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귀신 꿈을 많이 꾸었다. 어른들은 크느라고 그런다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아무 위안이 안 되었다. 밤마다 귀신 꿈을 꾸었던 10살 무렵에는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자다가 깨면 벽에 걸린 옷도 귀신으로 보였고, 창 밖에서 귀신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 누워서 새벽이 오길 기다리며 나만의 디스토피아를 견뎠다.
낮에는 육교가 나를 괴롭혔다. 학교에 가려면 육교를 건너야 했다. 육교에 올라가면서 육교가 무너지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왜 이런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육교 계단을 오르면 계단이 내 뒤에서 하나씩 무너지는 상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다행히 계단은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었다. 계단을 다 오르면 육교 한복판에서는 육교 다리가 출렁이는 것을 느끼곤 했다.
내 고소공포증은 언제 구체적으로 발현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몸을 써야 하는 때가 오면 심리적으로 무척 위축되었다.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면 친구들은 환호했지만 나는 불편한 표정으로 안 타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친구들이 기쁨의 탄성을 지르는 것을 구경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학교 생활은 무척 힘들었다. 몸을 쓰는 일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체육 시간은 내게 극도의 스트레스 시간이었다. 뜀틀을 넘어야 할 때, 나는 달려가서 언제나 뜀틀 도약대 앞에서 멈추었다.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서 늘 웃음거리가 되었고 그 시간을 극복해야 했다. 왜 뜀틀을 넘어야 신체 단련이 되는지, 당위성에 대해 설명을 듣은 적이 없었다. 내게 체육 시간은 형벌의 시간이었고, 나는 자주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빠지곤 했다.
한 번은 가을 운동회 때였다. 백 미터 달리기를 누구나 했던 것 같은데 조금 머리가 컸던 나는(그래 봐야 고작 열한두 살이었다) 백 미터 달리기에서 슬쩍 빠졌다. 운동회 날에 학부모도 참석하고 운동에 참여하는 학생도 많아서 운동장이 사람들로 빼곡했다. 나 하나쯤 빠져도 선생님은 알지 못했다. 모두가 결승선을 들어간 후에도 한참 달려서 주목을 받는 일을 초등학교 3학년까지 했는데 4학년 때는 그 상황을 내 식대로 처리한 셈이었다. 나는 몸을 쓰는 걸 거북해해서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했고, 중년이 되어 달라진 점은 자발적으로 몸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건강을 위해 하이킹을 하다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는 순간들을 만난다. 그동안 요리조리 잘 피해왔고, 주위에 좋은 하이킹 친구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난관을 극복해왔다. 산에 가면 나는 몹시 얌전해진다. 내 걸음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낯선 근육들을 쓰느라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소공포증을 보면서 복장 터지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주에 관악산 관양 능선에 갔다. 알고 있던 관악산이 아니라 그야말로 '악'이 지닌 바위의 본질을 보여주는 광경이 펼쳐졌다. 게다가 6번째 국기봉이 있는 바위를 넘어야 했다. 바위를 넘는 일은 손, 발뿐 아니라 머리와 눈을 써야 한다.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눈으로 먼저 살핀 후 발을 딛고, 손으로 잡을 곳을 함께 봐야 한다.
아주 짧은 구간이었지만 내게는 커다란 도전이었다. 느닷없이 닥친 고난이었다. 일행은 바위 위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못 간다고 징징댔지만 통하지 않았다. 내 바위 공포증을 잘 아는 친구는 아마조네스가 되어 내 발 뒤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내가 발걸음을 뗄 수 있게 안심시켰다. 입으로는 어디를 딛고, 손으로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 말하면서 코치를 했다. 한 발 한 발 느린 동작으로 하는 수 없이 전진하면서 위를 올려다본 순간, 사람들이 마치 바위가 바닥인 것처럼 편안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원숭이들이 떠올라 무서우면서도 웃음이 났다. (친구들 미안!) 드디어 바위에 올랐다. 바위를 오르느라 긴장했더니 체력이 방전되었다. 급 눕고 싶었지만 일행을 등지고 충전하는 방법을 택했다.
학교 다닐 때가 떠올랐다. 몸을 쓰는 단체 활동에서 위축되어 초집중력을 발휘해도 어색했던 순간. 이 날도 그랬다. 일행과 분리된 시간을 보낸 후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니 산수화 속에 쏘옥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 맛에 산에 다닌다고 했다. 고소공포증이라고 항상 나를 단정하고 피하려고만 했지 극복하려고는 노력하지 않았다. 얼떨결에 고소공포가 최대치로 치솟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나는 안전하게 하산했고, 막걸리도 한 잔 마시고 집에 왔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 친구와 바위산인 홍성에 있는 용봉산에 갔다. 해발 380미터 정도 되는 낮은 산이지만 90퍼센트 이상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관악산에서 예상치 못한 특훈(?) 덕분에 용봉산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바위가 안 무서웠다. 살금살금 걷기는 했지만 말이다. 함께 간 친구는 내가 바위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잘 알고 있어서 내 변화를 보고 나보다 더 놀랐다.
나는 내 안전지대 밖으로 비로소 나온 것 같다. 그동안 나를 가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바위랑 한결 친해진 기분이었고, 앞으로는 예전만큼 안 무서울 것 같다. 닥쳐봐야 알겠지만. 이맘 때면 늘 연말 우울증에 시달려서 도망가느라 여행길에 오르곤 했다. 연말 우울증도 내가 붙인 태그였다. 새해에는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불안보다는 설렘이 더 크다. 올 연말 우울증은 과거 흔적으로만 남아있을 것 같은 예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