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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Sep 29. 2024

나도 좀 해 보자, 일탈

- 결혼 20주년 덕분에

 본격적인 추석 연휴는 9월 16, 17, 18일, 총 3일간이었지만 연휴 시작 전 9월 15, 16일까지 더하면 올해는 총 5일 동안 명절 연휴인 셈이었다. 이런 경우 배우자는 회사에서 조기 퇴근하여 해지기 전, 집에 도착하곤 했었다. 도착해서 내뱉는 첫 마디는 항상 “준비는 다 했어? 늦기 전에 얼른 가자.”였다. 차례도 지내지 않는 시댁을 굳이 일찍 가야 하나 싶어 내가 불만을 늘어놓으면, 선심 쓰듯 양보하여 달력에 빨간 표시가 있는 첫날 새벽으로 겨우 출발을 늦춰주었다.

 그랬던 내가 올 추석 연휴에는 시댁, 친정이 있는 전주에 내려가는 대신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됐다. 올 10월 31일이 결혼 20주년이라 그 핑계를 대어 보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7월 중순쯤 시어머니와 나눈 통화 이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전화도 문자도 드리지 않았다. 속이 문드러진 건 내 쪽이었다. 괜한 모진 말을 덧붙여 내 상처에 소금까지 끼얹는 바보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콩 볶듯 떠난 번개 여행

 급작스럽게 계획된 여행이었다. 항공편은 편도 한 장도 구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왕복 배편을 예약했다. 가는 편은 ‘여수 ⟷ 제주’, 오는 편은 ‘제주 ⟷ 완도’ 항로였다. 가는 배편의 승선권은 1등실. 좁긴 했지만 소파와 2층 침대가 있었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1등실은 2인용이란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집에서 여수까지 무려 6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여행계획에는 없었으나 제주도로 출항하는 배 시간이 다음날 01시 30분이었으므로 일몰로 유명하다는 ‘향일암’을 방문했다. 일몰 때가 지나 도착해 주위는 이미 어둑해졌다. 우리 가족은 무수한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며 땀을 비 오듯 흘렸다. 1시간 전에만 도착했으면 멋진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정상에 오르니 더 아쉬웠다. 암자에 울려 퍼지는 비구니 스님의 염불 소리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진을 여러 장 찍으면서 아름다울 게 분명한 일출도 떠올려 보았다. 마침 저녁 예불을 마치고 법당을 나서는 스님께 합장을 드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발밑을 핸드폰의 플래시를 비추며 조심조심 내려왔다.

  그렇게 내려와서도 출항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근처 오동도 둘레길도 산책했다. 이미 건너편 해안에는 우리가 탈 배가 도착해 있다고 남편이 일러 주었다. 오랜만이었다. 우리 아이 다섯 살 때도 굳이 렌터카를 빌리기 싫다며 자차를 이용하기 위해 쾌속선을 타고 제주도에 갔었다. 그땐 배에서 빵을 사 먹은 게 화근이 되어 결국 제주항에 거의 다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올 무렵 구토하고 말았다. 나는 어른이라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아이는 결국 토를 해서 뒷자리 가족 아이 신발에까지 튀고 말았다. 여행을 시작하려는 가족에게 민폐를 끼친 안 좋은 기억도 모자라 2년 후쯤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었기에 다시는 배를 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제 십 년이 지나서 무뎌진 걸까. 다시 제주행 배에 몸을 실을 줄이야.

  제주항 도착 2시간 전부터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역시 멀미약을 먹길 잘했다. 추석 연휴 전 마지막 새벽 기상 온라인 모임에 참석했다. 평소에는 노트북으로 접속했으나, 와이파이가 안 잡혀서 핸드폰으로 겨우겨우 모바일 데이터 모드로 접속했다. 무사히 모임을 마치고 잠시 소파에 몸을 누이고 나니 선내 방송으로 제주항 접안을 알렸다. 차량 탑승자 가족들은 화물칸으로 이동해 차 안에서 순차적으로 상륙을 기다리며 한참을 대기했다. 화물칸의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트럭을 시작으로 한 대씩 빠져나갔고, 드디어 우리도 배 밖으로 나가 제주 땅을 밟았다. 일단 아침 식사를 위해 여객터미널의 국밥집으로 향했다. 출판사 서평단 활동으로 협찬받았던 제주 여행 도서에서 찾아낸 맛집이었다. 메뉴는 소머리국밥 하나. 평소 내가 잘 못 먹는 음식이지만, 남편과 아이를 위해 일단 먹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육개장처럼 빠알간 국물이어서 일단 거부감은 덜했다. 맛집답게 선지도 소고기도 푸짐했다. 선지는 도저히 먹을 수 없기에 남편에게 모두 덜어주었다. 섬 날씨라 그런지 비가 오락가락했다. 이때는 몰랐다. 이놈의 날씨가 우리의 제주 여행 내내 그리 고약하게 굴 줄은.     

