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來 공수去,
거래 후 빈손[空手]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공수 공수空手空手, 죽음을 맞아들이는 순간 처음 태어난 때처럼 빈손으로 돌아감을 뜻하는 표현. 그저 사라질 뿐이라면 두말 할 것도 없겠다. 영혼이 있어 그것이 육신을 떠나 어디 다른 데로 향함을 믿는다 해도 그 영혼이 가는 곳에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데려갈 수 없음은 확실하다. 그러니 生의 시작과 死의 종착 사이 가로놓인 삶을 사는 동안 애착을 부질없음을 깨달아 초연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이를 모르지 않지만, 사는 날마다 붙들지 못해 안달하니 다른 누구랄 것 없는 내가 그렇다.


덧없음을 느끼는 데에 그치지 않고 반성에 이르는 순간을, 마치 점을 잇대어 선을 그리고 면을 이루어 마침내 공간으로 구현하는 데에 이르는 것처럼 일/월/년으로 잇대며 여생餘生 전반으로 굳혀 살아낼 수는 없을지를 나름 계속해서 새겨 보는 형편이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긴 했다. 읽어서 얻은 말글에 빗대어 살피면, 요는 내가 '사랑'이라 이르며 부리는 '집착'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야, 그러니까 자유로워야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긴 한다. 문제는 도돌이표를 마주한 음표마냥 계속해서 탐진치의 돌림 노래를 거듭한다는 것. 이처럼 안일한 태도로 세월 허송하는 데에는 생애주기를 길게 여기기 때문. 천년만년 살 것처럼 호기를 부리는 이면에 자리한 것은 당장 내일 아니 바로 뒤 닥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감각 부재이다. 남은 날을 헤아리지 못하니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지 못하고 대충 사는 듯. 이러면 살아도 산 게 아니건만 앉아서 이렇게 적을 때에나 간신히 어렴풋하게나마 어림할 뿐이지 또 잊는다.


어떻게 하면 충일을 맛보며 정말이지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을까를 생각다 공수래 공수거를 살피니 去/來空手로 구성된 조합으로 새로이 보인다. 그래, 그렇지. 빈손으로 와 세상서 빌어다 쓰고 이를 바탕으로 낸 소출을 타인의 그것과 빈번하게 주고받는!거래를 통해서 만이 사람은 서로 풍요를 누리게 되는 것. 그러니 소유에 잠기면 거래의 활기는 사라지게 마련!! A.스미스가 국부國富의 원천이 화폐(당시 금은 등의 재보)가 아닌 산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필혁한 것도 이 때문일 것. 거래 가능성을 담보하는 화폐 축적 과정은 항시 과도한 몰입을 불러 일으킴을 그도 느꼈을 터. 따라서 국민 전반이 산물 소비 등을 통해 풍족을 누리는 양질의 삶이야말로 진정 국부 임을 설파한 것이리라. 그러니 빌어다 써서 이룬 것들을 쥐고서 제 중심으로 사람을 세우려 들려는 짓이 다름 아닌 욕심. 부유와 풍요를 오해한 데서 빚어지는 일이겠다. 어차피於此彼 피차彼此 빈손[空手]으로 돌아갈 수밖에, 다른 도리 없는 형편과 사정이니 사는 동안 보다 많은 사람과 함께 풍요를 누리는 데에 집중하는 편이 나은 게 아닐까. 이를 목적 삼으면 바쁜 것이 즐겁지 않을까. 동시에 놓지 않으려 거머쥐기보다 손에 쥔 것을 나누려는 데에서 이루는 빈번한 거래去來와 그것이 내뿜는 활기. 정말이지 사는 것처럼 산다는 것은 이러한 모양 아닐지. 아,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도파민인지 세로토닌인지 엔돌핀인지 뭐든 간에 마구마구 뿜어져 나오는 이 기분이라니~


아낌없이 거래去來에 충실하여 사는 것, 바쁘게 손을 놀려 남김없는 빈손[空手]으로 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후회 없는 인생의 비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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