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있는 섬 장봉도 트레킹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인천 섬은 심리적으로는 가까운데 물리적으로는 결코 가깝지 않다. 서울에서 인천 선착장까지 가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어떤 섬에 가느냐에 따라서 두 시간까지 배를 타고 가야 한다. 뱃시간까지 고려하면 인천 섬은 최소한 2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말이다. 인천이 가깝다는 생각은 고정관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천 하면 연상되는 것이 인천 시내라서 그런가. 인천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들. 접근하기 쉽지 않은 섬들은 가보고 싶은 욕망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선착장에 도착해도 변덕스러운 바다 날씨 때문에 배가 결항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화창하니까 배는 뜨겠지 했는데 일행을 만나서 비보를 들었다. 파도가 강해서 장봉도에서 나오는 배는 정오에 마지막이라고. 이 말은 장봉도에 들어간다고 해도 바로 다시 나와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아쉽지만 꿩 대신 닭. 인천에는 장봉도 말고도 여러 섬들이 있고, 작년에 무의대교가 개통되어 차로 들어갈 수 있는 무의도로 방향을 틀었다.
찬기운이 꽤 있었지만 걷다 보면 몸이 더워져서 땀이 난다. 땀이 나면 쉽게 지치니까 조금 춥게 출발하는 게 낫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강풍에 대비해 패딩을 입었는데 짐이 될 각이었다. 무의도의 하나개 해수욕장 주차장에 내려서 출발 준비를 한 후 걷기 시작했다. 곧 하나개 해수욕장 해변을 따라 데크로 만든 다리를 만났다. 바람은 귓가에서 쉬-익 쉬-익 존재감을 뽐내면서 머리칼을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바람의 비위를 맞추며 걷다 보면 바위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다. 반대편에는 물 빠진 넓은 모래 바닥이 펼쳐져 있었다. 이 다리는 처음 보면 무의도 바다 풍경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다리 위를 걷다 보면 왜 이 흉한 다리를 만들었는지 깨닫고 조금 감사하게 된다. 비록 지금은 물이 없어도 작은 물웅덩이가 남아 바다라는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길게 이어진 다리 위에서 바람과 걸으며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위를 걷고 있는 느낌이 와락 다가온다. 물 때가 되면 말 그대로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일 것 같다. 자연을 알뜰하고 편하게 즐기려는 지극히 인간의 관점에서 만들어져서 이기심이 엿보이지만 다리 위를 걸으면서 좋아서 다리 건설에 감사하고픈 양가적 감정을 갖게 된다.
볕의 세기는 사진 속에서 알수 있을만큼 강하다. 이런 바위들이 물에 잠겨있는 걸 보면 가슴이 울렁울렁할 것 같다. 바람을 피하려고 부질없이 이리저리 몸을 피해 본다. 아주 고립된 광활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혼자 혹은 둘이 가면 멘털이 흔들릴 수 있을 거 같다. 가끔 정신줄 놓아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좋을 수 있다. 정신줄 놓고 싶으면 하나개 해수욕장을 아껴뒀다 꺼내 써도 괜찮을 것 같다. 햇살, 강한 바람, 광활함, 고립감들이 바람에 섞여 내게 달라붙는 것 같았다.
몸을 돌리고 다시 걸어 나와 호룡곡산으로 향했다. 해발 245미터인데 가파른 구간이 짧게 있다.바위 위를 딛고서 위에 있는 바위 위로 올라갈 때 순간적 근력과 피워가 필요하다. 나는 초보자라 턱이 높은 바위 앞에서는 망부석이 되어버린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뜀틀을 할 때면 뜀틀판을 딛고 추진을 해야 하는데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하고, 신체적으로도 높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뜀틀 앞에서 멈춰 서있곤 해서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선천적으로 운동 신경을 관장하는 소뇌가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몸을 쓰는 일은 머리를 쓰는 일보다 몇 배는 더 힘들고 불편해서 집중력을 엄청나게 요구한다. 턱이 높은 바위 앞에서 한쪽 다리를 올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자 뒷사람이 내 엉덩이를 들어 올려줘서 간신히 위로 전진하는 굴욕의 시간이 펼쳐졌다. 누구에게나 잘하는 일과 잘 못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바위와 많이 친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바위는 낯설고 무섭고 포기하고 싶은 대상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이겨내는 힘의 원동력은 함께 걷는 이들의 지지와 응원이다. 미발달한 운동 신경 소유자는 늘 근력과 체력의 결핍도 감내해야 하는 운명이다. 결코 즐겁지 않은 경험이지만 함께라서 한계를 벗어나려고 애를 써 보기도 한다. 내 신체의 결핍 요소를 드러내는 시간은 다행히 길지 않게 정상에 다다랐다. 섬 트레킹은 항상 매력적인데 높이 올라가면 바다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바위와 나무로 덮인 산을 벗어나면 아주 이질적 요소들이 어울려 산과 바다의 변주곡이 펼쳐진다.
4월 하순과 계절의 여왕인 5월에는 맥락 없이 마음이 들뜨곤 한다. 애기애기한 연둣빛 잎들이 저마다 다른 색감으로 산을 물들인다. 연둣빛 향연에 빛무리가 내려앉아 반짝이고 바람이 불어 잎들을 흔들면 빛무리가 흔들린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너무 예쁘다'라는 무능함이라니.
바닷바람이 추워서 섬에 있는 나무들은 육지에 있는 나무들보다 덜 깨어났지만 연둣빛은 유난히 곱다. 노란 연두 빛깔 잎들은 꼭 꽃 같다.
호룡곡산에서 내려와서 대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잇는 다리를 건넌다. 몸이 휘청 일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분다. 사진 속에서 바람의 흔적을 찾는 일은 부질없다. 소무의도 전경인데 소무의도는 1시간 남짓 걸으면 섬을 일주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를 때는 산인데 내려가는 계단은 바다를 향해있다.
소무의도에서는 인천공항 활주로도 보이고 수평선 끝에는 송도에 있는 아파트들이 아득하게 보인다. 숨은 그림 찾기로 찾아보시길.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희미하다.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등바등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물이 흐르는 대로 몸을 싣는 게... 파도가 치면 파도를 탈 것이며 바람이 불면 춤을 출 것이니. 소무의도를 내려오면 놀기 좋은 해변을 만나게 된다.
사유지라는데 파도에 잘게 부서진 하얀 조개껍질이 모래 위를 덮고 있다. 섬 트레킹의 콤보 매력은 숲길도 걷고, 해변도 걷고. 한참을 바닷가에서 일행들이 아이들처럼 뛰어다니는 걸, 나는 잔잔하게 구경만 했다. 솟아라, 힘! 을 외쳐본다. 눈부신 햇살을 받고 있는 숲길을 걸어 나오면 섬을 한 바퀴 다 돈 것이다. 헤어진 애인의 연락만큼이나 심쿵하게 만드는 볕이 잘 드는 오솔길. 엔도르핀 솟구쳤던 봄볕 아래서의 하루.
소무의도에서 돌아나오는 다리 위에서 엄청난 강풍을 만나 고개를 숙였더니 흙빛의 커다란 파도가 육지를 향해 달려왔다. 쨍한 햇살이 아니었다면 무척 우울한 날이 될 뻔했다. 흙빛의 파도도 삼키는 햇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