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사람들이 색(色)을 찾는 데 너무 정성을 쏟는다. 색(色)을 찾느니만큼 공(空)도 찾아야 한다. 미인을 찾는 것만큼 허공을 찾아야 한다. 허공에 대한 애착, 이것이 미인에 대한 애착만큼 강할 때 비로소 사람은 공색일여(空色一如)라고 할 수 있다. 지건대축(止健大畜)*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공색일여(空色一如)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건대축(止健大畜) : 마음 속에 짓기를 멈추면 오히려 크게 모을 수 있다는 뜻으로, 주역(周易)에서 따온 말임.
_다석 류영모 어록, 박영호 엮음, 『제나에서 얼나로』 중
고쳐 쓰지 못한다는 사람을 그나마 어림하려니 속지 않겠다고 가시적인 형태, 이를테면 외모 등을 기준 삼아 구별짓느니 역시 다름아닌 사람이다.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아 '어떻게 믿느냐'라는 편에 서서 방관과 적당주의로 보신을 우선하였지. 그래도 나름 믿을 방편을 고민한다고 했지만 그러는 사이 벌써 백세 분량이라는 인생의 절반,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말 그대로 그냥 흘려보낸 셈.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는 생각, '이게 뭐람?!'
정말이지 이렇게 갈팡질팡 상태로 시쳇말로 훅! 가기 십상;; 어차피 피차 자타 간 소외를 부추기는 동시에 가면을 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믿을까를 고민한다는 건 결국 핑계에 지나지 않을 터. 이면엔 믿지 못하겠다는, 좀 더 노골적으로 이르면 믿을 수 없으니 믿지 않으련다라는 의사가 분명하게 도사리고 있을 뿐.
먼저 나의 밑동을 스스로 까부수어 노른자 질질 흐르는 대로 두지 않으면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서지 않고는 다른 도리 없겠다. 지키려니 못 믿는 것이니. 지키려 드느라 움켜쥔 주먹, 빗장 지르듯 완강하게 두른 팔짱 먼저 풀지 않고 믿겠다니. 내가 믿을 수 있을 구석을 네가 먼저 보이라는 것. 이건 권력으로 누리려는 나의 의지이자 행사하려는 내 욕망에 지나지 않는 게지. 믿음은 '어떻게'보다 다만 그저 믿을 뿐이지. 저이가 어떠하든 간에 나는 내가 저를 믿는다는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며 그에 충실하면 그만이지. 어쩌면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란 말이 키-프레임일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어리석다 여기는, 바보의 우직함이 아니면 믿음의 성역에 발 들일 수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믿을 만한 구석을 자기 바깥에서 찾고, '좋은' 사람 등을 쫓느라 바쁘지만 실상 그 '좋은'을 가리키는 범주가 협소하니 기준과 잣대의 나침이 죄다 '좋은'을 가리키나 결국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그저 도토리 상호 간 인정 투쟁의 장場만 끊임없이 형성되는가보다. 차이를 모색한다지만 결국 동색同色에 지나지 않으니 내내 몽매 중 소경으로 머물 뿐인지 모를 일.
무소,유 그러니까 갖가지 욕망의 처소로 기능하는 이 나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은 그저 없는 장소[無所]로 다만 있을 뿐[有]인 상태여야만 여러 사람이 믿고 나드는 허브가 되는 길일지도.
머문 바 없는, 처소 없음의 나야말로 유토피아utopia. 하면 (제가齊家/치국治國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고) 평천하平天下와 수신修身 간 맞닿음은 당연하겠다.
붙임. 1 : head 삽입 이미지, Photo by Paul Blenkhorn @SensoryArtHous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