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4. 토
'깨닫다'는 말은 과거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깨달음은 무無의 상태에서 일어날 수 없다. 어떤 자극이 있거나 행동을 한 후에 찾아오는 말이다. 그래서 좀 슬픈 단어지만 아는 상태로 가는 긍정적 과정이다. 강릉 바우길 1코스는 선자령 풍차길로 순환 구간이다. 갈 때는 막연하게 국민의 숲으로 직진했는데 다녀와서 강릉 바우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알게 된 사실은 코스를 좀 잘 못 선택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바로 국민의 숲에서 시작했다.
강릉 바우길 1코스는 어렵지 않은 길인데 시작을 잘 못 하는 바람에 선자령까지 못 가고 절반만 걷다가 돌아오게 되었다. 신재생에너지관에서 출발해서 선자령까지 한 바퀴 돌고 국민의 숲으로 넘어오는 코스면 좋았을 뻔했다. 이런 깨달음을 얻는 것도 이미 가 봤기 때문에 가능하다. 뭐 또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으니까.
내가 너른 초록 평원을 격하게 애정하는 걸 아는 친구가 고맙게도 먼저 대관령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대관령은 익숙한(?) 곳이지만 두 발로 걸어서 보는 것은 다르게 보는 관점을 선사한다. 어떤 대관령이 기다리고 있을까?
'국민의 숲'은 제목 그대로 아이들, 노인들이 함께 걷기 좋은 평지 숲길이다. 조림숲으로 울창하고 곳곳에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나는 화려한 색색의 꽃보다 초록 나무에 더 끌린다. 꽃이 그 화려함으로 시선을 끄는데 나무는 끈기와 일관성으로 시선을 끈다. 점잖게 말없이 사계절을 버티는 나무들은 해가 거듭될수록 나뭇잎이 조금씩 나와서 가지도 굵어지고 키도 자란다. 변함없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 그 변화를 알고자 하는 이에게만 보이는 나무의 나이. 주변에 같은 종의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어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준다.
쭉쭉 하늘로 뻗은 늘씬한 나무들이 그 자태를 뽐낸다. 어여쁜 나무들 품 속에 안겨서 이리저리 거닌다. 기온도 높지 않아서 여름에도 걷기 좋은 숲이다. 서울에서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지내다가 나무로 이루어진 숲에 들어가면 몸과 마음이 착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런 착각 때문에 숲속 걷기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 숲을 관통해서 꿩만두(국)와 메밀 막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 맛도 맛이지만 식당이 자리 잡은 곳의 경치는 그림 같았다. 스위스 알프스는 잠시 잊어도 좋다.
별스러울 것 없는 가건물로 된 식당 주변 풍경이다.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은 덤이다. 청명한 하늘에 보드라운 구름.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밭작물들도 여물어가고 있다. 자연은 살아있다. 숲도, 작물도, 구름도, 자신만의 속도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쾌청한 하늘을 실컷 감상한 후 강릉 바우길 코스로 들어섰다. 국민의 숲 반대편에서 올라가게 되는데 이 길은 온갖 풀들로 무성했다. 한 사람이 지나갈 길도 안 나있을 정도로 잡풀들의 번식력은 대단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을 헤치기 위해 나뭇가지를 붙들거나 풀이 몸에 쓸리는 것을 피하려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다. 예전에 사람이 사라진 지구에 최후로 살아남는 생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이 없는 지구는 식물이 점령했다. 식물들, 특히 잡초들은 3개월만 지나도 엄청난 속도로 자라서 영역을 확장했다. 그 모습은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이 길이 그랬다. 풀들이 차지는 하는 넓이로 보아서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글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정글이 뭐 별건가. 동식물의 집으로 인간의 발길이 닿기 힘든 곳 아닌가. 걷느라 정신없어서 우거진 숲을 못 찍었다.
초록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초록 집에서 계곡물은 우렁차게 흘렀다. 비 온 후라 수량은 풍부했고, 위에서 내려온 물은 뭐가 급한지 정신없이 아래로 아래로 전진했다. 계속 이어지는 물소리의 경쾌함에 이끌려서 잠시 걷던 길을 멈추고 흐르는 물살을 바라보았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물 위로 뻗은 나뭇잎들에서 다 다른 나무라는 걸 알 수 있다. 인간 세상처럼 특성이 다른 수종들이 얽혀서 '숲'이라는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낸다. 우리 인간은 코로나바이러스 아래서 어떤 화음을 만들고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화음을 만들고 있을까.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울창한 초록길이 끝나고 양 떼 목장을 거치는 코스를 택했다. 양 떼 목장에는 못 들어가게 철조망이... 멀리 구름이 생크림처럼 산 위에 올려져 있다. 바람의 봉우리답게 나무를 보시라. 바람이 너무 거세서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는 나뭇가지가 없고, 한쪽으로 가지들이 쏠려있다. 변화에 적응하는 자연의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질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인데 좀 긍정적 방향으로 적응했으면 좋겠다. 나를 둘러싼 변화는 급격하다면 급격하고 느리다면 느리다. 내가 받아들이기에 달려있으므로 변화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변화가 있다는 것이고, 나는 이 변화가 때로는 당황스럽고 낯설다.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모색하면서 6개월 이상을 보내고 있다. 미래는 원래 불확실한데 코로나바이러스로 불확실성의 무게는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숲을 이룬 여러 가지 요소들처럼 내 삶도 여러 가지로 이루어질 테니 지금은 조급해하지 말고 변화에 올라타서 흐름을 즐기는 게 낫다는 여유를 애써 가지려고 한다.
걸음을 멈추고 한쪽으로만 가지를 가진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는 가만히 멈춰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