영역 확장/개척, 이만큼 눈 밝아진 후세에나 겨우 닿는 형편도 있겠고. 그러니 요는 외려 제 근시안적 안목을 살펴 반성할 일. 시운時運이라 이르지만 실상은 이 근시안적 안목인 다중이 몰라보는 것뿐 아니겠나?! 그러니 '이상李箱'이 일렀던 바처럼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인 건 아닌지 저마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데서 진보는 비로소 가능하게 되겠지. 벌써 오래전 '호령'하였건만 '에코─'는 완행緩行이니 이거야 원 -_-;; 정말이지 '다른 데를 열심히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면 내내 '무인지경'과 다를 바 없겠다. 갑갑한 이편의 '매트릭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몽매 중 꾼 꿈, '호접지몽'의 '비밀한 통화구' 통해 저편으로 혼연일체 '낙역'되어야지. 이편과 저편 사이 경계, 더할 나위 없는 사死/즉卽/생生. '애벌레 탑' 쌓기 그치고 '나비' 되어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내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_이상, 단편 「날개」


Layer. 1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보아야 아니 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詩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이천 점에서 삼십 점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어 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 꼬랑지는커녕 쥐 꼬랑지도 못 달고 그만두니 서운하다. 깜빡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이지만 이태준(李泰俊) 박태원(朴泰遠) 두 형이 끔찍이도 편을 들어준 데는 절한다. 철(䥫)─이것은 내 새 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모에게도 굴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물론 다시는 무슨 다른 방도가 있을 것이고 우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딴은 정신병이나 고치겠다.

_이상, '오감도' 작자의 변


Layer. 2

산다는 것은 다른 데를 사는 것이다. 그래서 선의식에만 선이 있다는 양식. 이 심연. 그것은 '십 초간'의 간극이었고, 자유의 길을 막고 있는 벽이었다.
그 벽을 뚫어보기 위하여 나는 내 육체를 전쟁에 던졌다.
포로가 되었다. 외로웠다. 저 복도에서처럼 나는 외로웠다. (…) 그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나는 생활의 새 양식을 찾아냈다.
노예. 새로운 자유인을 나는 노예에서 보았다. 차라리 노예인 것이 자유스러웠다. 부자유를 자유의사로 받아들이는 이 제삼第三 노예가 현대의 영웅이라는 인식에 도달했다. 그 인식은 내 호흡과 꼭 맞았다. 오래간만에 생각해보니 나의 이름이 지어진 이래 처음으로 나는 나의 숨을 쉬었고, 나의 육체는 그 자유의 숨결 속에서 기지개를 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의 기만이었다. 흥분에 지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역사는 흥분과 냉각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지동설에 흥분하고, 바스티유의 파옥破獄에 흥분하고, '적자생존'에 흥분하고, '붉은 광장'에 흥분하고……. 늘 그때마다 환멸을 느끼고 했던 것이다.
그 노예도 자유인이 아니라 자유의 노예였다. 자유가 있는 한 인간은 노예여야 했다! 자유도 하나의 숫자. 구속이었고, 강제였다.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었다. '뒤'의 것이었다.
복, 영원……. 자유에서 빚어져 생긴 이러한 '뒤에서 온 설명'을 가지고 '앞으로 올 생'을 잰다는 것은 하나의 도살이요, 모독이다. 생生은 설명說明이 아니라 권리權利였다! 미신迷信이 아니라 의욕意慾이었다! 생을 살리는 오직 하나의 길은 자유自由가 죽은 데에 있다.
'自由' 그것은 진실로 그 뒤에 올 그 무슨 '진자眞者'를 위하여 길을 외치는 예언자, 그 신발 끈을 매어주고, 칼을 맞아 길가에 쓰러질 '요한'에 지나지 않았다.
거친 벌판에서 나는 다시 외로웠다.

_장용학, 「요한 시집」


Layer. 3

찢어진 벽지壁紙에 죽어가는 나비 유계幽界에 낙역絡繹되는 비밀秘密한 통화구通話口 어느 날 거울 가운데의 수염鬚髥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날개 축 처어진 나비는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는다. 통화구通話口를 손바닥으로 꼭 막으면서 내가 죽으면 앉았다 일서드키 나비도 날아가리라. 이런 말이 결決코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게 한다.

_이상,詩 「나비」 전문


Lay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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