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따라비오름과 서우봉, 제주도

by 김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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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일을 모른 채 '따라비오름'으로 향했다. 아름다워서 오름의 여왕이라고 부른단다. 가을에 오면 억새가 장관인 오름이라지만 내가 오름에 매혹된 이유는 오름이 품고 있는 능선의 곡선미 때문이다. 용눈이오름의 곡선미에 버금가는 따라비오름. 중산간으로 들어서니 눈발이 희미하게 날렸다. 따라비오름 주차장에 내리니 눈이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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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굽 형태를 가진 3개의 굼부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2개의 말굽형 굼부리가 나서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전경이 한눈에 안 들어오고 걸으면서 보는 각도가 달라지면 묘하게 풍경도 달라지는 매력적인 오름이다. 한 봉우리를 건너면 옆에 다른 봉우리가 있는 아기자기한 오름이다. 갇힌 거 같으면서도 조금만 오르면 시야가 트이는 풍경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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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초입에서 청년기 여행자 세 사람을 만났다. 하나로 난 길을 걸으니 다시 만났는데 뭘 해도 까르륵. 커다란 웃음소리가 조용한 대기에 울렸다. 그래, 뭐든 재미있을 때지. 친구와 나는 발밑을 조심조심하면서 눈길을 걸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변주를 이루는 길을 빠짐없이 걸었다. 양갈래 길이 하나로 만나는 게 또렷이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도 이런 갈림길 전경을 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는 온 길로 돌아가는 보수적 성향이 있는데 친구는 길은 다 만나기 마련이라면서 새로운 길로 저벅저벅 걸었다. 길은 어느 지점에서 과연 다 만날까. 지도에 의지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지도에 없는 길이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지도보다 자신의 평소 신념을 더 믿었다. 나보다 더 조심스럽고 겁 많아 보이는 친구가 길에 대해서만은 거침없는 게 놀라웠다.

누구나에게나 겁나는 영역과 거침없는 영역이 있는 거 같다. 사람이 모든 영역에서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다. 어떤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진취적이고, 또 다른 면에서 같은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규정(?)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 탐구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유이다.

내려와서 근처에 있는 거미오름으로 가는데 눈발은 더 강해졌고, 도로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입구를 찾아야 하지만 큰 눈송이가 차 앞 유리로 거칠게 달려들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함덕 해변가에 솟은 서우봉으로 향했다. 따라비오름은 겨울 풍경이다. 함덕 해변에 있는 서우봉에서는 같은 섬이 아닌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물론 차가운 바람만 빠진다면. 차를 세우고 내렸더니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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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파놓은 진지동굴.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인데 우리는 경박하게 빛의 아름다움에 끌려서 서로의 사진을 담는 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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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봉 정상에서 함덕 해변과 시내가 바라보인다. 서우봉에는 무덤이 곳곳에 있다. 이런 곳이 명당이 아닐까.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바다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 죽은 자만이 아니라 산 자에게 더 큰 휴식을 줄 수 있는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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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겨울 바닷바람에 시달리느라 앙상한 야자수. 이번 생 잘 버티고 다음 생에는 힘들지 않게 서 있기만 해도 잎이 우거질 수 있는 환경에 터를 잡으렴.


따라비오름과 함덕 해변이 같은 날이라는 게, 보고 또 봐도 신기신기. 고도가 날씨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 내 생활에서 고도와 같은 것은 무엇일까. 게으름? 진짜 심기일전하고 성취욕 좀 가져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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