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결혼과 육아는 사치
어젯밤 옷을 갈아입다가 그런 건지 자려고 누웠는데 또 어깨가 빠졌다. 왼쪽 어깨가 처음 빠진 건 큰 꿈을 품고 신림동 고시촌을 전전하던 20대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에는 정형외과로 갈 수도 없어서-당시 고시촌 내에는 정형외과가 없었다. 잘 찾아보면 있었겠지만, 굳이 외상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정형외과를 가는 건 오버였다-초진 받았던 가정의학과에서 처방한 약을 먹으며 잘 올라가지 않는 왼쪽 팔로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도록 자제하며 버텼다.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빠지곤 했는데,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또다시 어깨가 빠져버렸다.
하필이면 병원의 전기자극치료기가 일명 '뽁뽁이' 모양처럼 스펀지에 구멍이 숭숭한 형태였고, 받고 나니 부황 뜬 자리처럼 자국이 남고 말았다. 며칠 후 본식 시간에 맞춰 웨딩드레스를 입으려 웨딩숍에 들리자, 직원들은 나의 어깨에 남은 보랏빛 부황 자국 모양에 기겁했다.
"어머! 신부님, 어깨 왜 이래요? 다치셨어요? 드레스 입으면 보일 텐데 많이 아프셨어요? 조금만 참으셨다가 식 끝나고 치료받지 그러셨어요? 아무리 저희가 화장으로 가려도 티가 날 텐데...." 하며 탄식했다.
맞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임계점을 넘지 못하는 게 문제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 인내와 끈기라고 생각했는데, 작년쯤 오디언 도서관에서 들었던 어느 에세이에서인가 작가가 말했다.
“인내와 끈기는 다른 겁니다.”
이렇게 인용할 줄 알았으면 출처를 확실히 기억해 두는 건데, 정작 세부 내용도 가물거리기만 하고 정작 꺼낼 수도 없는 허접한 뇌 용량을 지녔음에도 제대로 메모도 해놓지 않는 이런 어설픈 사람이 바로 나이다.
시험 앞두고 또 기 싸움
어설픈 나의 결혼식 사진은 결국 왼쪽 어깨의 뽁뽁이 전기 자극 치료기의 희미한(?) 상흔만큼이나 좌충우돌 원칙 없는 결혼 생활의 복선이었다. 상상 초월 홀시어머니의 자식들 주머니 털기 행태, 설마 했던 남편의 고부 갈등 못 본 척하기와 구두쇠 성정, 예상치 못한 외동아들의 비정상적 뇌세포 활동은 나를 끊임없이 병들게 했다. 종종 신체적 통증으로, 때로는 마음의 병으로 나타났다.
출산 후에는 밤새 잠들지 않는 아이를 안고 혼자 밤을 지새우던 날이 두어 달쯤 되었을까. 어느 늦은 밤 나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안은 채 베란다로 갔다.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13층에 살았다. 베란다 끝에서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칠흑같이 까매서 보이지도 않는 바닥을 바라보던 나는 순간 정신이 들어 아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머리가 쭈뼛 서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껴 얼른 거실로 들어왔다. 힘이 쭉 빠지면서 안고 있던 아이를 놓칠 것 같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요즘 다시 그 끔찍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
아이의 2차 지필평가 기간이었다. 시험 대비 공부는커녕 직전 주말에도 공부하지 않는 아이가 할 말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중학교 동창 중 다른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이미 시험이 끝났다, 내가 이래서 ㅇㅇ고등학교에 갔어야 했다, 1학기 동안만 다니기로 했으니 이제 난 뭐할까…등등. 끝도 없이 쓸데없는 얘기들로 언제쯤 내가 자신의 난삽한 얘기들에 반응하며 화를 낼까 기다리는 것처럼 내 속을 긁었다. 어떻게든 참아보려 처음엔 눈맞춤을 하고 이야기를 듣다가 나중에는 일부러 시선을 회피하며 무심한 듯 들었다. 하지만 급기야 군대 얘기를 하며 입대 후 부상당한 사례까지 언급하는 순간 잘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했다.
"네가 지금 군입대 앞둔 성인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야? 내일모레 시험 볼 고등학생이 할 소리야?"
아이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이제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는 심산이었다. 먼저 화나게 해놓고는 자신을 무시하고 믿어주지 않는단다. 기가 막혔다. 시험 앞두고 치열하게 아니 최소한 시험 범위 부분을 한 번 훑어보기라도 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으면서 학교 다니기 싫다는 말만 1학기 내내 반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난 서울 강서 쪽에서 보습학원을 운영 중인 대학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내 아이의 상태를 대충 말하고, 수학보다 더 성적이 저조한 과학 학습법과 입시 대책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아이. 끝내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지겹도록 이야기를 반복할 게 뻔했다.
이번 주에는 남편이 오지 않았다. 굳이 부산에 남아 주말까지 회사 일하고 있을 남편에게 이 상황은 전하지 못했다. 어느 브런치 작가가 첫째에 이어 둘째 아이도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는 사연을 올렸다. 적지 않은 댓글이 달렸다. 나도 정말 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이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걸까. 나야말로 제발 이 기말고사가 얼른 끝나기만을 바랐다.
결국 늦은 밤, 아이가 치를 지필 평가 두 과목을 정리해 주느라 구두 테스트를 하였다. 벌써 중학교 2학년 첫 시험을 보던 때부터 5학기째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한 중학교 첫 시험 때는 아직 삼삼아씨 커뮤니티를 만나기 전이어서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어 아이를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붙들고 시험 대비 학습을 시킬 수 있었다. 문제집을 풀리고 채점하고 오답 체크 및 구두 테스트로 한 번 더 정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 띄는 성적 향상은 없었다.
