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바보인가"

사각공간-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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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페이지】- 2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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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끔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남성들은 다름 아닌 '화난 남성'들입니다. 그들은 분노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을 초과 경쟁 사회(한국인들은 하루 평균 대여섯 시간만 자고 세계에서 누구보다 많이 일하죠)의 '인간 병기'로 만들어버린 신자유주의나, 그들의 귀중한 인생에서 2년의 시간을 빼앗은 잔혹한 군대에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그들은 '여가부에 돈을 퍼붓는' '좌파 정권'을 욕하고 페미니즘을 목청껏 성토합니다.

(…) 본래 한국 남성의 기본적인 정체성은 뭘까요? '군인'도 있고("군대 갔다 와야 남자다") '국민'도 있지만, 일차적인 것은 바로 '가족 부양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차적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사람'은 '남자 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가장이 '처자식'의 의식주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아내의 가출도 절대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를 포함하여 남성의 모든 사회적 관계의 전제조건은 바로 '경제력'이니까요. 이건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한국 사회의 철칙 중 철칙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 '남자의 기초적 조건'을 갈수록 수많은 젊은 남성이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청년층과 노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보편적 특징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나고 있고요. 군대에 갔다 오고 대학원과 외국어 연수라는 성지순례(?)까지 모두 마쳐도 서른이 되도록 계속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런저런 단기 비정규직, 심지어 '알바' 자리를 전전하는 젊은 남성들은 수두룩합니다. 결혼 즉시 부모가 얻어준 아파트에서 신혼 살림을 꾸리고 '돈 잘 버는 확실한 일자리'를 통해 아이의 사교육비도 문제없이 내주는, '모범적인 30대 초반의 한국형 남성'은 가면 갈수록 '예외'가 되어갑니다. 상위 20~25퍼센트를 제외하면 그런 사람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죠. 그렇게 '그들'이 얻는 것은 그나마 나름의 '지위 향상'을 경험한 여성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여기에서 당연한 질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도대체 한국 남자들은 바보인가요? 신자유주의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면 신자유주의를 상대로 투쟁하고 노동당이나 정의당에 대량 가입해야 답이죠. 신자유주의로 인해 남성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보는 여성들에게 도대체 왜 한풀이를 하는 것일까요? (…)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 남부 백인들에게도 같은 질문 (…) 수많은 사회학자에 따르면, 남부 백인은 신자유주의에 따르는 고통보다는 주관적인 '특권 상실'을 아프게 느끼기 때문에 트럼프가 '백인의 특권'을 강화해줄 것을 기대하고 그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페미들'에 대한 혐오 하나로 자한당(현 국민의 힘)에 투표하려는 한국의 젊은 중하위층 남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페니스 하나가 여태까지 한국 사회에서 보장해주었던 특권의 잠재적 상실을 더욱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페니스 파시즘'은 미국의 백인 특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당장에 '상실'될 일이 없는데도 그들은 그 특권이 약화되는 '경향'에 위기감을 느끼고 극우화하는 것이죠.

당연히 그들에게 남성 우월주의적 사고의 허위성과 반사회성을 열심히 설득하고, 계급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연대'를 외쳐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많은 '가난한 백인'에게도 그런 계급론적 설득이 쉽게 먹히지 않듯이, 국내에서도 절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국내의 '페니스 파시즘'은 미국의 인종주의만큼, 아니 그 이상 강고하니까요.

_본문 일부 발췌


☞ 진단처럼 간명하게 갈음되면 좋지만, 마주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신자유주의'라 명명된 환경에 노출되긴 매일반. 그러니 '상황을 악화시'킨 '신자유주의를 상대로 투쟁하고 노동당이나 정의당에 대량 가입해야 답'이라면 그건 여성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남성 개개인이 그런 것처럼 여성 개개인이 과연 이를 문제로 의식하는지조차 불분명.


☞☞☞ 원흉인 '신자유주의'를 두고 '남성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보는 여성들에게 도대체 왜 한풀이를 하는'가라는 접근. 문제는 소위 '경제력'이란 것도 당초 '경제'에 진입해야 '력力'으로 쌓아 올리든 할 텐데 그조차 난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용부처럼 '결혼 즉시 부모가 얻어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꾸리'는 게 가능한 형편을 '30대 초반 한국형 남성'의 '모범'으로 전제하는 시선, 가부장제만큼이나 강고하다 할지. 아니 실은 그런 시선이야말로 가부장제 그늘 아래 예속 형편으로 여전임을 부인하기 어렵지 싶고.

그러하기에 실상 재력(형성 과정이 어떠했든) 기준 '상위 20~25퍼센트'를 '능력'으로 평하는 것이야말로 '기울어진 잣대'라 문제 삼는 것이라면? 때문에 기旣 득得하여 권權으로 누리는 저 형편과 사정이 타당한지, 과연 납득 가능한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한 중에 성취한 '정의로운 결과'인지 여부를 가늠하자는 쪽으로 옮아가는 것이라면?!


그러니까 바로 그 '신자유주의'와 짝하여 장악한 현실에서 위세 여전하니 가부장제인데, 그게 '페니스 파시즘' 만을 토대로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재력(형성 과정이 어떠하든) '상위 20~25퍼센트'의 제반 환경을 함께 누리려는 욕망으로 상대를 가늠하는 잣대야말로 그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 요소로 기능함에도 그를 비판하긴커녕 당연시하니 이율배반이지 않냐는 것. ← 이것이 2030男의 시선 아닐지. '기울어진' 형편으론 닮은꼴(마치 여성의 사회 진출/진입 전후 벽으로 작용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처럼)임에 틀림없건만, 어째서 남성 측에서 의례! 갖추어야 마땅한!! '능력'으로 치환되는? 그게 그릇되었다 주장하(려)는 요지로 보인다.


