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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Aug 17. 2021

서점일기 2021.08.16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1. '끽연喫煙' 실종¹흡연 예찬 X, 동시에 비난 또한 X


 오전, 서점이 자리한 인근 역사 출구 주변서 심심찮게 목격하니 다름 아닌 애연가(?). 쭈그리고 앉아 씹어 문 부터 인도 가장자리에 비켜서선 조악한 조경의 가로공원 향해 하얀 증기 내뿜는 사람(이전자담배는 흡연이기보다 가습에 가까워 보인다), 또 엄지 검지로 필터 끝 고 쫘-악 빨아올리는 청춘남녀. 천태만상까진 아니고 그저 다양하다면 다양한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여겨지는 바 호흡에 묻어나는 고단함. 전일의 피로, 밥벌이에 치인 마음이 숨의 결을 이루는지 호흡은 다급하다. 다소 비약하면 배후에 천길 낭떠러지 둔 것처럼. 벼랑끝 생존 경쟁에 내면은 깎아지른 절벽이요, 눈빛과 혀끝은 그대로 날카로운 창검. 마주치는 순간 사나워지는 기세는 당차다기보다는 애처로운 느낌(어쩌면 태풍 같은 건 연초 피우며 뿜는 숨에 얹힌 시름들이 뭉쳐 이루는 게 아닐까). 적잖은 시간을 시달릴 게 훤하지만 그래도 역사 들어서기 전 흡연. 이는 일용할 양식 위해 자기 하루를 연소燃燒시키지 않을 수 없는, 연소시켜야만 하는 자의 비애. 어제의 사연을 꺼내 물고 흡연吸煙, 그렇게 비워야 겨우 가벼워지는 걸음. 제 발로 걸어들어가 끼니와 맞바꾸는 오늘. 그와 동시에 빈 가슴에 다시금 들어차는 사연, 사연들. 하면 흡연은 과연 끽연喫煙일 수 있는가. 만끽滿喫은 아니어도 소박한 대로의 충족이면 좋겠지만. 찌푸린 인상을 대하면 역시 그리 될 순 없는 모양(연기가 매워서인지 아니면 매운 연기를 핑계 삼는 것인지 또한 알 수 없지만).


 비등한 성비의 사람들이 출근 전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뿜는 광경은 그래서 서글픈 한편 기묘하다. 마치 사담私談으로 흩지 못한 제각각의 사연을 화장火葬하는 화장터처럼 느껴진다. 한모금 깊게 빨아들이는 그 들숨 따라 빠르게 타들어가는 내일, 연기로 흩어지고마는 개비의 연초는 그대로 제 인생/미래의 은유 같다(하여 힐끔거리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다 졸아붙는다). 어차피 피차 간 피할 도리 없으니 그렇게 애써 당기지 않아도 죽음은 찰나와 순간을 집어삼키며 시시각각 다가오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뿌옇게 회灰칠 연속이니 어쩌면 영면永眠이야말로 이 지地:옥중獄中에서 놓여날 유일무이한 해방이어서지. 서로 간 보이지 않는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가파른 들숨날숨은 출근시각에 쫓겨서라기보다 자유를 열망하는 정도에 비례하는. 기왕 장래의 건강과 맞바꾸는 끽연이라면 만끽의 근처라도 다다라야 마땅하잖나 싶은데 녹록지 않은 이생, 참 마뜩찮구먼 ~~;;




2.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유사품/유사체험 ㅎㄷㄷ


 올 상반기 담배 판매량은 소폭(전년 동기 대비 0.7%) 증가했지만, 국민 보건保健 차원에서 가격 인상 단행했던 '14년 동기 대비 14% 이상 감소했다지². 하면 인상으로 기대했던 금연 견인은 물론 뜻 아니한 세수 확보까지, 일석이조.


 한편 흡연 지속을 가능케하는 메커니즘이라면 혈관 좁혀 혈류의 원활한 흐름 방해 → 이로써 뇌로 공급되는 산소량 저감 → 뇌활동량을 인위로 또 자발적으로 둔화시켜 → 뇌내에 찍힌 방점으로 '스트레스'인 문제와 상황을 거듭 재생, 선명하게 인화시키는 생각을 멎게 하고 이를 발화시킨 요인인 문제와 상황으로부터 거리 두는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것 아닐지. 이같은 체험은 직접적인 해소는 아닐지언정 간접적으로는 해소와 유사한 스트레스 완화 내지 경감으로 여길 만. 따라서 육체는 물론 (장기적으 특히) 정신적으로 백해무익 임을 알아도 흡연, 지속하는 게 아닐까.


 하여도 로는 육 가리는 바 없이 쌓이는 한편 해소는 요원으로 여전이니 고된 근로 환경은 상·하부, 구조로 유별되는 건 아닌 듯싶다. 외려 소위 인간-味란, 소비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경험 가능한 형편이라는 게 그나마 진단에 근접하잖나 싶고. 그러니까 인간에서 노동-기계로의 전환이 순식간인 생산/유통 환경에서, 즐거움이라는 정서 곧 스스로가 사람-존재로 인격을 그럴싸하게 체험하는 순간은 소비로나 가능. 하니 소비에 귀착된 이 즐거움 누리며 인간의 지위를 실감하는 시간인즉  자본 소유 정도에 비례. 때문에 지속 가능한 소비를 목적 삼고 돈벌이에 몰입. 와중에 소비 수준별 부합하는 존재 간 무리지어 어울리는 유유상종 가운데 드러나니 '인간-味/美'의 유사품이지 싶고. 저를 팔아 기계의 시간을 살고나야 겨우 다시 인간을 입는 사정. 물리적 제약에 부딪힐 수밖에(빌어먹'는' 물적토대) 없는 형편일수록 이같은 유사품 또 유사체험의 유혹에 더욱 취약하게 되잖나 싶고. 이도저도 벅찬 중엔 그저 연초나 태우는 것이. 하아..


 푼돈이고 몫돈이고 간에 그에 매단 자존自尊, 내처 흔들리게 마련. 와중에 자위 수준으로 축소되는 만끽. 이거 뭐 상자 속 벼룩도 아니고 ~~;; 시퍼런 두 눈에 재 뿌리고 관에 밀어넣는 '현실'이라면 관 뚜껑 밀고 나오는 좀비라도 되어야지! '너들 위해 준비했어'라며 아, 관짝춤이라도 춰야지!! '_'


¹서점지기 본인은 금연 시도 중(어쩌다 이따금 태움).

²관련기사

2021.07.30. 조세일보 강상엽 기자 기사 "담뱃값 인상후 두 토끼 잡았다.."판매 줄고, 세금 늘어'"

2021.07.30. YTN 권남기 기자 기사 "담뱃값 인상 효과 '여전'.. 코로나19에 궐련↓·전자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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