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알 Jan 03. 2020

성실과 책임감의 한계

드라마 <보좌관>을 통해서 본 일에 대한 태도  

                                                                                                                                  

12월에 드라마 <보좌관>을 정주행했다. 시즌 1,2로 이루어졌지만 한 번 플레이를 누르면 다음 회차가 궁금해서 정주행을 할 수밖에 없다. 다음 회가 궁금해서 월정액 거금 7,700원을 결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긴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만든 건 캐릭터의 힘이다. 국회의 정치와 경제, 관의 카르텔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약간 스릴러 형식이고, 언론 플레이의 메커니즘을 과장은 좀 있지만 잘 보여준다.  국회의원 강선영(신민아)와 보좌관이었다가 국회의원이 된 장태준(이정재)의 러브라인이 있기는 하지만 꽁냥꽁냥 1도 없이 열일하는 커플이다. 두 주인공은 공익이 우선이라는 신념에 충실한 인물이다. 장태준 캐릭터는 복잡하다. 시즌 1에서는 야망을 위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신념을 가진다. 시즌 2에서 힘, 즉 국회의원이 되면서 공익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런 스토리만 보면 인간 장태준의 성장 드라마로 볼 수도 있다. 




강선영과 장태준 두 사람은 강직하고, 무엇보다 신념을 위해서 열정을 바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사람은 유유상종이다.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가치관이 너무 다른 사람은 서로를 쉽게 알아봐서 어울릴 수가 없다. 강선영 주변에는 강선영처럼 정의를 믿고, 싸우는 보좌관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다닌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전형들이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게다가 공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들은 바람직한 인물상이지만 우리는 영웅이 아니라 평범해서 바람직한 인물상처럼 살 수 없다. 우리는 작은 소문에도 출렁이고, 상처에 취약하다. 내 신념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 신념을 지지하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인물들은, 법무부 장관이 되기 위해 권모술수에 능한 송희섭(김갑수),  옆에서 궂은일을 하는 오원식(정웅인)이다. 송희섭과 오원식은 이기주의자의 대표자들이다. 이들은 누구보다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 잘 적응하는 인물이다. 진실은 안드로메다에 보내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 그까이꺼, 주의자들이다. 거짓이 때로는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고, 진실이 필요할 때는 누군가를 협박하거나 자신이 협박 당했을 때뿐이다. 신념 따위는 없고, 상황에 따라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고, 기회가 없으면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기를 즐긴다. 미꾸라지처럼 주변을 헤집고 흑탕물로 만들어도 앞으로 전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이다. 목표 의식이 뚜렷해서 목표를 향해서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달려간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된 것도 이런 인물들이 보여주는 코믹함 덕분이다. 닮고 싶지 않은 인물들이고, 천박하게 보이지만 상황마다 기회주의자로 변신하는 인물들에게 인간적인 면을 느끼게 된다. 이들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드라마라서 과장된 면이 있고, 국회의원이라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 그렇지 우리도 기회주의자적 태도를 많이 취한다. 우리의 기회주의적 태도는 내 주변인에게만 영향을 발휘하는 게 다를 뿐. 




 

극한 성실과 책임감의 아이콘은 최경철(정만식) 중앙 지검장이다. 순결한 원칙주의자로 송희섭 법무장관의 권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캐릭터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 같은 사람이다. 장발장은 빵을 훔쳤고, 도둑이니까 하늘 끝까지 쫓아가서 잡을 뿐이다,라는 원칙주의자. 하지만 원칙이라는 게 뭔가. 사람이 특정한 집단의 편의를 위해 만든 불완전한 제도이다. 그 원칙은 어느 집단에는 옳지만 또 어느 집단에는 옳지 않을 수 있다. <보좌관>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전개된다. 장태준을 수사하다가 송희섭의 계략과 술수를 발견하게 된다. 송희섭은 더 큰 암흑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원칙주의자의 고민이 비롯된다.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예외 많은 원칙은 더 이상 원칙이 아니다. 어쩌라고. 원칙주의자는 자신의 신념을 신봉하는 사람일 수 있고,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에 혼돈을 맞이한다.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없어도 이들은 별로 외로워하지 않는다. 원칙이 있으니까. 인간인지 로봇인지 모를 정도로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세 인물 유형은 모두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자기 방식대로 지만. 세 인물 유형을 보면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건 미덕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송희섭 같은 인물의 성실과 책임감은 특정한 주변인에게 아주 사적인 이익을 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해를 끼친다.


<보좌관> 인물을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것은 일에서 내 성실과 책임감의 범위가 어디까지일까를 말하기 위해서다. 어제저녁, 2년 전에 가르쳤던 학생에게 장문의 톡이 왔다. 편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 생각이 났다면서 감사의 내용을 구구절절하게 전했다. 인생에서 첫  흑 역사기를 함께 하다 보면, 내 강한 책임감과 성실함이 감수성 예민한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는 내 일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했다. 어디까지나 내 입장이다. 내 성실과 최선은 흑역사기에는 지나치게 과도해서 피하고 싶은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해야 하는 당위성과 하기 싫은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걸 모르는 바가 아고, 나 역시 당위성과 욕망의 경계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한다. 일은  나에게 당위성을 부여해서 욕망을 무거운 바위로 누르고, 성실과 책임을 최대한 끌어낸다. 사람의 마음은 정량화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에도 흔들린다. 가끔씩 무거운 바위를 살짝 들어서 성실과 책임감을 내려놓고 상대의 눈높이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잘 안 된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것만 깨달을 때가 많다. 그래도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내 방식의 성실과 책임감을 이해하고, 고맙다는 연락을 받으면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실수와 반복을 통해서 생각하고 배우지만 배운만큼 실천하기는 늘 어렵다. 같은 상황에 처하면 달라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