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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Jan 26. 2020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본 정치적인 것의 기원


격동의 현대사를 다룬 영화는 픽션이라 할지라도 보고 난 후, 그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열 살 때, 어느 날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렸고,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통령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들었다. 어린 나는, 대통령의 죽음과 집집마다 걸린 태극기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어서 의아한 시선으로 태극기를 바라보았다. 그 후 쿠데타가 있었고, 암살범은 사형 당했다, 아니다 미국으로 몰래 망명해서 숨어서 살고 있다, 떠도는 이야기의 실체를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은 대통령을 총으로 쏜 남자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영화는 (대통령) 옆에 있는 남자 The Man Standing Next의 관점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란 말이 있다. 국민을 위해서 또는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게 아니다. 한 개인은 처한 상황에 따라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고, 쿠데타를 도모할 수도 있고, 암살자가 될 수도 있다. 한 개인의 행동을 추진하는 건 치밀한 계획이나 거시적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이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 개인의 경험은 공적 영역으로 넘어와서 정치적인 것이 된다. 많은 열사들이 태어난 비극의 현대사 뒤에는 국가가 해결하지 못한 사회 구조적 문제가 뿌리 깊게 고착되어 있었다. 개인이 처한 부당한 상황이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사회 구조적 문제가 거대 담론이 되곤 한다.


대통령의 남자들


박통이 쿠데타를 함께 한 김규평(이병헌), 곽상천(이희준)은 각각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이다. 여론이 좋지 않으면 탱크를 시내에 진입시켜 밀어버리자는 식의 사고 소유자 곽 실장. 곽 실장은 백만 명이 죽든 삼백만 명이 죽든 박통의 장기 집권에 불만 있는 사람들을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다고 믿는 단순 무식한 사람이다. 반면에 김 부장은 긴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여론과 인권을 개인, 국가 원수라할지라도 마음대로 다루는 시기는 끝났다고 믿는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국제 사회에서 한 국가는 국격이 있어서 국격을 갖추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기는 일인 독재 체제. 독재자는 18년 동안 법 위에 있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축재를 한다. 독재자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인맥을 배치하고 동원한다. 독재자의 사적 취향은 대통령 옆의 남자들을 길들인다. 독재자의 의견에 찬성하는 자는 궁정동 안가에 초대받아 그의 취향을 공유하면서 권력의 힘을 굳건히 할 기회를 누린다. 반대하는 김 부장은 궁정동 안가 모임에서 배제된다. 독재자의 기호를 읽는 것은 간단하다. 집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제거하라는 요청은 은밀하면서도 공개적 언어로 이루어진다.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대통령의 남자들은 "임자 옆에 내가 있잖아"라는 말에 길들여져서 충성을 바친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편리하고, 안정감을 준다. 그들 옆에는 군부와 법을 장악한 독재자가 있으므로 무서울 것이 없다. 철문 안에서 퍼지는 비명 소리의 크기는 충성도에 비례했다. 빨갱이라는 실체 없는 이념과 야당, 국가 반란이라는 그물을 마구잡이로 던져서 걸리는 모든 사람을 잡아서 권력을 유지하는 제물로 삼았다. 독재자의 칭찬을 들으면 살랑거렸고, 독재자의 심기가 불편하면 괴로워했다. 반려동물이 주인의 기분을 살피는 것처럼 대통령의 남자들은 독재자의 기분에 따라 움직였다. 국민을 위한 국가 통치 이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김 부장의 심리적 균열


김 부장이 독재자에게 바치는 충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전 중앙정보부장이자 친구인 박용각(곽도원)을 죽이면서 부터이다. 중앙정보부 위에 대통령이 직접 가동하는 비밀정보부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김 부장은 흔들렸다. 차기 대권을 물려주겠다는 대통령의 유혹에, 김 부장은 친구를 유인해서 암살한다. 김 부장은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배신한다. 의리와 정의보다는 개인의 사리사욕이 우선해도 비난받지 않는 천박한 시대였다. 친구를 배신한 김 부장은 혼란스러웠다. 독재자는 김 부장의 행동을 '친구도 죽인 백정'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친구마저 죽여가면서 바친 충성에 대해 독재자는 지지가 아니라 경멸을 보냈다. 대통령의 경멸이 고스란히 담긴 말은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게 만들었다. 독재자를 도와 쿠데타를 일으킨 걸, 김 부장은 혁명이라고 불렀다.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던 반윤리적 행동의 원동력은 독재자가 옆에서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제 독재자는 그를 비난하고, 곁을 내어주질 않는다. 그의 강박은 최고조에 달한다.


김 부장이 민주화를 위해 독재를 끝내고 싶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친구를 죽이라고 해서 제거했는데 돌아오는 건 모욕이었다. 그는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김 부장을 미국과의 대화 창구로 삼았던 주한미대사도 그를 협박한다. 그의 옆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막다른 골목에서 맞짱 뜨기


김 부장은 막다른 어두운 골목에 혼자 서 있는 걸 깨닫는다. 곽 실장은 그의 유약함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조회 시간에 김 부장의 발언은 지나가는 개가 짖는 소리로 취급당한다. 언제든 탱크를 밀고 들이닥칠 수 있는 무리의 손아귀에 김 부장 자신의 운명을 저당 잡히지 않으려면 맞짱 뜨기 밖에 없었다. 도망자가 추격전을 벌일 때, 숨기도 하고 뒤로 물러날 수도 있고, 숨을 고를 시간도 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이판사판이 되어 버린다.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목숨 걸고 싸우는 일. 설령 그 끝이 비극으로 끝날 거라는 걸 알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두 손 놓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에는 김 부장은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혔다.


디데이는 정해졌다. 술의 힘을 빌어서 거사를 치렀다. 김 부장의 계획은 일단 거기까지였다. 그는 사회를 전복하기 위해 거사 후를 계획하고 도모한 게 아니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궁정동 안가를 나와서 남산으로 갈지, 육군으로 갈지, 어둠이 내린 텅 빈 길 위에서 갈팡질팡했다. 혼란의 틈 속에 배짱 두둑하고 계획적인 도둑놈이 매복해 있었다. 분통 터지게 80년대 현대사를 다시 군사 독재자가 주물럭거렸다. 김 부장의 사적인 동기는 혁명을 달성하는데 실패했고,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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