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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Oct 07. 2022

매력적 선택지 앞에서 필요한 것

영화 <머니볼> 리뷰

내 손에 지금 100만 원이 있다. 100만 원으로 여행을 떠날지 평소에 찜해 둔 가방을 살지 선택해야 한다. 경험에 가치를 더 두어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이 별로 재미없었다면 포기한 가방이 눈앞에 아른거릴 것이다. 이때 포기한 기회비용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더는 내 몫이 아닌 기회비용을 완전히 잊을 수 없다. 이 기회비용을 못 털어버려 마음이 고단하고 누추해질지라도 말이다. <머니볼>은 앞에 놓인 선택지가 매력적일 때 무엇을 선택해야 행복할까, 묻는 영화이다.      


사진-네이버영화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 빈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두 가지 선택지를 받는다. 전액 장학금으로 스탠퍼드 대학에 갈지, 거액 연봉을 받고 메이저리그로 갈지. 둘 다 부러운 선택지이다. 하나가 전혀 흥미를 끌지 못했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선택은 쉬울 것이다. 하지만 둘 다 포기하기 쉽지 않은 선택지라면,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    

   

선택 뒤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빌리는 거액 연봉을 받고 메이저리그로 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단순히 물건을 살 수 있는 능력만을 말하지 않는다. 고액 연봉 속에는 그 사람의 ‘몸값’이라는 암묵적 등식이 성립한다. 물론 이 등식은 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만든 약속이다. 빌리는 자신의 몸값을 인정하는 사회적 기호에 서명한 셈이다.      


하지만 빌리가 선택한 프로야구 시장은 잔혹한 자본주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계이다. 야구는 결과 게임이다. 9회 말에도 홈런으로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지만, 역전의 주인공이 되려면 승리해야 한다. 야구는 승리로 끝날 때만 과정이 주목받는 게임이다. 패자의 과정을 관심받지 못한다.      

 

다재다능한 빌리 빈의 잠재력이 지닌 값어치는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승자가 지배하는 세계는 그의 잠재력이 꽃을 피울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장 논리에서 상품이 단시간에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면 그 상품은 폐기된다. 빌리 빈의 잠재력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채 영원히 과거로 사라진다.      


‘머니볼’은 야구 용어이다. 구단이 선수를 분석해서 시즌 중에도 저평가된 선수를 사고, 과대평가받은 선수를 파는 운영 방식이다. 시즌 중에도 선수를 거래하는 운영 방식은 철저하게 시장 원리이다. 상품이 정상 매장에서 안 팔리면 아웃렛으로 보내 가격을 할인해서 ‘팔아 치우는’ 방식이다. 이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구단이 운영했던 전략이다.    

  

어제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던 선수가 구단장의 전화 몇 통화로 다음 날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유니폼을 입고 뛰어야 한다. 선수는 선택권이 없이 구단장이 가라면 갈 뿐이다. 철저하게 운동하는 기계이며 상품일 뿐이다. 


선수는 구단의 이익을 실현하는 소모품이다. 상품 가치가 있을 때는 비싼 값에 팔리지만, 상품 가치가 없을 때는 즉각 버려진다. 구단장은 팀을 하나의 생산 라인으로 보고, 선수들을 주요 부품으로 본다. 선수들이 연봉만큼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 부진한 기량을 감가상각비처럼 팀을 운영하는 원가에 포함해서 계산한다. 선수는 이 원리에 따라 핫한 신상품이 될 수도 있고, 출시되자마자 외면당해 중고 시장으로 직행할 수도 있다. 일반 노동 시장보다 더 가혹해 보인다. 


야구 '산업'은 사람들의 열광을 연료 삼아 열매를 맺는 가치 지향의 잉여 활동이다. 사람들은 기분을 들뜨게 하는 이벤트에 지갑을 열고, 구단은 자본을 축적한다. 우리는 이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 산다.  

    

빌리 빈은 시장 경제의 논리의 희생양이 되었고, 그 결과 평생 커다란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 그는 야구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실험을 한다. 일반적 논리에서는 한 선수의 승률은 곧 비용과 직결된다. 언뜻 보기에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계산법에 치명적 허점이 있다는 것을, 일류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풋내기 피터가 지적한다.     


투구 자세가 웃겨서, 사생활이 문란해서 등등의 이유로 선수를 평가 절하하지만 피터는 뜻밖에 확률로 접근한다. 주사위를 던질 때 확률의 정확성을 믿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영화 중간에 나온 해설자의 말처럼, "야구는 숫자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한다. 숫자가 할 수 없는 걸 해야 한다." 이 말은 사실이면서 사실이 아니다.     

 

경제 이론이나 확률은 많은 데이터를 통계 수치로 표시한 표본 팩트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팩트는 때로는 중요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야구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잠재력은 확률을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직관과 의지 등 비논리적 주관성이 개입해서 가시화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이론적 토대를 밀고 나가려면 꿋꿋한 신념과 무엇보다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빌리 빈이 과거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과거 시장에서 아낌없이 개발비용이 투자되었던 최상품이었다가 출시된 후 별 반응을 얻지 못한 그저 그런 상품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는 자본 그물망의 먹이가 되었다.     


아마존 밀림에 사는 부족한테 5만 원짜리 지폐 다발을 아무리 많이 가져다줘도 소용없듯이 가치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가치는 사회적 맥락에서 파생된다. 빌리 빈은 야구 시장에 있지만, 그가 속한 세계 밖에 있다. 그는 자신의 잠재력을 기다려주지 않는 시장에 다른 방식으로 잠재력을 끌어내서 만회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선수들의 잠재력에 승부수를 걸고, 그는 우승팀을 이끈 구단주가 된다. 이는 그가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승리는 석연치 않다. 빌리 빈이 자본주의의 잔혹성을 극복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식 승리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빌리의 몸값은 구단장으로서 야구 역사상 최대로 치솟는다. 그것도 그를 버린 레드삭스에서 받은 제안이었다. 다시 빌리 빈 앞에 좋은 선택지가 놓였다.      


빌리 빈의 선택은? 그는 시장에 팔리는 상품이 되길 거부한다. 스무 살의 빌리는 잡식성 괴물 같은 자본주의의 상징을 선택했다면, 중년의 빌리는 자본의 상징성을 알지만 거부하고 애슬레틱스에 남는다. 개인이 거대한 체제 자체를 전복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자신의 가치를 선택할 수는 있다. 혹독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나만의 가치관이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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