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볼품없는 인물이 거울 앞에 서서 수탉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제 모습과 찬탄의 눈길을 주고받는 광경을 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_니체, 『반시대적 고찰』中
주목을 받아야 풀리는 직성을, 배경으로 커버링 하는 응석받이의 자기중심적 사고思考. 이 같은 정저지와井底之蛙의 폐색閉塞을 자존自尊으로 번안, 자족의 허영을 누리겠다면야 그 또한 자유. 그러나 착각을 누리는 사정의 범위를 넘어서서 자기 밖으로 영향 끼치는 경우라면 다른 얘기.
안 그래도 파편 내지 부속으로 소외를 실감하는 형편인 사람들까지, 저마다 제 우물 안에서 족함 구하라며 편견의 벽을 돋우는 식? 아니 될 말!! 오염된 줄 모르고 나눠 마시며 전염되는 바보性이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이런 무책임이야말로 문제.
소크라테스는 덕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도 소유한다고 공상한 것을 광기에 가까운 병이라고 보았다(*플라톤,『필레보스』).
(…)
세계는 '진리에 봉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나, 실은 정의라는 덕의 현존은 극히 드물고, 그를 (*제대로) 인식하기란 한층 더 어려우며, 그것은 거의 언제나 죽도록 미움을 받고 있다. 이와 반대로 외견상 여러 가지 덕을 갖춘(*외식外飾하는) 무리는 어느 시대에나 존경을 받으며 화려하게 행진하였다.
진리에 봉사하는 자가 소수라는 것은 진리다. 왜냐하면 공정하려고 하는 순수의지를 지닌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며, 그리고 이 적은 수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극소수 만이 공정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에의 의지를 가진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 더구나 가장 무서운 괴로움이 인류를 덮친 것은 실로 판단력 없는 정의충동에 의해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복리를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광신자가 심판자로부터, (그러니까) 심판자가 되려는 맹목의 욕망이 심판할 수 있다는 의지적 힘으로부터, 끊임없이 구별될 수 있도록 판단력의 씨앗을 가능한 한 널리 뿌리는 일일 것이다.
_니체, 같은 책
언젠가부터 다름을 인정하자도 아닌, 인정하란 식의 자기애로 똘똘 뭉친 방어진지 구축 횡행인데.. 필요한 것은 모르는 스스로를 먼저 반성하는 것이지 않을까. 자기 바깥 존재, 그 남-다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선하여야 할 건 자기 형편대로 뿌리를 내린 무지에 대한 성찰이겠다.
판단 부재의 속물임을 반성할 겨를 없이 살다가 잃어버린 사람들이 벌써 얼마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11주기, 반성해본다. 이게 다 나' 때문이다.
붙임 : 인용부는 청하출판사 판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