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고도와 땅끝마을, 해남

트레킹 로그

by 김남금

땅끝마을이 있는 곳 해남은 가기 전에는 심리적으로 아주 멀게 느껴졌다. 막상 다녀오니 고속열차는 전국을 일일생활권까지는 아니어도 1박 2일 권에 모두 가능하게 만들었다. 주목적은 트레킹이었다. 첫날 미황사에서 시작해서 달마고도를 일주하고, 다음 날에는 땅끝마을을 걸어서 조망했다. 원래도 작고 조용한 마을인데 코로나로 더 조용했다.


달마산을 배경으로 하는 미황사는 단청이 없는 절로 지형 때문에 계단식으로 암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달마대사가 머물렀다는 미황사. 단청이 없는 목조 건물이라 고풍스럽고 이국적이다.


달마산은 돌산이다. 곳곳에 돌무덤(?)이 있고, 돌로 경계를 만들기도 하고, 돌로 담을 쌓기도 했다. 달마고도는 17km로 꽤 긴 거리이지만 도솔암까지 올라가는 길 말고는 경사도는 높지 않다. 돌 지형이 독특하다. 커다란 바위가 아니라 깨지고 부서진 것 같은 크고 작은 돌무더기들이 규칙적으로 흙길과 변주를 이루고 있다. 돌무더기가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서 채석장 같은 느낌도 있다.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움푹 들어간 돌 구간이다. 칼바람이 쉬이익-쉬이익 존재감을 뿜뿜거리며 불어서 날아갈 뻔했다. 도솔암은 자연적으로 솟은 높은 바위 사이에 가운데 돌로 축대를 쌓아 올린 곳에 있었다. 유럽 수도원이 산악 지형 깊숙한 곳에 위치한 것에 감탄하곤 했는데 사찰의 암자를 바위 봉우리 꼭대기에 만든 거 보면 신비하기만 하다. 변변한 이동 시설이나 기계가 없을 시절에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돌을 이동시키고, 수작업으로 만들었을 텐데. 사람의 의지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한계를 정하는 건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나는 아직 트레킹 초보라 절경을 보고도 사진으로 담지 못하고, 마음과 눈에 담아온다. 트레킹 하면서 양손은 스틱에 모두 맡기고 산에만 가면 흐르는 콧물을 닦느라 정신없다. 비염으로 기압과 기온차가 있으면 콧물은 홍수가 난 것처럼 흐른다. 걷고 콧물 닦는데 온 에너지를 집중하는, 나는야 초보 트레커.


다음 날은 조금 편한 길을 15km 걸었다.

아침에 땅끝마을 다운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입구를 지나 항구 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전날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은 사라지고 쾌청한 하늘과 햇볕으로 바다는 반짝거렸다.


"희망의 시작 땅끝 해남"을 쓴 전망대에서 고소공포증으로 엉거주춤 서 있다. 한반도 지도의 시작점이란 기념비가 맞은편에 있다. 바다를 따라 산책하기 좋게 길을 만들어 놓았다. 걷다 보면 연인들의 소망 기호를 읽기도 한다. 모두 예쁘게 사랑하길 바랍니다요. 사랑이 영원하진 않겠지만 처음의 열정이 바래도 한때 사랑했다면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테니 마음 부자입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이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에요. 헤어져도 자신을 위해 상대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줘요. 미움과 저주는 상대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을 상하게 하니까요.


사람은 높이 올라가서 전체를 내려다 보려는 욕구를 지닌 거 같다. 좋은 곳에 가면 왜 자꾸 올라가려고 하지...밑에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자꾸 꼭대기에 전망대를 만든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지만 나는 뚜벅뚜벅 걸어서. 등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걸어서 꼭대기에 있는 정자에 올랐다. 바람에 땀이 천천히 씻기는 순간은 중독성이 있다. 정자에 앉아서 중독자로 그 기분을 실컷 음미하고 내려왔다.


오후에는 두륜산 밑에 있는 대흥사로 향했다. 대흥사에 도착했을 때 아름다운 오후 햇빛으로 절 전체가 일렁였고 덩달아 내 마음이 일렁였다.

공간 구성이 매우 독특한 절인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다. 모두 12 암자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규모가 아주 커서 무슨 캠퍼스 같았다. 넓게 펼쳐진 절에 투명하고 바삭거리는 햇볕이 쏟아져서 눈이 부셨다. 해남의 돌과 나무에 쏟아지는 햇빛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해남 특유의 돌 질감에 빛무늬까지 더해져 한 폭의 그림같았다. 코로나 시국을 잠시 잊고, 청정 지역에서 마스크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이틀 동안 꽤 긴 거리를 걸어서 등을 바닥에 대고 눕고 싶은 욕구와 싸우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쌀독에 조금씩 쌀을 사다가 채우면서 항아리가 차 오르는 걸 보면 배불렀을 시절처럼 근육들을 켜켜이 숨 쉬게 하고 단련으로 찾아오는 피로감은 달콤한 숙면으로 이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