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 건강에 해로운 물욕 대신 글쓰기에 집착을!
나는 물욕이 넘친다. 특히 가방 욕심이 대단하다. 꼭 나라님의 안주인이 좋아하신다는 명품백이 아니더라도 책을 많이 담을 수 있는 가방. 이왕이면 큰 가방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내 절친이 어깨에 멘 커다란 가방을 보고는 "미령아, 제발 가방 좀 가벼운 거 들어. 자기가 멘 가방의 크기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래."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강하게 말하면 당연히 무거운 가방 메기를 즐기는 나의 어깨가 조금은 편안해질 것을 예상하고 한 말일 텐데, 나는 당시 그 말에 심드렁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저주처럼 그 말은 잘 들어 맞았다. 지금도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크고 무거운 가방의 무게만큼 내 삶도 무겁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이나 짐을 챙겨 무거운 가방처럼 내 삶에 쓸데없는 것들을 채워 넣고 있다. 이런 게 바로 집착이다.
책과 가방에 대한 집착
집착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다. 그렇다면 법조문을 해석하던 전공을 살려 문장에 담긴 뜻을, 나의 집착 유형에 빗대어 꼼꼼히 뜯어 보겠다. 먼저, ‘어떤 것’은 특정 대상을 의미한다. 나의 경우는 ‘책’과 ‘가방’이 이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늘’은 ‘시간의 연속성’을 말한다. 내가 쇼핑할 때 항상 가방에 시선을 뺏기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내가 부자라면 온 집안에 신상 가방을 쟁여두었을 수도 있다. ‘마음이 쏠려’라는 부분에서는, ‘집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 부분이 집착의 순기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나쁜 일에 마음이 쏠리면 부도덕하거나 나아가서는 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일에 집중하는 것은 성과를 내고, 마침내 성공으로 가는 필수 요소다. 마지막으로,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 바로 ‘집착’을 정의함에 있어 8할을 차지한다고 하겠다. 내가 가방을 사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지만, 계속 눈에 밟혀서 매장을 몇 번이고 다시 가서 살 수 없는 가방을 자꾸 만져보는 행위가 그 예이다. 만약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목표를 잊지 못하고 매달린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단, 이 경우에도 목표가 허황되지 않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책을 자주 사는 편이다. 최근엔 그나마 좀 자제하는 중인데도, 서점에 가면 기어이 뭐라도 사고 나오는 편이다. 나에게 있어 가방 만큼이나 충동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이 바로 책이다. 서점에 가서 책 냄새를 맡으면 마치 꽃향기에 매료되는 꿀벌의 본능처럼 그냥 좋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지금 비정규직 도서관 업무를 견뎌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무턱대고 사다 나른 책들이 서가를 차지하다 못해 집안 곳곳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사는 이유는 바로 읽어야 할 텐데, 정작 읽는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들이다. 이유가 뭘까. 원래 나의 신조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먼저 읽어본 후 소장 가치가 있으면 구매하자는 주의다. 구매한 책은 언제든 집에 있으니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또 도서관 신간 목록을 살피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어느덧 집안은 당장 북카페를 차리고도 남을 만큼 책들로 가득 찼다. 나중에 황혼이 돼서 지금보다 형편이 나아지면 북카페나 작은 독립서점을 차릴 꿈도 꾸고 있으니, 그때 많은 책을 한꺼번에 채우는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으리라 위안 해본다.
그렇다면 시선을 떼지 못하는 수많은 가방 구매욕은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 고집스러운 평소 성정상 물건을 고를 때의 취향도 매번 비슷하다. 그런 나를 보면 남편은 “또 그런 스타일이야? 집에 많잖아. 굳이 사려거든 좀 색다른 디자인으로 사던지.”라며 퉁명스럽게 한마디 한다. 내가 봐도 그렇다. 옷을 고를 때도 비슷한 색상, 비슷한 디자인에만 눈길이 간다. 어쩌다 분위기를 좀 바꿔볼까 싶어 평소와 다른 스타일로 구매하면 바라보기만 하고 잘 안 입게 되어 결국 후회하게 된다.
책은 너무 분야가 다른 책들을 자주 사곤 한다. 그러니 책 내음에 이끌려 서가로 성큼성큼 걸어가 평소에 살까 말까 망설이던 책을 호기롭게 사서 일사천리로 계산까지 마치고 나온다. 그리도 당당하게 구매한 책을 당장 읽지도 않고 또 기존 책이 쌓인 곳에 최대한 쓰러지지 않게 잘 쌓아둔다.
핑계대지 마, 그냥 물욕이야
입지도 매지도 읽지도 않을 옷을, 가방을, 책을 자꾸 사는 이유는 뭘까. 단순 소유욕일까. 아니면 만성 우울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탈출구 같은 걸까. 아니다. 남편의 철저한 금욕적인 생활에 반기를 들고 싶은 나의 쾌락적 성향을 표출하는 것이다. 종종 충동구매를 일삼으면서도 ‘내가 낭비하는 건 아니잖아.’라는 자기 합리화를 내세우며, 자린고비도 울고 갈 남편의 알뜰 버전에 반기를 들고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당당한 충동구매도 앞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이 만료되고 나면 끝이다. 그러니 슬슬 ‘바라보기’ 위함이 아닌 ‘읽고’, ‘사용하기’ 위한 현명한 쇼핑을 해보자. 아니 그만 사야 하는 게 맞겠지?
감사의 표시로 받았다는 어느 여인처럼, 명품 가방을 산 것도 아닌데 우울한 기분 전환용으로 이 정도 가방쯤 사는 게 무슨 대수냐며 사 모았던 가방들도 지나고 보니 다 충동구매였다. 구매하는 그 순간만 즐겁고 결국 괜히 샀다는 후회가 밀려들어 우울하고, 우울하니 또 자책하는 이 ‘후회의 악순환’의 꼬리를 끊어내야 한다. 차라리 날 위해 이름만 대면 아는 명품 가방 하나쯤 사두고 중요한 순간에만 매면 어떤가. 그 외에 내 글쓰기 필수 장비인 노트북을 넣을 수 있는 크기의 백팩, 일상용으로 맬 수 있는 크로스백 정도만 있으면 족하다. 책도 마찬가지다. 구매하는 책으로 마치 지적인 이미지를 장착한 양 뽐내지 말자. 서가 장식용으로 구매했다면 이제 그만! 더 이상 책을 사서 집안에 쟁여두지 말고 눈과 뇌에 담아보자. 눈과 뇌에 담아 둔 내용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으니 두고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책 이외에는 웬만하면 빌려 읽어야겠다. 그래야 기한 내에 속도감 있게 집중해서 읽는 습관도 생기지 않겠는가.
가방이나 책은 전시품이 아니다. 가방은 손으로 들거나 어깨에 메기 위해서, 책은 오롯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경우만 구매를 결정해야겠다. 충동구매는 성인 ADHD 양상 중 하나일 수 있고, 가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신중한 구매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