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 대한민국 우체국 직원들의 직무수행에 경의를 표하며
원칙(原則)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일관되게'라는 의미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원칙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들이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아닐까요? 우리나라 공무원은 직업윤리가 투철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 없으리라 믿습니다. 비단 공공기관에서만 원칙이 통용되는 건 아니겠지요. 모든 업무 처리를 개인의 요구에 맞출 수 없으므로 '원칙'이 존재하는 이유일 테니까요.
어제 또 우체국 직원으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 직원도 등기우편을 부재로 재배달까지 해야 했으니 번거롭고 짜증도 났을 겁니다. 배송 직원의 휴대전화 번호-아마 업무용 폰이겠지만-로 발송된 문자여서 '시외지역에 있으니 우편함에 넣어달라'고 부탁했지요. 수령 후 수령인증샷 보내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카드는 우편함 수령이 안됩니다. 전산처리를 해야돼서요."라는 답장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반송 예정인 관내 중앙 우체국으로 직접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직원은 우체국 위치를 일러주며 본인의 집배 업무가 끝나고 우체국으로 들어가는 오후 4시 이후에 오라고 하더군요.
어차피 우체국 위치가 시외지역의 고속터미널에서 출발하면 대중교통으로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여서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전철을 한 번 환승한 후 내려서 출구로 나오니 마침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요. 무거운 백팩에 살쪄 볼품없는 몸매를 가리려고 입은 치렁치렁한 긴 옷까지 걷는 내내 발걸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태생부터 극심한 곱슬머리라 습기를 잔뜩 머금은 머리는 제멋대로 헝클어져 쓰고 있는 안경 렌즈에 비추기 시작했고요. 평지도 아니고 오르락 내리락 길을 몇 번이나 건넌 다음에야 목적지인 우체국에 도착했습니다. 씩씩대며 걷느라 땀까지 나서 정말 화가 치밀어올랐습니다.
겨우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카드 찾으러 왔는데요."라고 했더니, 데스크에 앉아있던 여직원분이 "등기번호 몇 번이세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건 잘 모르겠고요. 배송 직원분이 4시 넘어서 여기 우체국 오면 찾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라고 반응했습니다.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말이죠. 화가 많이 났었나 봅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나서야 겨우 'ㅅ'은행의 체크카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카드는 금융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서 배송하는 게 원칙이겠지요. 당연한 말을 뭐 이리 길게 하느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다음 사례는 어떠신가요?
3개월 전쯤 같은 'ㅅ'은행의 갱신 재발급 신청한 카드가 배송예정이라며 이른 아침 문자를 받았었습니다. 배송시간을 물으니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고, 대략 낮 12시부터 1시 사이에 배송할 거라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도서관에 근무하던 때여서 근처 우체국에 배송해주시면 대신 찾아가겠다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면 혹시 근무하는 도서관에 대신 배송 부탁드리니 그것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순간 짜증이 나더군요. 다른 장소도 아니고 어쨌든 같은 소속기관인 우체국에 맡겨달라고 부탁드렸는데도 막무가내로 안 된다고만 하니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 카드는 반송되어 해당 카드사로 반송되었습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제가 주소 변경을 한 후에야 카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발생할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본인 직접 수령 원칙을 정해놓은 건 잘한 정책이지요. 민원인들의 요구를 하나둘 들어주다보면 원칙이 무너진다는 말도 맞습니다. 그럼에도 두 번째 경우는 당시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반송을 하더라도 수령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우체국이라면 맡겨 주어도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만 "예외없는 원칙은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고려할 만한 사유가 있다면 최소한의 융통성은 발휘해줄 수도 있지 않나요? 근무지에서 100m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는 우체국에 맡겨두면 점심시간에 가서 찾으면 될 텐데 말이지요. 무작정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공익을 고려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경우에만 한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 경우에는 공익적 목적은 아니니 애초에 예외를 인정할 수 없었겠지요.
지극히 감정적 분노임을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푸념 한 번 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공직자들이 원칙을 잘 지켜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준을 적용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