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와 차고 세일 - 임흥순과 오메르 파스트의 예술 세계(곽영빈,김지훈,남수영, 이나라, 톰 매카시,문학과 지성사, 2023)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던 오메르 파스트의 인터뷰 중 발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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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누군가 외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적어도 그가 겪은 일이 실제였다고 믿어 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윤리적 의무라는 겁니다. 우리는 외상적인 것이란 상상할 수 있는 끔찍한 상황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오늘 아침에 실제로 칫솔을 떨어뜨려서 주우려다 시차 때문에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이랬습니다. ‘젠장, 머리를 박아 버렸네!’ 외상적인 경험은 아니죠. 이 경험을 설명할 수 있고, 여러분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나 저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외상적인 일에 관해 말씀드리면, 갑자기 이런 공감의 연결이 끊어지고 맙니다. 외상적인 경험은 저로부터 혹은 외상을 입은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에게로 넘어갈 수 없기 떄문이죠.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허구라는 도구가 트라우마와 공존한다고 봅니다. 어떤 일이 발생했다고 믿기 어렵거나 이를 재현하기 어려울 땐 이를 다루기 위해 또 다른 도구 상자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허구라는 도구 상자일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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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보지 않기를 바랄 때 이를 가시적인 영역, 혀용되는 영역에서 없애 버리곤 합니다. 이 작품(카를라)에서 저는 이러한 개념,가시적인 것으로서의 진실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탐구했습니다. 저는 이 둘이 상당히 많이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선 최소한 어느 정도의 가시성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것은 억제되어 있는 외상적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게 되면, 그제야 그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도로 연극적인 과정을 통해서만 가시화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이야기, 스토리텔링, 촬영, 기록, 역사 쓰기, 법정 출두와 같은 모든 과정은 허구적인 것, 연극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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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속해서 진실을 이야기(narrate)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실이라는 관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을 키워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진실이란 근본적으로, 즉각적으로, 항상 깨지기 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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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진실이란 매우 연약하고 수행적이면서 합의에 기반한 것인데, 제가 볼 때 우리가 진실에 관해서 설명하려는 개념은 반복에 대한 강박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제도를 통해 하는 일, 법원이나 언론을 통해, 인터뷰나 질문을 하는 일은 곧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할 수 있도록 이를 반복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기록은 곧 반복입니다. 기록된 문서는 무언가를 복제한 것이기도 하죠. 한 번 일어난 일은 결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사건은 항상 손실되고 말죠. 그렇기 때문에 과거가 되는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은 사건이 되고, 어떤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도구는 본질적으로 오락적이며 재현적이기도 합니다. 사건의 사실성과 진실을, 그것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느 어떤 것을 수행하거나, 쓰거나,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기록함으로써 이를 반복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적인 것, 허구적인 것, 연극적인 것, 예술적인 것, 윤리적인 것, 진실된 것 사이에 존재하는 역동이고요. 하나의 사회로 기능하기 위해 우리에겐 제도적, 정치적, 사회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작업에서는 반복이 아주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