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비즈니스일까?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를 보고

by 레알

식상한 주제를 다룬 영화지만 셀린 송의 첫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감성을 믿고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머티리얼리스트materialist는 물질주의자.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머티리얼리스트다. 남녀 관계의 통찰과 유머가 있지만, 결혼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터라 좀 식상하다. 매우 한국적이고. 감독이 한국계 캐나다인인데도 한국적 정서가 짙은게 놀랍다.


"커플매니저로 사는 건 어때요?"

수퍼리치, 키 180cm, 학벌 좋고 매너도 좋고, 특별한 결함도 없어서 결혼 시장에서 '완벽한 남자'가 묻는다.

"보험설계사나 비슷해요."(이런 내용) 여자는 쿨하게 대답한다.


커플매니저는 데이트 상대를 찾는 사람들을 이어준다. 사람들이 수천 달러를 내고 매칭회사에 가입하면서 '사랑할 사람'을 찾는다고 말하지 않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키, 외모, 학벌, 연봉, 원하는 취향 등을 말한다. 커플매니저는 이러한 정량적 정보들을 취합해서 서로 교집합이 가장 많은 사람들끼리 데이트를 주선한다. 돈을 받는 대가로 알맞은 상대를 찾을 때까지 불평불만을 다 들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완벽한 남자'의 동생도 여자를 통해 아내를 만났다. 완벽한 남자는 커플매니저의 쿨한 계산법에 반했는지 사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과 데이트하기에 너무 아까운 고객이니 회사에 등록해서 몇 번만이라도 데이트해 달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여자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없다. 이 지점이 매력적인데 남자도 나처럼 느꼈는지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결국 두 사람은 사귄다.


여자는 어릴 때 가난했고, 전남친이 가난해서 헤어졌다. 만난 지 5주년 기념일에 전남친은 주차비 25달러가 아깝다고 같은 곳을 몇 바퀴나 돌며 비싼 뉴욕 물가 탓을 해대는 바람에 싸웠다. 주차비가 250달러여도 쓰면서 하루만이라도 낭만적이어야 할 기념일에 25달러 좀 그냥 내면 안 되냐고. 가난은 가난 자체도 문제지만, 돈을 써야할 때도 돈을 아끼는 바람에 기분을 잡치게 해서 상처를 남기곤 한다. 그래서 여자는 배우자감에 대한 기준은 딱 하나. 슈퍼리치.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선택하는 일이다. 완벽한 남자의 동생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운다. 이 결혼은 자신이 원하는 결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자가 묻는다.

"그럼 왜 결혼하려고 했어요?"

"언니를 이기고 싶었어요. 언니 남편보다 내 남편이 재력, 외모 등 모든 면에서 더 낳아서 내가 가치있게 느껴졌어요."라고 답한다. 그럼 바람은 다 이루어진 거니 눈물을 거두고 식장에 들어간다.


이 대사에 우리 마음이 들어가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 안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다만 그 마음이 바람직하지 않으니 억누르고 자기 최면을 걸고 그렇지 않다고 말할 뿐이다. 결혼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는 자기 욕구를 잘 모르고, 억압하는데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커플매니저처럼 '슈퍼리치면 된다'는 명징한 기준이 있으면 배우자를 고르기 덜 어렵다. 여자는 슈퍼리치가 없으면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터다. 하지만 대부분은 새 신부처럼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이나 결혼해서 살다가 비로소 자신이 상대에게 추구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커플매이저인 여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안다. 슈퍼리치 배우자를 바랐고, 바람이 이루어질 순간이 코앞에 와 있다. 남친과 함께라면 로맨틱한 고급 식당에서 가격을 헤아리지 않고 주문하고, 160억짜리 펜트하우스에서 살 수 있다. 이때 회사에서 여성 고객이 매칭해준 남자와의 첫 데이트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여자는 매칭메이커로 고객의 성격까지는 알 수는 없다. 그 사실에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이 심리적 타격을 슈퍼리치 남친과 공유할 수 없다. 낭만적 이벤트를 깰 수는 없으니까.


여자는 전남친에게 울면서 전화하고 전남친은 진심을 다해 들어준다. 슈퍼리치 남자는 168cm였던 키를 180cm로 늘리는 수술을 했고, 이 사실을 숨겼다. 남자는 자신의 조건 때문에 좋아하는 '척'하는 여자가 아니라 조건을 거짓말하지 않는 여자가 좋다. 두 사람은 각자에게 중요한 '사건'을 공유하지 않는 사이인데 결혼할 수 있을까?


여자는 슈퍼리치 남자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도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고급 식당에 가고, 펜트하우스의 실크 침구 위에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자신이 무척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도록 해주는 마법이 분명하다. 하지만 매일이 낭만적 이벤트라면 그에 맞는 역할도 해야 유지된다. 현실의 구질구질한 기분도 눌러서 버려야 한다. 낭만에는 구겨진 기분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매일 그럴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에게는 이런 상황이 실현되지도 않아서 깨닫을 기회조차 없다. 그래서 근처에도 못 간 꿈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곁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구실로 남는다.


여자의 전남친은 37살에 궁핍함이 찌든 쉐어하우스에 살고, 케이터링 알바를 하고 영원히 꿈으로만 남을 수도 있는, 배우의 꿈을 좇는다. 그와 결혼하면 싸구려 식당에 가고, 돈 때문에 싸우고, 사랑해서 결혼한 사실도 잊을 것이다. 여자는 미래가 어떨지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가난한 전남친을 선택한다.


"과거에도 너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해. 앞으로도 사랑할 거야. 그냥 사랑해. 내가 가진 건 이게 다야. "


전남친이 가진 유일하고 빵빵한 자산은 여자에 대한 사랑이다. 사실 현실에서 이런 정서적 자산이 풍부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힘들다. 조건도 안 좋은데 정서적 자산도 없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더라도 2025년을 사는 사람의 눈에 여자가 특별한 결함 없는 슈퍼리치의 청혼을 거절하는 것은 비상식적으로 보인다. 물론 여자는 자기 앞가림은 잘 할 것이다.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 있긴 하다.


여자는 배우자를 정량적 수치화해서 고르는 일을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돈대신 지지고 볶더라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의 가치를 선택한 셈이다. 그녀는 50년 동안 함께 살면서 마지막에 기저귀도 갈아줄 수 있는 상대를 찾는 게 옳다고 여긴다. 커플 사이에 조건 대 사랑을 다루는 영화는 많다. 둘 다 가진 사람은 현실에는 거의 없다. 있더라도 극지방 가까이에 나타나는 오로라만큼 보기 힘들다.


연애 고수 혹은 사랑에 빠지는데 선수였던(과거 시제인 이유는 결혼했기 때문에 더는 연애하지 않으므로) 친구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결혼은 안 하고 싶은데 대화 코드와 유머 코드 맞는 이성 친구는 있으면 좋겠어. 일 끝나고 집에 바로 들어가기 허전한 날이나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고 싶을 날에 집앞에서 가볍고 편하게 편맥할 수 있는 친구말야."

"십 대 소녀도 아니고 세상에! 그런 남자 없는 거 알지? 남자들에게는 명품백 사달라는 것보다 그런 게 더 어려운 거야" 이렇게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러니 영화 속 여자는 멍청한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얻기 힘든 사람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결혼한 여성은 그녀의 선택을 어떻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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