신체적, 정서적 발달이 표준적인 아이들에 비해 뒤처진 아이의 사춘기는 중3, 고1을 거치며 점점 거세졌다. 상대적으로 점점 쇠락하는 나의 컨디션은 개인 일정을 따라가기에도 힘들다. 이 와중에 숨 쉬듯 내뱉는 학교 자퇴 언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지쳤다. 그럼에도 시험 전날 기어이 30분쯤. 1교시 시험과목을 구두 테스트로 묻고 답하다가 하나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니 더 이상 시간 낭비, 체력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눈에 힘 한번 주고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만하자. 양치하고 그만 자라. 가방 잘 챙기고.“
나는 문제집을 덮어버렸다.
일장춘몽이어도 괜찮아
이변은 없었다. 기말고사 첫날 두 과목을 치르고 왔다. 퇴근 후 별 기대도 감흥도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시험 어땠어? 잘 본 것 같아?“
"응, 뭐… 그냥 그런 것 같아."
아이는 여느 때처럼 차마 눈도 맞추지 못한 채 둘러댔다. 시험 결과가 신통찮았다는 얘기다. 그냥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걸, 기어이 한마디 더 물었다.
"혹시 시험 가 답안이 나왔어?“
"응, 뭐...나오긴 했는데 귀찮아서 채점은 안 했어.”
'설마?' 했던 기대는 역시나 헛된 물거품이었다.
아이와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안방으로 와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잠시 침대에 멍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얘! 정신 차려. 뭘 기대했어? 인제 그만 내려놔.’라는 조언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러다 문득 아이와 저녁을 차려 먹어야 할 시간이라는 게 떠올랐다. 순간 저녁 메뉴를 정하기 위해 아이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엎드려 핸드폰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분노 게이지의 수치가 폭발 직전까지 갔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 "아니~, 지금 하고 있었다고~!" 라며 되려 짜증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물었다.
“너 저녁 뭐 먹을 거야?”
아이는 아침에 끓였던 콩나물국에 라면을 넣어 콩나물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라면이 좋을 리 없지만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까짓것 라면쯤이야. 오히려 이것저것 번거로움 없이 간단해서 좋다. 얼른 뚝딱 끓여서 한 그릇씩 저녁을 해치우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챙겨 먹은 뒤 나와 아들은 각자의 구역으로 흩어졌다. 이 습한 날 굳이 방문까지 닫고 제 방에 동굴처럼 들어가는 아이를 보며 내 몸이 후끈해지는 건 왜일까. 어질러진 아이 방 상태에 대한 짜증 때문인 건지, 퇴근 무렵 잠시 그친 비가 다시 내릴 것 같은 무거운 공기 때문인 건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역시 아이 방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 따위는 하지 말아야 했다.
식사 후 한 시간쯤 지난 후였다. 최소한 아이의 인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노크를 하고 문을 여니 부스럭거리며 잽싸게 공부 모드로 전환하는 아이. 이틀째 시험을 치른 고1 학생의 모습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후 한 번도 아이 방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 역시 피곤함이 배로 늘었다. 근무 장소가 어린이 자료실에서 종합자료실로 두 달 만에 복귀하니 또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늘어난 탓이었다. 쏟아지는 졸음도 아이 저녁을 챙겨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꾸역꾸역 버텼는데, 차오른 뱃속은 나의 무거운 눈꺼풀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별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평소보다 두어 시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점심시간쯤 되었는데 아들이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 자료실에 들렀다. 제 발로 찾아온 아들은 너무 오랜만이라 생활복이라 불리는 학교 체육복을 입고 들어서는 모습이 설레기까지 했다.
“어! 아들 웬일이야?”
“그냥, 애들이 도서관에 채점하러 간다길래 한번 따라와 봤어.”
“그럼, 너는? 채점 안 할 거야?”
아들은 기어이 고개만 가로젓더니 “갈께.” 한마디를 던지고 머쓱하게 자료실을 빠져나갔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는데, 카톡 알림이 왔다. 아들이었다.
‘커피 뭐 드실라우?’
능글맞은 문자였지만 사랑스러웠다. 남편에게는 없는 다정함이다. 집에 가는 길에 메*커피를 들렸는데 엄마 생각이 났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청하고 아들을 기다렸다. 연애 시절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시 후 자료실에 들어선 아이는 제 음료를 입에 물고 나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무심하게 건넨 뒤 서둘러 나갔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다.
퇴근 후에도 바람 든 내 마음의 텐션은 잦아들 줄 몰랐다.
“아들~! 오늘 시험 잘 봤구나? 엄마한테 커피도 다 사주고, 기분 좋아 보이는데?”
“뭘 잘 봐? 그냥 봤어.”
그래, 잔소리 말자. 신통찮은 결과에 제일 속상한 건 아이 자신일 테니까.
아들 덕분에 두근거린 10분만 기억하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일장춘몽에 빠져 깨지 않아 볼란다.
*본 글은 당초 <나는 나쁜 엄마입니다>라는 매거진으로 분류하여 발행한 것인데, 다시 큰 주제로 나눠야 할 필요를 느껴 매거진 삭제에 앞서 발행하는 것입니다.
*최초 작성일자는 2024년 7월 12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