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변수를 장애물로 볼 것인지 기회로 볼 것인지 태도에 달려있다. 태도가 상황을 지배하고 경험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어 시선이 만들어진다.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지, 긍정적 시선을 가질지는 경험에 태도가 더해져서 결정된다. 짙은 안개가 원래 목적지인 자월도에 가는 것을 좌절시켰다. 대안으로 선택한 강화도 고려산에서 안개는 선물이었다.
인천에 있는 자월도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8시 전에 출발하는 배를 타려고 부지런히 달려서 인천항여객터미널에 도착. 날은 잔뜩 흐리고 는개가 뿌리고 있었다. 여객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더니 플랫폼 전광판에 '안개 대기' 알람이 떠있었다. 이 말인즉 배가 출항을 안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어서 인천에 있는 섬들과 인연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바람이 거칠어도 안개가 짙어도 배는 뜨지 않는다. 육지 날씨와 바다 날씨는 달라서 육지 날씨는 맑아도 배가 안 뜨기도 한다. 까다로운 뱃길이다. 뱃길에 날씨 변수는 우연인 것 같지만 발생하면 필연적이다. 날씨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순응할 수밖에 없다.
함께 간 지인들과 대안을 급논했다. 관악산, 청계산, 우면산 등등이 언급되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는데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에 아쉬웠다. 한 지인이 강화도에 있는 고려산을 제안했다. 우리 중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산이다. 강화도 하면 마니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활 속에서 늘 배운다. 길치라 가는 길에 조금 헤매고 돌아갔다. 프레데리크 그로가 철학자들에게 걷기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쓴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에 "속도가 시간을 벌게 한다고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속도가 만들어낸 환상이다."란 말이 있다. 헤매고 돌아가는 일이 시간을 버린 거라는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아무튼 백련사 주차장에 도착. 고려산에는 백련사와 청련사라는 두 개의 절이 있다. 우리의 트레킹 코스는 백련사림을 통과해서 고려산 정상을 찍고 청련사로 내려와서 다시 백련사로 원점회귀를 하는 약 9킬로미터의 코스였다. 백련사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짙은 안개가 산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몽환적이었다. 안개 속에서 심장이 둥둥 울렸다.
백련사림을 따라 걸으니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여행 초보자들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곳이 아니면 볼 것이 없다고 단정하는 오류에 종종 빠진다. 나는 세상에 볼 것 없는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디든 고유의 풍경과 볼거리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이런 태도는 고집처럼 보일 수 있는데 '볼거리'는 결국 장소를 방문한 이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볼 것이 없다고 믿으면 볼 것이 없을 것이고, 볼 것이 있다고 믿으면 볼 것이 있나니. 고려산은 진달래와 철쭉 군락지가 있어서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은 진달래 축제철이 아니면 찾는 이들이 드물다는 말도 될 것이다. 축제에 사람이 붐비는 이유는 분명히 있지만 진달래철 아니면 볼 것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고려산의 모습을 진달래 하나로 축소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부로 전체를 판단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입을 다물게 된다. 나는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결의(?)를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하나로 전체를 일반화하는 경박함을 저지르고 있을 것이다.
안갯속에 앉아서 가져간 간식과 알밤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걷기 시작했다. 어릴 때 야외에서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다. 나이 들면서 야외에서 마시는 맥주나 막걸리 한 잔은 꿀맛이어서 사수해야 하는 흥이 되어버렸다.어쩔. 고려산 정상을 향해 난 길은 데크길로 잘 정비되어 슬리퍼 신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다. 데크길 따라 쭈욱 걸으면서 안갯속에 포옥 안겼다. 는개가 조금씩 뿌리고 있었지만 걷기를 방해기 보다는 오히려 안개를 짙게 만들어 문명의 세계에서 나와 수묵화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안개가 두려운 이유는 앞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는 것은 앞에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만나는 일이다. 안개를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동행'이다. 보폭을 맞춰서 걷는 동행과 함께라면 길을 헤맬 때 의지하고 갈래길이 나오면 머리를 모으면 된다. 비가 오면 우산을 함께 쓸 사람이 있는지...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우산을 함께 쓰고 걷는다면 덜 무섭고 덜 외로울 것이다. 미래의 불확실에 대한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선점한 정보나 발달한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면 철쭉 군락지가 나온다. 안갯속에 꽃담요가 비스듬하게 깔려있는 것 같다.
폭신한 흙길을 걸어서 청련사에 도착했을 때 안개가 거의 걷혔다. 이제 익숙한 이 세상의 초록초록한 풍경이 펼쳐졌다. 청련사에는 300년, 688년이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보호수로 버티고 있다. 높이가 32미터나 되는데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 기대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인간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백련사 주차장으로 올라오는 길에 만난 '다이어트 브리지'. 마음속에 걱정과 근심은 버리고 가라는 의미를 지닌 다리이다. 사방이 초록이들인 숲속에 들어가 걷다 보면 걱정 다이어트는 저절로 된다. 그래서 걷는지도 모르겠다. 니체는 몸이 안 좋아서 걷기 시작하면서 거의 걷기에 중독되어 하루에 8시간까지 걷기도 했다. 그는 걸으면서 생각을 발전시켜 '짜라투스트라'의 사유와 철학으로 나아갔다. 걷기에는 사유를 끌어내는 힘이 있다. 나도 걸으면서 부정적 그늘은 버리고 생산적 씨앗을 키우고 싶다. 너무 거창한 꿈일까.
차로 돌아봤던 강화도는 인간의 편리와 유흥을 위해 마구잡이로 개발되어 별로 아름답지 않은 섬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두 발로 걸으면서 마주한 강화도는 완전히 다른 곳 같다. 걷기는 사물과 나아가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수단이다. 두 발로 걸어서 다가갔더니 강화도는 비밀을 조금씩 말해주는 것 같았다.