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그(*친구)의 말을 듣고 자꾸 아내에게 폭력을 가해서 고통을 주었던 내 죄를 나는 도저히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 (…) 힌두의 아내가 법정에 가서 이혼을 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법률이 약이 될 수 없다. 내가 내 아내를 그러한 궁지에다 몰아넣었던 죄를 나는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그 혐의의 암종(癌腫)이 뿌리 뽑힌 것은 내가 아힘사(Ahimsa:비폭력)의 뜻을 모든 면에서 이해한 다음에야 된 일이다. (…) 아내는 남편의 종이 아니라 짝이며 돕는 자요, 그와 고락을 같이하는 동반자로서 남편과 꼭 같이 자유로이 자기 길을 택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심과 혐의로 캄캄했던 날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어리석음과 잔인한 치정이 혐오스러워 가슴이 꽉 막히고 내가 맹목적으로 친구를 믿었던 것을 통탄하게 된다.
_『간디 자서전』, 한길사
이미지로서 사물은 이 의미에서 저 의미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혹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편력하게 될 강렬도적 상태들의 시퀀스, 순수 강렬도의 사다리나 회로를 구성할 뿐이다. (본문)
가령 아주 느리게 가는(이것도 강렬도의 한 양상인데) 자동차는, 적어도 그로 인해 답답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느림보 거북이' 라고까지 느끼게 만든다. 즉 그러한 속도의 분포는 그 자동차를 거북이가 되게 한다. 자동차의 거북이-되기. 반면 속도를 빨리하던 자동차가 하나의 문턱을 넘어 미친 듯이 달리게 될 때, 그것은 광인 내지 살인-기계가 된다. 음주 운전으로 갈지자를 그리는 자동차는 술취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한다. 앞서 사용한 '이미지로서 사물'이란 말은 이런 뜻으로 보인다. 이처럼 하나의 사물이 다른 이미지를 갖는 것, 아니 다른 사물로 되는 것은 속도 등의 강렬도의 변화에 따른 것이고, 그와 결부된 말의 사용과 결부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에에서 자동차가 그렇듯이 사물들은 가변적인 강렬도들의 연속체일 뿐이고, 특정한 강렬도에 따라 '무엇'으로 불린다. (역주)
_들뢰즈/가타리, 『카프카 -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동문선
그러나 불생멸심(不生滅心)이 생멸심과 더불어 심체(心體)가 둘이 아니며 다만 두 가지 뜻을 가지고 마음을 취하여 둘(불생멸심과 생멸심)이 되는 것이므로, 이를 '(여래장에) 의하여'라고 말할 뿐이다. 이는 마치 움직이지 아니하는 바닷물이 바람에 불리어 움직이는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니, 동(動) · 정(靜)은 다르지만 바닷물의 체는 하나이므로, 정수(靜水에 의하여 동수(動水)가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중의 도리도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권2, '심생멸心生滅' 관련 첫 '별기別記', 별기의 한자 원문은 생략)
_『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은정희 역주, 일지사
나는 본래 맏아들이었으므로 자연 특권이 붙어 있었습니다. 위에 고모도 있고 누님도 있었지만 먹는 데서는 언제나 내가 제일 위입니다. (…) 채마밭에 들어가니 다 늙어가는 넝쿨 밑에 오이가 하나 달렸는데 아직 어려서 먹을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래 며칠 기다렸다 (…) 그럴 만한 날이 되어서 가보니 없습니다. 우리집에 불문율로 당연히 내 차지인 것을 감히 누가 먹었을까? 알아보니 내 바로 밑의 여동생이 따먹었다는 것입니다. (…) 내 것이다 선언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특권 의식에서 나온 횡포였습니다. 그래서 그 불쌍한 것을 나는 구박을 했습니다. (…) 어머니는 부드럽고 미는 듯하면서도 단연한 목소리로 "얘 그건 사람 아니냐?" 했습니다.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 그 음성은 늘 살아 있어 내 속에 몇 번을 부르짖어졌는지 모릅니다.
_'나의 어머니', 함석헌 전집 4권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한길사
─ 우리의 삶이 끝내 지향돼야 할 어떤 푯대[目標] 같은 게 있을까요? 바울의 말을 연상해서 묻습니다.(송기득)
□ 바울의 말 그대로, '내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실현해내는 것이지 뭐. (…) 그러나 이땐 내가 실현한 것이 아니고, 내 속에 있는 '그이'가 실현하는 것이니까. (함석헌)
_송기득과의 대담 '人間을 묻는다', 함석헌 전집 4권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