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읽는다. 읽히게 마련이다.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내 오랜 믿음 아니 편견이라 해두자. 그 가운데 하나.

말글은 그를 빚는 이의 마음 사정을 비롯한 형편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마련이라는 것.

물론 개중엔 자신이 이른 말글과 다른 모습으로 사는 이들도 적지 않겠지. 아니 대개 그렇더라~라고 할지 모르겠다. 일견 옳다. 그럴 만도 하다. 또 경우에 따라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저를 지키는 데에 유리하겠고. 그리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더 유익할 수 있으니. 이런 사정들로 '사람 고쳐 쓰는 건 아니'라는 말글 또한 힘을 얻고 꾸준히 회자되는 것이겠지.


네거티브 영역에서 마이너스 오-라를 뽐내는 경우라면 특히. 예를 들면 심사숙고를 모르는 이의 즉물적 반응이라든지. 아마도 안팎으로 부재인 객관이 그이를 그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하도록 하였을 것. 제 의도와는 무관한 방향으로 뻗는 동안 세상의 편에서 저를 가늠하는 시선이 곱지 못함을 느끼고. 이 같은 일, 수차례 겪으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어째서 거듭하는지 선명하게 (되)새길 방편이 없어 스스로를 더욱 곤란한 지경으로 밀어 넣고. 이렇게 자가당착으로 처한 곤궁한 지경 속에서는 자라느니 오직 피해의식. 자신의 본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데서 억울함이 뿌리내리고, 무시한다 여기는 주변과 세상에 대해 뻗느니 분노의 가지. 계속해서 그이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그래 다름 아닌 악순환. 기어코 이에 집어삼켜지고 마는 당사자. 그이에게 있어 타자는, 제 여유를 물심양면으로 앗으려드는 이로써만 비치고. 해서 대개의 대화는, 순식간에 전장戰場으로 바뀌고 마니 뿌리 깊은 적의敵意로 항시 무장武裝 상태. 전 배우자나 애인은 물론 상사, 동료, 친구 등등 관계 저편의 상대 그리고 가난 등의 환경, 모두 적으로서의 타자. 개중엔 유책 관계 여부로 적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겠다. 그러니 모두 그르다 할 수 없으니 일견 옳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일견. 안타까운 건 이러한 일견을 전부로 알고 붙박이는 경우. 바르지 않다는 반성이나 그릇된 면면에 대한 고찰에서 개선을 요하는 성찰을 먼저 세우지 못한다. 극단적으로는 아예 밀쳐낸다. 따라서 '자신(만)이 옳다'라는 데에 집착, 울분을 곱씹으며 내내 날이 선 채로 스스로 비참의 늪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다.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들어간다. 그에 갇힌다. 실상 스스로 가두는 것. 제 목에 칼을 채우고 수갑은 물론 족쇄를 채워 수감시키는 건 다른 누가 아닌 자기 자신. 그러고는 그 옥문獄門에 패를 걸어두니 다름 아닌 '숨어있기 좋은 방'. 자위의 전형에 지나지 않는.

이들은 멀리 있지 않다. 심지어 아주 가까이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대개의 SNS 좋아요 추수꾼이야말로 이러한 유형 아닌지. 이네들이 생산?하는 '좋은' 사람/일 등등에 대한 숱한 말글의 실상은 조악한 자기애를 중심으로 편견을 돋우는 형태가 태반이니. 그러니까 거기엔 반성/성찰로 자기 자신을 먼저 살핀 흔적으로써의 섬세가 결여되어 있다. 알지 못하는 데에 ~카더라라는 식의 단언을 함부로 한다. 단지 '좋은'에 대해 두루뭉술 만을 이를 뿐인 스스로를 '좋은 사람'인 양 착각한다. 민중을 떠들며 민중과 유리된 삶을 목적 삼는 이들의 열화 카피본이랄지.


체질과 정신이 이미 굳어버린 민중은, 털끝 하나를 개혁하는 데도 걸림돌이 지천이다. 겉으로는 자신들의 불편함을 우려하는 듯이 보여도, 그들은 사실 자신의 불이익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꾸미는 말은 언제나 지극히 공정하고 당당하다.

_루쉰 산문집, 편역본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 중


정말이지 말글은 그를 빚는 이의 마음 사정을 비롯한 형편을 속속들이 드러내 주지 않는가.




건강한 이는 제 '좋은' 모습을 드러내 보이려는 데에 치중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장점과 매력은 소위 소셜 네트워크의 추종 정도로 증명되는 게 아니니! 이는 마치 머리 좋은 이가 자기 뇌의 성능을 대외적으로 증명코자 하지 않는 것처럼. 왜냐하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멘사를 위시해서 지수 따위로 증명해야 하는 우위, 이를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그리하지 않음과 마찬가지(그 역이면 몰라도).

건강한 사람은 제 주변, '좋은' 평판이나 환경 등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럴싸한 환경 조건이나 인맥 등을 위시한 갤러리들에 둘러싸인 중심으로 제 일상을 전시하는 실상은 대개 그 자신이야말로 그러한 중심들의 들러리인 경우가 태반이다. 아니 거의 전부라고 해두자. 건강한 이는 저가 처한 곳이 어디든(외려 척박한 당장의 환경에서조차 그를 부정 않고) 그저 제 주변을 좋게 가꾼다. 이것이야말로 '힘'의 진면목이며 소위 장점이니 매력이라는 것의 본질일 터.




May the force be with you?! 이래서 양인들 센스가 하수라는 것이다;; 당초 '힘'이야말로 천부인권인 것을 ~ 쯧. 세기를 가로지르는 동안 등장한 현인들의 가르침이라는 것도 살피면 결국 한 곳 만을 가리킨 것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 싶다(딱히 가르친다고도 하지 않았음을 먼저 상기만 한다 해도 시작과 동시에 이미 절반은 가닿은 게 아닐지!). 그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 그러니까 '당신이 옳다'. 맞다, 그러나 지금은 틀렸다! 인생 전반까지 이를 것 없이 하루 중에도 매 순간 찰나 간 십우/심우의 광야를 헤맨 뒤라야 닿는다. 돈오 후에도 일상 중 깜박하니 점수로 꾸준함이 옳지 않겠나. 그러니 매 순간 찰나 간 헤맨 뒤 그때에나 맞다, 옳겠다.

그러자면 지금! 당장의 그릇된 모습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글로 알 수 없다? 아니 알 수 있다. 오히려 따위의 허영 등등 모두 폭로한다. 쓰는 이가 감추려 해도 그런 제 의도와 상관없이 드러난다. 그리고 사람은, 읽는다. 또 읽히게 마련이다.


붙임. 1 : head 삽입 이미지는 직접 촬영. 언젠가의 초파일 종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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