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 잠시 살았던 동네의 두 엄마를 만났다. 당시 우리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엄마들 중 특별히 친했던 사이여서 이번 11월부터 백수 신세인 내가 기꺼이 서울로 올라갔다. 그 두 명도 각각 현재 다른 동네에 거주하고 있었다. 한 살 위인 언니는 강남구에 살고 있었고, 동갑내기 엄마는 강북구에 살고 있었다. 언니가 강남으로 이사온 것이다. 우리 셋은 같은 대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단지 내 초등학교에 입학한 우리들은 아직은 유아같기만 한 1학년 사내아이를 학교에 보낸 애틋함을 지닌 엄마들이었다. 초등 1학년때 친한 엄마들이 초등 6학년은 기본이고, 어떤 경우에는 평생을 가기도 한다.
아직 이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각자 고1 아들을 둔 우리들은 서로의 외모를 확인하며 덕담과 자기 비하를 섞어가며 안부를 묻는 가벼운 대화로 시작했다. 오전 11시에 만나 식당 문이 열릴 때까지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현재 고1 수험생활까지 그간의 아이들 성장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30분쯤 후 이른 점심식사를 위해 언니가 미리 봐두었다는 근처 맛집으로 이동했다. 각자 다른 3가지 메뉴를 주문하고 허겁지겁 먹었다. 다음은 만남의 필수 코스인 카페로 이동했다. 출입문이 열려진 채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베이커리 카페였다. 점심 식사 후라 음료만 주문했다. 모던한 분위기여서 그랬을까. 2층은 좀 조용할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제법 소란스러웠다. 그럼에도 1층보다는 안정감이 있어 최대한 구석진 자리로 이동했다. 2층에도 커피머신이 있고 서버가 서넛쯤 분주히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유리도 막힌 내부가 시원해보이면서도 트인 실내 공간과 달리 그 작업공간은 왠지 답답해보였다.
아이들의 근황토크에 이어 입시제도와 연관지어 자신의 아이들의 내신을 운운하며 열띤 대화를 이어가는 그녀들과 달리 나는 딱히 끼어들 주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추임새처럼 우리 아이의 현재 학업 수준을 묻는 그녀들의 질문에 그저 "시골이라 문제 수준이 엄청 쉬워."라며 도심권 학교 분위기와는 다른 변두리 지역의 학교 실정을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강남 지역에 사는 그 언니는 압구정역 주변의 H백화점 셔틀버스를 타면 집에 갈 수 있다며 백화점 연결 통로를 향해 갔고, 나는 올 때와는 달리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가다 환승할거라며 동갑내기 엄마와 3호선 개찰구 앞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겨울 방학쯤 한번 보자."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3호선 지하철에서 한번 더 환승 후 광역버스까지 1시간쯤 타고 내려서 겨우 집에 도착한 나는 왕복 4시간쯤 소요된 서울 나들이에 지쳤다. 어차피 서울에서는 웬만해서는 도심지역에서 이동할 땐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현명하다. 그럼에도 슬세권마냥 최대한 편안한 복장으로 나온 강남 엄마와 전철 환승만 하면 되는 강북 엄마와 달리 전철에 광역버스까지 타고 시외를 오가는 내 처지가 우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살던 서울 아파트를 팔고 오지만 않았어도...'하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생각이 떠올랐다. 이미 떠난 버스인 것을, 어차피 내 차지가 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웠다. 아이가 저리도 힘들어 하니 만약 돌아갈 서울 집이 있었으면 야구로 유명한 학군내 고등학교에 전학이라도 시켜볼 수 있을 텐데. 괜히 아이 핑계를 대어 본다.
언니와는 대략 2년 쯤만에 만났고, 동갑 엄마와는 이곳으로 이사온 이후 처음 만났음에도 어색하지 않았다. 결이 맞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리라. 결이 맞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서로 잘 통하는 관계가 아닐까. 정확한 정의는 아니지만, 심리상담가이자 작가인 김유영이 쓴 <당신은 결국 괜찮아진다>라는 책에서 '인연의 한 수'라고 언급한 부분이 떠올랐다.(본문p.110)
한 마디 한 마디가
따뜻하고 건강한 말
힘이 되는 지지의 말
위로와 격려가 담긴 말
희망스럽고 긍정적인 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닌
상대방을 위로하는 말이어야 하고
좋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양보하고 배려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
또한 긍정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을 끌어 주고 바르게 잡아 주려는
친절한 마음과 선한 마음을 내는 것
관계와 소통과 공감의 시작점이다
이런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사이가 잘 통하는 관계, 즉 '결이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상대방에게 그런 공감을 강요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귀를 열고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