23일은 너무 아쉬워!

 숙소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다. 제주항 여객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도동항 주변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풍력발전소가 절경을 이룬다는 신창리 해안도로를 달리며 수려한 풍광을 부지런히 핸드폰에 담았다. 일몰 때까지 머물고 싶었으나 밀물 때라 통행이 제한되었다. 아쉽지만 예정된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숙소는 남편 회사 그룹에서 지었다는 애월지역의 호텔이었다. 배정받은 호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과 욕실이 두 개씩인 구조였다. 이게 웬일, 평소 코골이가 심한 남편이 큰맘 먹었나 싶었다. 본가 방문 대신 떠나온 제주 여행이라고 특급 배려를 해준 모양이었다.

 “그래서 숙박비 평소보다 좀 많이 들었어.”

 남편은 아들과 내가 이게 웬일이냐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색을 냈다. 그래도 예민한 마누라의 숙면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어준 남편이 고마웠다,

 "괜찮아, 결혼 20주년 여행인데 그 정도 호사는 누려야지.“

 짠돌이 남편 속이 행여나 불편할까, 싶어 나는 선수를 쳤다. 저녁 식사는 내가 서평 했던 책, 《제주여행큐레이션》에서 미리 점찍어 두었던, 현지인이 즐겨 먹는다는 '이*옥원조고등어쌈밥 애월본점'에서 '고등어 묵은지찜'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이미 주위는 어둠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바다색과 하늘빛이 어우러진 보랏빛 풍경이었다.

 여행 둘째 날, 첫 방문 장소는 ‘새별오름’이었다. 경사가 제법 심한 오름을 올라 정상에 다다를 즈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차에 우산도 있었는데 ‘설마’하고 그냥 오른 탓에 온몸으로 빗줄기를 받았다. 세찬 비바람에 귓속으로까지 빗물이 들어왔다. 그 와중에도 ‘새별오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어이 인증샷을 남긴 우리 부부는 앞선 아들 녀석을 부를 수도 없어 걸음을 재촉했다. 하는 수 없이 예정에도 없던 숙소에 복귀하여 씻고 옷을 갈아입고 다음 장소인 책방 <소**문>에 들렀다. 서점 입구에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서점 150곳 선정’이라는 홍보문구가 걸려 있었다. 나에게 서평 의뢰를 남겨 더 친근한 유튜버, ‘책 읽어주는 남자’님-아마도 전승환 작가(?)인 듯-의 필사를 발견하고 나도 필사용 책을 읽다가 필사했다. 당당히 ‘브런치 작가 네모’라는 흔적도 남겼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어서 나는 예외 없이 책 한 권을 기어이 사 들고 나왔다. 포장용 봉툿값을 예상보다 높게 책정한 서점의 야박한 상술에는 다소 씁쓸했다.

 제주현대미술관과 도립 김창렬 미술관도 연달아 방문했다. 독박 운전으로 피곤한 남편은 잠시 차에서 쉬기로 하고 아들과 데이트했다. 아들과 학업 얘기만 아니면 부딪힐 일이 없어 평온한데, 고1 자녀를 둔 대한민국 학부모가 어찌 학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도 여행이니만큼 참고 또 참았다.

