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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Jan 06. 2020

꼰대와 어른 사이

영화 <라스트 미션>을 통해 본 가장의 무게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뭘까? 위키백과 정의에 따르면, 꼰대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이다.  어른은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 <라스트 미션>의 주인공 얼(클린트 이스트우드)은 꼰대이면서 어른이다. 그는 자기 일에 책임감이 강하고 야망도 있다. 꽃 농원을 운영하면서 꽃 박람회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 시간, 돈, 젊음을 다 쏟는다.


전처가 얼에게 말한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거기(꽃)에 쏟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요."

"사랑하니까."   




얼은 꽃을 사랑해서 가진 모든 걸 쏟아부었다. 가족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어 떠났다. 얼은 이제 늙고, 파산 직전 상태로 언제 설 지 모르는 트럭을 타고 다니는 독거노인이 되었다. 돈이 필요해 어느 날, 마약 운반책이 되어서 마약을 운반한다. 길 위에서도 어른으로의 면모를 보여준다. 펑크 난 타이어를 갈 줄 모르는 흑인 가족이 길 위에 있는 걸 보고 그냥 못 지나친다. 유튜브 검색이 안 돼서 데이터 신호를 잡으려고 핸드폰을 허공에 들고 애쓰는 젊은 아빠를 본다. 요즘 것들은 핸드폰이 없으면 과일 상자도 못 연다고, 한 방 날려주신 후 타이어 가는 걸 가르쳐 준다. 얼은 흑인을 '니그로'로 불렀던 세대이다. '니그로'가 아니라 '블랙', '사람'이라고 젊은 아빠는 가르쳐 준다. 얼의 사고방식과 습관은 그의 평생을 지배해 왔다. 그가 형편없는 인격의 소유자라서 순화된 말을 사용 안 하는 게 아니다. 여든 해를 살면서 경험으로 체득해서 못 마땅하면 거침없이 말한다. '요즘 것들'이 하는 행동이 당최 이해할 수 없고, 누구의 말도 잘 안 듣는다. 심지어 마약 운반책으로 일하면서 마약 운반책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규칙을 따르지 않아서 청년들을 식겁하게 한다. 장거리 마약 운반을 할 때 정해진 모텔에서 자는 게 아니라 친구네 집에서 잔다. 경찰을 만나도 마약이 든 가방이 실린 트렁크를 열고, 능청스럽게 피칸을 건넨다. 얼을 에스코트하던 청년들은 얼이 어디로 튈지 몰라 열폭한다. 우리는 이런 지점에서 잔뜩 긴장했다가 능청스러움에 피식 웃게 된다.




있는 거라고는 나이밖에 없는 노익장의 배짱은 어디서 나오나? 어른으로 산 것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얼은 교통위반 딱지 한 번 뗀 적 없이 교통법규를 준수했다. 딱지 한 번 받은 적 없다는 사실은 그가 준법 시민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경찰을 봐도 꿀릴 것 없다는 자신감이 나온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치는 얼이 말년에 범죄라는 걸 알면서도 왜 마약 운반책이 되었나?


얼은 마약 운반을 해서 번 돈으로 손녀의 대학 등록금을 냈다. 젊었을 때 번 돈은 꽃에 썼는데 늙어서 번 돈은 꽃 같은 손녀에게 썼다. 꽃도, 꽃 같은 손녀도 사랑하니까. 얼은 젊었을 때 가족을 돌보지 않고 꽃에만 미쳐있었던 죄책감과 회한이 있다. 노인이 되어서야 가족에 대한 책임을 져버린 것이 눈에 들어온다. 후회란 말처럼 슬픈 단어도 없다. 상황을 돌이킬 수 없는 걸 깨달은 후에야 후회란 감정이 알기 때문이다. 후회는 미리 찾아오지 않는다. 젊을 때는 젊음이 뭔지 모르고, 나이가 들면서 젊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얼은 젊은 날, 어른으로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가족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늙고, 무일푼이 되었을 때이다. 얼은 마약 운반이 범죄일지라도 가족에게 어른으로 한 번 살아보기로 한다. 대량의 마약 운반 도중 전처가 죽음에 임박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는 마약 운반 일을 중단하고 전처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식을 치른다. 덕분에 평생 잃어버리고 살았던 가족의 신뢰를 회복했다. 마약 운반 조직은 그가 경로 이탈을 해서 죽이려 하지만 얼은 두렵지 않다. 가족에 대한 어른으로서 책임을 완수했으니까.


얼의 어른으로서의 면모는 법정에서 빛난다. 결국 마약단속 경찰에 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고, 얼의 변호인은 그의 사정을 판사에게 설명하려고 한다. 얼은 일어나서 "유죄입니다."라고 말한다. 얼은 정상 참작을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히 죄를 지었고, 그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수감 생활을 한다. 교도소 화단에서 꽃을 기르면서 남은 생을 보낼 것이다. 우리는 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기에 안타깝다. 얼이 두 말 안 하고 죄를 모두 인정하는 태도에 눈물이 찔금 난다.




한 사람이 한 가지 모습만 지닐 수 없다. 사람은 상황과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층적 모습을 보여준다. 기회주의자적 태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한 사람이어야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의 태도로 자신의 주장만 고집한다면, 그 사람은 고집불통으로 불릴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해서 실수 투성이고, 종종 잘못을 저지른다. 잘못을 깨달았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거나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꼰대가 될 것이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쿨한 어른이 될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 이거 쉽지 않다. 어른이 되기 어렵고 꼰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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