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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Mar 12. 2024

널 어쩌면 좋니

- 입학식날부터 이러기 있기 없기?!

  가늘고 긴 사춘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입학식 당일 하교 후부터 자기네 반 아이 한 명이 자퇴했다며 최저임금 운운하던 아들을 보면서도 설마 했었다. 등교 둘째 날은 아프다고 징징거리다가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잠들어서 새벽 6시에 눈 떠서 준비하고 등교했다. 등교한 지 3일째인 오늘은 급기야 7교시 중 5교시 만에 조퇴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이 아이 휴대전화로 전화까지 주셔서 “안녕하세요~유찬이 어머니, 저 담임이에요. 유찬이가 평소 비염이 있다고 하는데 두통이 심하다고 하네요. 조퇴시켜도 될까요?"라고 하셨다. 하필 근무 중에 감독 직원의 업무 지시가 있던 순간 전화하셔서 길게 통화를 할 수도 없었고, 하는 수 없이 우선 조퇴에 동의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아들 녀석은 저녁 식사 중에 "엄마, 최저임금이 9,860원이라는데 맞죠?"라며, 슬슬 내 인내심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요지는 학교에서 수업 말고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아서 도저히 못 다니겠다고. 편의점 알바를 하겠단다. 결국 나는 또다시 폭발했다.

  어릴 적 자폐 경증 오류 진단으로 시작해, 전전두엽 과도 발달 진단에 이어, 초등학교 4학년 때 받았던 불안 장애 진단까지. 또 필름을 되감기 하듯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감각통합 치료 처방을 받고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서 그런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서울에서 버틸 걸 그랬나?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너무 나약하게 길렀다는 것.’ 그리고 ‘훈육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들었으나, 역시 출근이 무섭긴 무섭다. 육체의 피로가 정신의 피로를 이겼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 것이다. 다음날 눈을 뜨니 5시 21분이었다. 발표자인 녹색햇살님의 발표 내용을 듣기 위해 줌에 접속할 때쯤은 이미 발표가 끝났을 시간이라,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그냥 좀 더 자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사이 깊은 잠도 잘 수 없어서 그냥 6시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평소보다 조금 더 잔 것 같은데도 머리는 멍하고 피로감은 더했다.


  아이에게 전날 조퇴한 것을 상기시키며 일단 학교 수업은 다 마치고 오라고 당부했다. 심란한 마음으로 출근한 나는 일하다 보니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 퇴근 시간을 1시간쯤 남기고 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 나 학교 끝나서 집에 왔는데 머리가 또 아픈데 어떡해?” “아까 학교에서 머리가 또 아파서 약을 또 먹었는데 10분 기다렸는데 또 아파서”라고.

  기어이 또 병원에 가야 납득할 수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퇴근 시간에 맞추어 아이에게 정류장으로 나오라고 했고, 지역응급의료센터인 2차 병원으로 향했다. 야간시간이라 응급실 진료를 진행했다. 당직 의사가 아이에게 증상을 물었다. 아이는 이미 내게 어지러워서 집에서 구토도 했다고 했던 터였다. 그랬는데 “지금 어디가 젤 불편하고 아프냐”는 물음에 심장이 조이는 느낌이 난다고 했다. 정말 기가 막혔다. 사실 구급차도 타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 응급실에 오는 자체가 응급 상황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을, 아이는 기어이 자기가 ‘아픈 환자’여야 하는 것이다. 마치 의사는 아이의 마음을 읽은 듯, “어머니, 제 아이 같으면 전 검사 안 할 텐데, 일단 아이가 불안해하니 혹시라도 이상 있는지 혈액검사부터 심전도, CT까지 다 검사해 볼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수액을 먼저 달고, 혈액검사부터 심전도 검사, X-ray, CT까지 찍었다. 소변 검사도 할 예정이었으나 아이가 소변이 안 마려웠고, 이미 그 전에 검사 결과 나왔다는 의사의 호출을 받고 대면하니, 모두가 예상했듯, 검사 결과 모두 정상이었다. 그래서 소변 검사는 생략했다. 다행이면서도 허탈했다. 의사는 아이에게 친절하고 분명하게, 검사 항목별로 짚어가며 ‘이상 없음’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수액은 약이 아닌 식염수에 불과했음을 주지시켰다. “유찬아, 그러니 이제 안심해. 조금 아픈 건 아픈 게 아니야.”라며 당부했다. 내겐 “그래도 아이가 어지럽고, 구토까지 했다고 하니 울렁거릴 때 먹는 약 처방해 드릴 테니 좀 지켜보세요”라고 귀띔했다.

  아이는 병원을 나서며 정상인 자신이 원망스러운지 의사한테까지 놀림을 받았다며 계속 쪽팔린다고 투덜거렸다. 정말 이럴 줄 몰랐단 말인가. 정신이 신체를 지배하여 몸이 아프다는 거짓 정보까지 입력되는 모양이다. 도대체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우리 아들의 정신 상태를 어쩌면 좋을까.


*본 글은 원래 <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매거진으로 묶어 발행했으나, 큰 주제로 다시 분류하느라 매거진 삭제를 앞두고 옮겨 발행한 것입니다.

최초 작성일자는 2024년 3월 12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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