 비가 오락가락하며 최강 습도를 자랑한 날씨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꿉꿉해서 땀이 나고 찝찝했다. 제주까지 와서 물에 발 한 번 안 담그고 가는 건 억울하다. 난 기어이 종달리와 하도리 사이의 하도해수욕장으로 가서 살짝 발을 담갔다. 차만 타면 자는 아이도 깨워 발 한 번 담그게 했다. 귀찮아하던 녀석도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어느덧 해 질 무렵이 되어 우리는 아이가 그렇게 노래 부르던 ‘참돔회’를 먹으러 숨*소리라는 횟집으로 향했다.

 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은 지금까지 먹었던 육지의 맛과 사뭇 달랐다. 그럼에도 허기 진 우리는 옷에 간장양념까지 튈 정도로 테이블에 음식이 차려지기 무섭게 허겁지겁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벌써 제주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오전 일찍 ‘한라산 1,100고지 생태습지공원’에서 희귀생물자원을 감상하며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머릿속이 맑아졌다. 건너편 휴게 매점에 무료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주변 한라산 풍광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2009년 10월 12일에 우리나라에서 열두 번째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단다. 전 구간이 목재 데크로 이루어져 있어 약 10분 정도면 관람을 마칠 수 있다. 대부분 자차로 오겠지만 버스정류장도 주변에 설치되어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좋겠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고 초록 초록한 배경이라 사진찍기에도 좋다.

 다음 일정은 ‘오*록 티 뮤지엄’이었다. 간단한 아이스크림과 차를 먹고 녹차밭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점심은 국제 여객 터미널 근처의 가성비 좋은 식당에서 돔베 고기를 맛보았다. 마지막 방문지로 ‘브*캠퍼스’를 방문하여 덴마크가 제조사인 브릭으로 만든 작품 전시를 관람했다. 10월 중순쯤 폐관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기념품 판매소는 썰렁했다.

 돌아가는 길은 완도행 여객선을 타야 했고, 제주 올 때와는 달리 25명 정원의 선실에 20명 내외의 승객이 탑승했고 나와 두 부자는 선실이 갈렸다. 탑승 시간을 줄이려고 여수행 왕복 티켓을, 각각 여수행과 완도행 편도로 바꾸느라 1인실이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곤했지만 굳이 선실 바닥에 누울 생각은 없었으므로 내가 혼자 다른 칸에 탔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며 관절이 아파 눕고 싶었지만, 버틴 지 3시간여 만에 완도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무려 7시간 가까이 달려야 우리 집에 도착한다고 친절한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안내했다. 독박 운전으로 고단한 신랑은 휴게소를 들르느라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무려 11시간 후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조수석에만 있었는데도 정말 피곤했다.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서 바로 곯아떨어지는 남편이 안쓰러웠지만, “자기야, 내가 운전교대 못 해줘서 미안해.”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했다.      

깜냥만큼의 여행

  민속의 대명절 ‘추석’ 연휴에, 시댁도 친정도 갈 수 없는 어정쩡한 입장 덕분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중에는 가급적 심란한 생각을 안 하려 애썼으나 마음속 ‘걱정 인형’이 자꾸만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결혼 20주년’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다정함이나 낭만 따위 없는 무미건조한 여행이었다. 콧수염이 거뭇한 고1 아들의 동행이 이유는 아니었다. 풍경 사진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주로 아들과 함께 찍었다.

 병환으로 홀로 계신 어머님을 뵈러 가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남편은 그저 여행사 가이드처럼 운전과 각종 비용만 정산하며 울 모자의 사진만 찍어주었다. 나는 나대로 외며느리로서 명절 연휴에 시댁을 가지 못한 죄송함과 연휴 전 일터에서 겪은 분란 때문에 여행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

 남편의 농담 레퍼토리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럼에도 여행은 여행이었다. 오랜만의 일탈은 잠깐이나마 기분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그럼요, 당연하죠. **치킨!”

 나도 유명한 TV 광고 카피로 남편의 농담에 대꾸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역작을 남긴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했다. 나는 이번 여행해서 어떤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을까?

 여행이 짧아서일까. 아직도 그곳, 제주의 바람과 바다 내음이 자꾸 떠오른다. 제주의 변덕스러웠던 날씨까지 아쉽다. 아직 ‘새로운 눈’은 가지지 못했다. 다음에는 ‘시댁’이 아닌 ‘시야’를 핑계로 좀 더 긴 여행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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