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민주(民主)'를 이미 실현된 상태로 본다면, 주권 행사 유권자 가운데 일편인 '국민의 패배'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국민'이야말로 진영이라는 가상 무대에 올라 허깨비 춤을 추는 허상 아닌지. 실상은 화폐 거머쥐려 각자도생에 충실. 와중에 일시적 투표권 행사로 민주 운운하는 자체가 양손에 떡을 쥐려는 이율배반을 무지르는 뻔뻔함 아닌가 싶기도. 그러니 민(民)이 주(主)라는 환상 걷으면 약육강식을 전제한 각자도생에 충실한 개인 간 이해 관계로 얽힌 이전투구 판. 이것이 소위 시장. 때문에 대통령 선거이든 지방 선거이든 애당초 시장의 작동 원리를 고스란히 내면화한 1인 1표 선거제는 그저 '기득권의 승리'로 연속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래서 정권이 바뀐다고 당장 야만이 득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떠들지만 그저 호들갑에 그칠 따름. 왜냐하면 실제 급전직하를 경험하는 층은 극소수이거나, 아니 처음부터 목소리를 얻지 못한 그러니까 발언 기회조차 없는 아예 배제된 상태로 그저 외따로 떨어져 홀로 감내하는 낱낱들로 다수일 뿐이어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없는 것처럼 여길 수 있고, 때문에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편들로 자기 삶 꾸리는 이상 구가하는 게 가능한 사정은, 그러한 자기 형편이 지속되는 한 만족하는 것(그렇게 집값을 사수하자고, 종부세 비롯 보유세에 대한 조세 저항 의사를 표로 드러내며 중도를 자처하는 것도 기이하다. 보수가 부끄럽다지만 표리부동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수치, 아닌가? 그냥 커밍아웃해, 나는 보수가 좋아요~ 라고. 왜 못하는 거니?!).
제가 누리는 편리/편의가 타자의 불편/불리/부당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는 데에 신경 끄고 살아갈 수 있는, 이로써 지속 가능한 이 시스템. 이 '보이지 않는 손' 안쪽에 있으니 다만 누릴 뿐. 당장 자신이 누리는 바가 어디에 기인하는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수 있으니 얼마나 속 편한 체계인가 말이다. 이러한 무책임을 무책임이라 여기지 않고도, 외려 '민주' 운운하며 진보마저 가장/과장할 수 있는 편의까지 보장하는 시스템. 이 체계의 안쪽에만 머물 수 있다면 세대를 거듭하여 누림이 가능.
그래서 '조은산'.etc가 이르는 '인간의 기본 욕구 무시마라'는 따위가 득세할 수밖에 없다. 본래 그러한 수성(獸性)에 충실하려는 기본 욕구를 제어하고 넘어서려는 데서 겨우 '사람'이라 이를 수 있음인데 그 사람[人]의 사이[間]에서 머물며 수성(獸性)의 만족을 추구, 취하려 열과 성을 다함과 동시에 인격(人格) 곧 사람으로도 존중 받으려는 것. 그야말로 양손에 떡을 쥐고 놓지 않으려는 이 자체가 욕심의 총체로 극단이겠다.
꺼지지 않는 불과 같은 욕망의 거푸집으로 육신은 말 그대로 화택(火宅). 따라서 갈급을 채우자면 한 없는 이 불완전한 상태를 자각, 필요 이상 추구하려는 만족이야말로 허상 임을 깨닫고 절제하려는 선에서 불편/불리/부당에서 짜내는 편리/편의는 최소화, 끝내는 0에 수렴하게 될 테다.
약육강식 전제된 각자도생에 충실하면서 기득권에 접속, 동화되길 희망하면서 민주 운운은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기득권 토대 위 가상의 진영 놀음에 동원되어 허깨비 춤을 추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건 아닐 텐데.
이 넓은 세계, 완강한 시스템 안에서 일개인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라는데 글쎄올시다. 세계가 넓은 것도 아니요, 시스템이 완강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겨자씨에도 미치지 못하는 믿음과 그 처소인 좁은 속사정이 문제라면 문제. 민주이면 절로 공생 공존이게 마련이지 않나 싶다. 연민에 기댄 동정이나 베푸는 시혜는 모두 기득권과 그 위계에서 비롯하는 소위 '낙수효과'라는 것들 아닌가?! '천부인권'이라면서 '주인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취하려는 '개'로 자족하려는가, 왜?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