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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Jul 03. 2024

불안과 집착의 연결 고리  

- 다시 시작된 불안,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

일 년여 동안의 정기적 만남이 오늘로써 끝났다. 오늘은 매월 만나던 글벗님들과 마지막 만나는 날이었다. 마지막인 만큼 정기적으로 만나던 회원들-나 포함 5명-전원이 참석하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개인 일정과 질병으로 리더인 작가님을 제외한 총 6명의 회원 중 자주 만나던 3명의 회원이 불참했다. 어색한 만남처럼 헤어짐도 어색했다. 도서관 문화행사 글쓰기 줌 강좌에서 책 쓰기 위한 모임으로 발전했다. 각자 출판사 대표와의 만남도 있었지만, 가장 책을 쓰고자 했던 나는 소위 '상업적 콘텐츠' 발굴에 실패했다. 모임의 리더인 작가님의 격려와 독촉에도 끝내 원고는 완성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느덧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오늘은 글벗 회원 중 한 명이 책방 지킴이로 활동 중인 동네서점 '반달서림'에 모였다. 10평 남짓한 소박한 서점에서 평소 좋아하는 '은유' 작가의 <해방의 밤>과 그림책 작가인 이수지님의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을 구매했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한 '독립서점 창업'의 꿈을 또다시 떠올리며, 아쉽지만 그렇게 일 년 동안의 간절한 책 출간의 소망을 첫사랑에게 건네지 못한 편지처럼 조용히 가슴에 품고 서점을 나섰다.     


그 엄마의 그 아들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글쓰기가 아니라 심리학 공부인가? 아들의 멘탈이 또 무너졌다. 분명 이번 주는 학교에서 개별 상담 주간이라 하였는데, 기말고사를 앞두고 불안증세가 심해진 듯하다. 자정 무렵 기껏 꺼낸 이야기는 이랬다. "엄마! 아무래도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학교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쉬면서 자기 계발도 좀 하고..." 여기까지 듣던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저 다음 한 주 동안 치를 2차 지필평가-우리 땐 '기말고사'라 불렀던-를 앞두고 시험공부도 하기 싫고 시험을 잘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초등학교 3학년 때 '불안장애' 진단을 받아 자라는 동안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괜찮다”라고 자주 위로해 주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로는 불안의 무게가 줄어들지 못하는 모양이다. 불안장애는 만성적으로 걱정이나 근심이 많아 여러 신체적, 정신적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을 의미한다. 인구의 25% 정도가 불안장애를 겪는데,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정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의 불안은 어쩌면 엄마인 나의 불안 정서를 태아 때부터 물려받은 것일까. 나의 불안 중 가장 주요한 원인은 정신 분석 이론에 따르면 '자기 자신의 이상과 가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었다.     


퇴근 후 집에 와보니 아이는 영어 그룹과외 수업에 갔는지 없었다. 침대 위에 널브러진 가방에서 거꾸로 처박힌 물통을 꺼내 주방 싱크대에 담그며, 아이의 학교생활을 상상해 봤다. 아무도 반겨주는 친구가 없는 교실, 지루하기만 한 7교시 수업을 버텨야 하는 상황, 급식 때도 아이들과 소통 없이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급식 시간. 평일 내내 이러한 풍경이면 가뜩이나 유리 멘탈인 아이로서는 힘들만도 하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멍때리다 화장실에 있는데 아이가 왔다.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아이는 편한 복장으로 명치께를 문지르며 "엄마, 나 여기가 아파."라고 하더니, 어느새 손에 소화제를 들고 물과 함께 삼킨다. 그런 아이를 보니 또 안쓰러웠지만, 다음 주가 시험인데 식후 1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당최 책상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영어 과외 숙제도 할 겸 영어 기말시험 공부도 하라고 했고, "예"하길래 설마 다음 주가 시험 시작인데 당연히 하겠거니 했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집안일을 다 마치고 혹시나 해서 웬일로 열린 아들 방을 들여다보니 녀석은 밤 9시가 넘은 그 시간까지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엎드린 채, 일교차로 썰렁하기까지 한 밤공기에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여전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태 아이가 학습을 시작하는 걸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내 처지가 서럽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아이를 책상 앞에 앉혀야 했다. 아이가 일단 책을 펴고 앉아서 두어 문제 풀고는 여전히 자기 등 뒤에 서 있는 나를 노려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거실로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 방으로 신경이 쏠렸다. 그럼에도 해야 할 서평들이 밀려 있어 부지런히 서평 초안을 작성하던 중 조용해서 가보니 이제는 제대로 이불 덮고 자고 있었다. 겨우 책상 앞에 앉은 지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싶었는데 벌써 잠든 녀석이 괘씸했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깨워도 일어나지 않을 게 뻔하고 깨우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며 그 밤에 고성이 오가서 이웃들에게 민폐 끼치는 상황을 연출하고 싶지 않아 그냥 불을 끄고 방문을 닫고 돌아섰다.     


