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공간 Aug 02. 2021

화이부동和而不同-생활, 나란히 한자리서 강인하게 모색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2021 상반기 심야책방 【과거에書 미래路】④ 이태준, 단편선집 『까마귀』 독후모임 후기




시대의 흐름에 ‘찌싯찌싯’ 붙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 다면, (…) 그렇다고 해서 붓을 꺾을 수도 죽어버릴 수도 없다. (…) 죽지도 않고, 붓을 꺾지도 않는 방도를 모색 (…) 글쓰기란 ‘생활’이 아닐 수 없다. ‘생활’을 경멸하고, (… ) 그 ‘생활’이 없는 자리에 놓인 인간상을 표나게 그려냄으로써 (…) 창작해온 이태준이지만, 이제부터는 그 ‘생활’과 ‘비생활’을 동시에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될 국면 (…) ‘서리를 밟거든 그 뒤에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기’란, 말을 바꾸면 ‘생활’과 예술(비생활)을 동시에 수용하기에 다름 아니다. (…) 생활 없는 인간 군상을 한편으로는 여전히 고처에 서서 조종하며 내려다보고 즐기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과 나란히 한자리에서 생활을 강인하게 모색함이 그것이다.

_작품 해설, 김윤식, <인공적 글쓰기와 현실적 글쓰기 ─ 이태준의 경우> 中     


 공空/간間 다루는 건축. 때문에 인식 내지 의식 간 선명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적잖은 건축가, 사이[間]의 여백餘白에 초점 맞추며 축조. 광대무변廣大無邊인 공空의 흐름까지 추상, 그에 일시적으로 개입될 뿐인 사람의 운명, 막연하게나마 감각하기 때문 아닌지. 이를 분명하게 의식하는 건축가일수록 정주공간定住空間 또한 이 운명에 부합하는 규모와 형태로써의 ‘처지處地’에 무게중심 두지 싶고. 따라서 생애 간 빌어 쓰는 임시거처로 제 중심 아닌 (주변)세계와의 조화를 우선하여 구축하잖나 싶다. 이처럼 물리적 공空/간間 설계에도 드러나는 차이, 거주-민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안타까운 건 태반이 허虛를 폐廢하자고 조밀하게 구축하니 곧 ‘생활’. 이렇게 순간과 찰나를 메우니 질식하고 마는 건 정작 ‘여유’. 마치 종이가 품은 생기를 머금고 이내 사그라드는 불처럼, 지난 자리마다 ‘폐허廢墟’. 한 시인이 토로한 ‘뼈아픈 후회’에 제 지난 날 포개어 좀더 깊숙이 dive, 모색해야만 하는 ‘생활’ 아닐지.

작가의 이전글 필요하면 '계획-' 또한 적극 인입! 이게 유연한 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