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이지만 특별한, 관악산

2020. 4.26. 일

by 김남금


둘레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던 지인들이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산에 다니면서 산의 매력에 푹 빠져 둘레길은 심심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라 방방곡곡에 크고 작은 산이 있어서 산에 빠지면 가야 할 곳이 많아서 초조해지고 주말마다 바쁠 수밖에 없다. 힘들지만 함께 걷는 지인들이 있어서 가끔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이지만 친구가 아니면 산에는 안 갔을 테니 사회적 동물로 충실히 살기 위한 산행이라고 해 두자.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지형을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서울에는 동네마다 크고 작은 산이 많이 있다. 서울에 있는 산의 특징은 도심을 끼고 있어서 접근성이 좋으면서 산에 오르면 도심이라는 것을 잊게 하는 울창함이 존재한다.


지난 일요일에는 관악산에 갔다. 관악산은 서울 한복판에 있어서 강 이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산이다. 너무 일상적 산이라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걸 별로 들어본 적이 없고, '중년들에게 홍대'라는 우스갯 소리가 회자된다.


관악산은 '악'이 들어간 산답게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라 '내게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 20대 때 데이트하면서 평상복 입고 연주대에 오른(실은 거의 끌려갔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 후 직장에서 워크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끌려간 산행이 몇 번 더해졌지만 산은 내 삶에서 도전 대상도 관심 대상도 아니었다. 줏대 없이 상황(?)에 떠밀려

이따금씩 산행을 하고 있지만 나쁘지 않다. 두 발로 걸어서 서울의 지형을 부감 high angle shot과 앙각 low anlge shot으로 보는 일은 특별하다.


연주암에서 바라본 모습


산은 등산로에 따라 거리와 난이도가 다르다. 지인들과 함께 비교적 쉬운 과천향교에서 연주대까지 왕복하는 코스로 세 번을 다녀왔다. 이 코스는 사람으로 비유해서 말하면 한 사람의 전체 모습 중 한쪽 다리만 본 셈인 걸 깨달았다. 지난 일요일에 사당역에서 출발해서 연주암을 거쳐 과천향교 방향으로 내려오는 새로운 코스를 택했다. 약 9km로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대기의 공기는 조금 차갑지만 볕의 세기는 계절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고 강했다. 4월 말 새순들이 연두 연두 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아기 잎의 색은 나무마다 조금씩 다르다. 큰 바위,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등산로 틈 사이에 수풀이 있다. 눈을 들어 시선을 멀리 던지면 연두빛깔의 단풍 물결이 곱게 펼쳐져 있다. 문득문득 마주하는 도심 전경에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걸 상기했다. 도심 전경이 안 보이는 곳에서 관악산은 넓고 깊어서 서울 한복판이라는 걸 잊게 할 정도다. 관악산을 처음 제대로 본 날이다. 그것도 가을 하늘 같은 파란 하늘 아래서 연두빛깔 나무들을 품어서 넓고 화려한 자태에 홀딱 반했다.


산은 사람처럼 여러 가지 표정을 가지고 있다. 바람, 햇빛, 구름의 양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다르다. 산에 오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 번 올랐다고 해서 그 산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동료나 가족을 매일 만나지만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늘 그렇듯이 한쪽 발을 옮기고 난 후 다른 쪽 발을 옮길 때, 초보자에게 많은 집중력을 필요하다. 다리 근육의 움직임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살아가는 모습하고 비슷해서 놀란다. 우리는 매일 비슷한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낸다. 일주일이 쌓여서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 비슷한 하루들 속에 가끔씩 다른 하루의 기억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현재의 나는 과거 살아온 궤적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은 한 걸음씩 집중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여러 각도에서 산세를 보게 되고, 산의 여러 모습을 산 자체로 기억한다. 산은 정상이 아니라 산에 오르는 과정으로 기억된다. 오르면서 흘린 땀,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 구간,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쉬었던 순간, 소풍 나온 것처럼 점심 도시락과 과일을 꺼내 먹으며 도란거렸던 기억 등이 모여 그 산에 대한 기억으로 자리잡는다. 그 산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은 이 모든 요소들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말이다.


참철쭉. 진달래의 야리야리한 아름다움과 철쭉의 크고 강인해 보이는 두 가지 얼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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