물론 '상위 20~25퍼센트'로 갈음 또한 착시에 불과할 수 있다. 게다가 제 경험에 비추어 선명하다 여기는 사례들. 이를 테면 어떤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자신, 들지 못해 밖으로 밀려남을 피부로 실감한 경우에 과몰입. 이로써 초래되게 마련인 확증편향. 이것들이 뭉쳐 이룬, 피해의식('루저'를 비롯한 갖가지 명찰 달고 배척되는 형편이라는)의 발로일 수도. 이것이 페미니즘을 필두로 집결하는 여성과 대치, 나아가 공격에 이르는 이면에 자리해 있는지도 모를 일. 현실 직시 못한 끝에 고의 왜곡, 굴절시킨 적대敵對로 스트레스 해소할 뿐인 유아적 퇴행, 이를 마초로 향수鄕愁하는 지경의 '페니스 파시즘'도 없진 않겠다. 그러나 모두 그렇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모든 여성이 '상위 20~25퍼센트'의 제반 환경을 함께 누리려는 욕망에 충실하지 않은 것처럼.¹ 아니 단언해서도 안 될 것. 오히려 단언으로 갈음하는 판단을 유보하면서 계속해서 보고 살펴야만 하지 않냐는 것.²


어쩌면 시청 앞에서 광장 점령, 청와대로 향하자며 박정희를 연호하는 세대와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특권이라 여기는 바를 상상 지대에서 유사 체험할 뿐인 형편의 개개인. 그런데 현실의 금권金權과는 다른, 실체 없는 그것이 특권이긴 한가? 그네들 스스로도 정말 특권이라 여길까?? 이에 그치지 않고 더 파고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매달리는 지경, 대체 왜? 어째서?! 자처인지 아니면 내몰리다시피 됨인지. 후자라면 어떤 요인들로 인함인지 등등. 어쩌면 굳이 들추고 싶지 않은 걸 살펴 돌봐야 하는지 모른다. 내가 왜?!라는 걸 기어코 넘어서면서 그 사정과 형편에까지 속속들이 '인지 감수성'은 미쳐야만 하는 걸지도.


그렇게 다가서는 과정 중 불공정/불평등에서 비롯한 특권을 세습까지 불사하며 불공정/불평등을 확대 조장하는 실체로, 소위 '신자유주의'라 명명되는 이 체계 안 곳곳에 자리하고 짝하여 끼리끼리 보호하는, 미분된 형상으로 각자의 민낯을 마주할지 모를 일. 하면 이 커넥션 끊고, 관계 재구성하는 데에서 상상 저편으로 망명 일삼던 개개인이 다시 들 자리 또한 복원되는 게 아닐까.³



¹ 실제로 '가장家長' 운운 기도 안 막히니 피식 새는 웃음 '나? 그냥 내가 먹여 살려~' 각자도생 바탕 비혼 선택 심심찮고. 당초 따위의 흑백 양분 구도와 무관하게 홀로 서서 함께 가는, 병렬 바탕으로 혈연에서 자유하여 새로이 가족을 구성, 모델로 선보이는 건강한 선두 또한 존재하고. 멱살 거머쥘 실체로 '신자유주의'가 자리한 것도 아닌 만큼(차라리 그 실체라면 도처의 평범한 악으로, 너나 구별 무색 지경이니).


² 제 경험에 비추어 유형과 부류로 구분하고 이러저러할 것이다라든지, 그것 보라든지. 마치 사이코/소시오-패스 개념을 소비하는 방식처럼. 대하였던 상대를 과장, 괴물로 그리며 제 과오 직시 거부, 외면하는 식. 시절이 빚는 연의 면면이 반드시 제 좋을 대로만 비추이진 않을 터인데, 전체 상을 가늠하는 '인지 감수성'보다 당장의 제 안목에 갇힌 바 됨을, 그 무슨 심리-학인 양 주워섬기며 더 좋은 곳?으로 가자!? 론다 번 『시크릿』부터 성공을 열망하라는 주문을 거듭하여 되뇌면서 단면 부각, 이편 아니면 저편이라는 식의 단순 접근. 당초 아들러 또한 변화를 일구는 가운데 끊임없는 생성을 모든 이의 기본 바탕으로 보았으니 심리-학의 토대를 이룬 것이건만.. 사실 이런 편협한 사고를 부추기는 따위의 말글 팔아 자기 삶 만을 보다 나은 형편으로 뒤바꾸는 자야말로 가짜, 거짓 선지자의 전형일 것. 인-이어 마이크 차고 무대에 오르는 우상들. 그런데 이네들 보고 그 지위와 비롯되는 형편을 바라며 꿈을 꾼다든지 리더가 된다든지 등등의 수사로 나는, 나도 할 수 있다?! 오- 주여~~;;


³목소리를 내라든지 찾아준다든지 하는 데 와중에도 작동하는 필터. 왜 그렇게 밖에 내지 못하는지를 가늠해보려는 노력 없이는 무시와 배제일 따름이어서, 다르지 않은 것. 지리멸렬 지경을 계속해서 우리로 엮어 지속하게 하는, 소통. 이 어려운 걸 해내야만 겨우 사람으로 화하는 것이라면.. 인간人間, 그 사람[人]으로 되어가는 여정 가운데[間] 어떤 존재일 뿐. 그러니 다투더라도 끝끝내 놓지 말고 붙들어 화和를 조형造形하자고 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