결국카르페디엠!

다음 날도 아이는 학교 정규 수업만 마치고 돌아와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퇴근 후 부랴부랴 준비해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와 나는 서로 자신의 구역에서 학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매일 온라인 커뮤니티 강의를 듣던 거실 소파에 앉았고, 아이는 제 방에서 정해진 학습 분량을 시작했다. (아니, 시작했으리라 믿었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여러 AI 사이트를 경험했다. 이제는 정교한 질문만 넣으면 30초 내 연관 정보를 제공해 준다. 전에 글로벌 기업 G사이트는 로그인할 때마다 번거로워 강의 시작을 놓쳐 자주 뒤처지고 못 따라갔었다. 이번 국내 포털 사이트인 N포털은 상시 로그인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바로 사이트 검색해서 강사님의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덕분에 퇴근 후 수강이라 피곤해서 눈은 자꾸 감기는데도 강의 내용은 흥미로웠다. 강의를 마치고 설마(?) 하면서도 아이 방을 살포시 엿보니 또 휴대폰을 보면서 딴짓하다 황급히 학습 모드로 바꾸는 것을 보았다. 차라리 끝까지 몰랐으면 덜 화났고 속상했을 것을. 눈으로 욕 한 번 해주고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아이 방을 빠져나왔다. 그런 다음 곧장 이미 세탁 완료 알림이 울린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구김을 일부라도 펴듯 ‘팍팍 파바박’ 소리를 내며 빨래건조대에 널었다. 사실은 빨래를 털 때 나는 소리처럼 아이의 등짝을 따닥 한 대 세게 때려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은 아이의 다 마른빨래를 개켜서 제 방 옷장 서랍에 넣어주었다. 이번에는 눈치를 살피던 아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냉랭하게 돌아 나왔다.     


서평 응모도, 중학교 때부터 4년 차 사춘기 청소년도 그냥 내려놓으면 될 것을. 내가 돈에 이렇게 집착했으면 임대 사업자 정도는 되었을 텐데. 불안이 낳은 집착인가. 집착으로 인해 불안이 닥친 건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식상한 논쟁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불안과 집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막연하게 ‘50세가 되었을 때 무언가를 이룰 것이다’라는 두루뭉술한 목표를 세워놓고는 구체적인 계획 수립도 하지 않은 채 허송세월하니 불안하고, ‘50’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니 또 하루하루 지나는 시간이 초조하고 불안한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불안과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정신과 의사나 성자라면 그 답을 알 수 있을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책과 함께하고 싶은 나는, 이번에도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시다 소천하신 법정 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라는 잠언집에서 조언을 구해본다. ‘존재 지향적인 삶’이란 글의 본문 중 일부다. 

“영원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마음껏 살고 있다면/ 내일의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쓸 이유가 어디 있는가.”(p.118) 

그러니 내일의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쓸 일 없도록 오늘을 마음껏 살아야 한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mental-health-7323725_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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